[20대를 말하다]③ "취업하는데 4269만원? 미친 나라죠"

김종일 기자 입력 2015. 7. 7. 14:11 수정 2015. 7. 9.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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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죠. 진짜 미쳤죠.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그 돈 모아서 장사나 했을 거 같아요. 진짜 미친 거 같지 않아요?"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화를 냈다. 대졸 취업자가 스펙을 쌓는데 등록금을 포함해 1인당 4269만원을 쓴다는 조사 결과(청년유니온 조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자 되돌아 온 반응이다. 조선비즈는 20대의 고단함을 내밀하게 취재하기 위해 20대 6명과 한 자리에서 만났다. 솔직하고 적나라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이름은 가명으로 표기했다.

◆ "스터디원 중에 취업해서 나가는 사람 드물어"…10명 중 7명 미취업

수도권 대학의 경영학과를 졸업한 이우연(28·남)씨는 지금껏 입사원서를 90번 가량 냈다. 대기업은 물론 알짜 중견·중소기업에도 적성에 맞는 곳을 찾아 지원했지만 아직까지 합격통보를 받지 못했다. 처음에는 떨어진 횟수를 셌는데 이제는 더 이상 세지 않는다고 했다.

2차 술자리에서 이씨는 직업군인으로 군(軍)에 재입대를 해야겠다고 읊조렸다. "기자님 놀랐죠? 다시 군대 간다고 하니까. 저라고 다시 거길 가고 싶겠어요. 취업이 도저히 안 될 거 같으니까 가는거죠. 같이 스터디 하는 친구들 중 SKY(서울·고려·연세대) 나온 애들도 몇 년째 빌빌 거리는 모습을 보니 살 길 찾아야겠더라고요."

박인숙(26·여)씨는 지난해 대기업에 취업을 했다. 졸업을 유예한 지 2년만이었다. "합격통보를 받고 전화기를 붙잡고 펑펑 울었어요. 엄마한테 전화해서 이제 고생 끝이라고. 엄마 이제 야간 일 안해도 된다고."

"취업을 하려면 서울에 있어야겠더라구요. 학교 도서관도 그렇지만 좋은 학원도 다 서울에 있으니깐요. 엄마가 돈 보내줄테니까 '알바' 생각말고 독하게 맘 먹고 공부만 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거든요. 엄마가 대형마트에서 야간조로 일하면서 매달 80만원씩 보내주셨어요."

대한민국에서 취업을 하려면 돈이 들었다. 가장 기본적인 취업 스펙인 대학졸업장에 드는 비용은 4년간 최소한 수천만원에 달했다. 필수라는 어학연수를 포기하더라도 영어 점수를 위한 학원비로만 매달 20만원 이상이 필요했다. 영어점수는 토익 외에도 토익스피킹과 같은 점수가 별도로 필요했다. 그만큼의 돈이 또 들었다.

조선비즈가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마크로밀 엠브레인을 통해 전국 20대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취업한 20대 중에 정규직 비율은 80.3%였다. 계약직과 임시직 비율은 각각 16.6%, 3.1%였다. 반면 미취업자 중 절대 다수(68.3%)는 대학에 재학 또는 휴학 중이었다. 학교졸업 후 취업 준비 중인 비율이 16.8%로 그 뒤를 이었다. 학업·진학을 준비하는 비율은 6.9%, 퇴직 후 재취업 준비 중 비율은 3.8%였다. 취업할 의사가 없는 이들도 3.6%나 됐다.

◆ "취업 준비하는데 왜 빚이 늘까요"…10명 중 3명은 빚 있어

김정아(25·여)씨의 꿈은 국어 선생님이다. 김씨는 늘 '공무원이 최고'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자랐다. 이제는 그 말에 100% 공감한다. 김씨는 다행히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잘해 서울의 한 사범대에 입학했다. 이제 선생님이라는 꿈이 '저만치' 다가온 줄 알았다. '저만치'라는 거리는 생각보다 멀었다. 김씨는 이제 '저만치'는 부모님의 재력에 따라 달라진다고 믿는다.

"솔직히 저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생각했어요. 4종 스펙(외국어·자격증·공모전·어학연수비)이라고 하는 걸 저는 준비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하지만 저는 학자금 대출과 방값만으로도 벅찼어요. 노량진 학원은 딱 한 번 가봤어요."

김씨는 방앗간을 운영하시는 부모님으로부터 한 달에 50만원의 용돈을 받는다. 꽤 많은 금액 같았지만 사정을 듣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 지방 출신인 김씨의 방값은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다. 나머지 20만원으로 각종 공과금과 한 달 밥값을 해결해야 한다.

물론 김씨도 아르바이트를 한다. 명문 여대라는 타이틀은 그에게 과외라는 꿈만 같은 선물을 안겨줬다. 월 50만원을 받는다. 그 돈으로 김씨는 인터넷 강의를 듣는다. 그리고 학자금 대출을 갚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 새 돈은 금방 다 떨어진다. 김씨는 과외를 하나 더 할 생각이다.

설문조사 결과, 700명 중 262명(37.4%)은 현재 상환해야 할 대출금이 있었다. 1000만원 미만이 62.2%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1000만~3000만원 미만 27.9%, 3000만~5000만원 7.3%, 5000만~1억원 미만 1.9%, 1억~1억5000만원 0.8% 순이었다. 2명 중 1명(50.8%)은 원금과 이자를 함께 상환하고 있었다. 이자만 상환하는 비율은 34.7%였다. 10명 중 1명(14.5%)은 이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 "중소기업도 토익 800~900점 원하더라"

"어느 날 집에 들어갔는데 책상 위에 중소기업 채용 공고가 오려진 기사가 놓여져 있더라구요. 자존심이 상했지만 더 이상 취업을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그 때부터 중견·중소기업에도 지원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건 그것대로 쉽지가 않더라구요."

김인수(29·남)씨는 결국 아버지의 도움으로 한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하지만 월급이나 비전 등을 고려해 이직을 계획하고 있다. 김씨는 "중소기업 면접을 볼 때 '왜 토익점수가 900점이 되지 않냐'는 질문에 당황했었다. 중소기업도 스펙으로 사람을 평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토익 900점을 넘겨 막상 중소기업에 입사하니 토익점수가 기간만료 되기 전에 이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설문조사 결과 임시직, 계약직으로 취업을 했거나 취업 준비 중인 경우 중 중소기업에 취업할 의사는 43.0%에 달했다. 연봉 등 조건만 맞으면 취업할 수 있다는 비율도 51.4%이나 됐다. 그만큼 요새 20대가 취업 그 자체에 목 말라 있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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