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표절, 독자들이 '침묵의 카르텔' 깼다

권영미 기자 2015. 7. 7.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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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문학에이스를 위해] 5.마지막회-'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독자와 작가 이상적인 관계는?

[편집자 주] 유명 소설가 신경숙 표절 논란이 한국문학이라는 체제 전체의 작동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며, '누가 한국문학을 죽인 것인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망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재 절체절명의 위기에 한국문학이 처한 것은 분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문단의 일각에선 "문학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신경숙은 우리의 에이스가 아니었다"면서 "한국문학의 건강함을 위해 신경숙 아닌 다수의 다른 에이스를 발굴하고 육성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뉴스1의 기획시리즈 [새로운 문학에이스를 위해]는 다섯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 대표 작가 신경숙의 표절이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한국문학 생산 시스템의 문제점들을 짚어볼 예정이다.

한국문학 추락의 원인은 자본의 논리에만 충실하게 복무한 대형출판사,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문학이 아닌 책상에서 이뤄지는 문학과 문학인을 양성해낸 대학 문예창작과, '돈이 안 된다'며 문학과 책 소개 지면을 줄이고 주례사 비평에 동참한 언론들로 압축되고 있다. 이들에 대한 구조적인 분석과 대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비평과 독자와의 소통에 주저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살았던 문학인들, 책 한 권 사보는 데 인색했으면서도 갖은 비난의 말을 쏟아내는 누리꾼들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새로운 문학에이스를 위해] 시리즈는 검토와 비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건강한 대안과 개혁의 방법을 논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편집자 주]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관련 기사

-"문학은 문학인이" vs "문학도 산업"…신경숙 표절 논란 확전

-신경숙 표절, '침묵의 카르텔'에 언론도 책임 있다

6월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문화연대-한국작가회의 공동주최로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 토론회가 열렸다. © News1

신경숙씨의 표절 논란은 문단에서 십여 년 전부터 제기돼 왔던 문제였다. 그러나 그럴 때 마다 큰 반향없이 사그라들곤 했던 표절 문제가 이전과는 달리 이번에 폭발적으로 점화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독자들의 반응때문이었다.

신 씨의 표절 의혹을 본격적으로 제기한 이응준씨는 지난달 26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독자들의 폭풍 같은 힘이 없었다면 내 문제 제기는 과거 신씨의 표절을 지적했던 다른 글들처럼 무시당하고 묻혀 버렸을 거다"라고 말했다. 독자들을 포함한 누리꾼들이 인터넷 언론의 댓글과 클릭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퍼나르기를 통한 엄청난 반응을 보이며 신경숙 표절의혹이 다시 '침묵의 카르텔'에 의해 가라앉는 것을 막았다는 의미다.

문학평론가인 유성호 한양대 교수 역시 "작가가 생산자이고 독자가 소비자인 일방적인 관계는 이미 인터넷 공간에서는 깨졌다"면서 "그간 주로 종이책으로 소비되는 순문학 부문에선 이 일방적 관계가 유지됐지만 이번 신경숙 표절 사태에서 보듯 이 분야에서도 독자들은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사실을 통해 독자란 단순히 작가가 생산해낸 작품을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문학의 건전한 시스템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읽는 행위(독자)는 쓰는 행위(작가)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흔히 간주되어 왔다. 작가와 독자의 관계는 작품의 생산과 소비, 창출과 향유, 송신과 수신같은 말로 표현될 수 있지만 문학의 중심에 있는 작가에 비해 독자는 오랫동안 부수적인 존재로만 인식됐다.

비평에서 독자를 인식하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다. 1960~70년대 미국과 독일 등에서 시작된 '독자반응 비평'이 문학작품을 통한 독자의 경험을 중시했던 예외적인 흐름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문학사상 거의 모든 비평 이론들은 작가의 의도, 작품의 내용과 형식 등을 분석하는 것을 주된 업으로 삼았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표절 사태가 문학에서 독자의 역할및 작가와 독자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표절 사태의 진행 양상을 보면 다시 독자의 자리가 위축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올 만하다. 문학계는 표절 문제가 불거진 이후 계속 내놓는 대책 속에서 독자들을 아우르려는 노력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문학동네가 지난달 25일 '독자 여러분에게 문학동네가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내놨지만 내용은 전혀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가 아니라 창비와 문학동네 등에 '문학권력' 비판을 제기한 평론가 다섯 명에게만 비공개로 좌담을 제안하는 내용이었다. 독자들에게는 좌담의 결과물만을 볼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이응준 씨는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의 신씨 검찰고발을 반대해 “글 쓰는 사람들이 글로 문제를 해결하길 바라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자정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애초 문제제기부터 글로 시작한 것”이라고 말하며 사태의 문학적 해결을 원했다.

반면 댓글들은 "독자들 돈 갈취한 거나 마찬가진데 검찰고발은 당연", "학생들이 컨닝만 해도 0점에 퇴학 일보직전인데 표절해서 작품이 완성도가 높아졌고 그것으로 경제적 이득을 챙겼는데 당연히 강력처벌해야지"하며 검찰고발을 찬성하는 의견들이 많아 문인들과 독자 또는 누리꾼간의 시각차를 보였다.

아울러 현원장은 "문학인들끼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방식은 전근대적인 것"이라면서 '산업'으로서의 문학을 주장하면서 소비자인 독자가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설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는 "문학을 산업이라고 보면 너무 슬프지 않은가"하는 댓글도 달려 문학작품을 여타의 상품과 같은 것으로 보는 시각, 독자-작가와의 관계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문학 비평이 독자-작가 관계를 비평 대상으로 다뤄야 한다는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 문학평론가인 이현식 한국근대문학관 관장은 "평론가-작가 뿐 아니라 독자-작가 관계의 핵심 역시 '비평'"이라며 "근대 이후 작가와 독자는 출판이라는 대량생산 시스템 하에서 직접 만나는 것이 제한됐고 대신 독자의 대리인이라고 할 평론가들이 둘 사이를 연결해왔다"고 말했다.

이 관장은 "하지만 평론가들이 어찌 보면 '주례사 비평'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 '읽히지 않는 비평'을 양산해 둘 사이를 제대로 이어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학을 전공한 대학생들조차도 비평이 어려워 못읽는다고 말하는 것이 오늘날 비평의 현주소"라면서 "비평이 독자들을 제대로 대변하고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쉬워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관장은 독자들이 직접 비평에 나서는 것에 대해선 조심스런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최근 박범신 선생처럼 온라인으로 작품을 올리고 독자들이 댓글을 통해 감상을 싣는 피드백이 이뤄지고 있지만 독자들이 영향력이 너무 강하면 작가가 소신대로 글을 쓰기 어렵게 되기도 한다"면서 인기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요구때문에 결말이 바뀌는 경우를 예로 들었다.

유성호 교수는 "독자와 작가 사이의 이상적 관계는 정의하기도, 실현하기도 까다로운 문제"라고 했다. 그는 "독자는 전문독자인 비평가와 문학애호가인 일반독자로 나눌 수 있는데 비평가들이 담론을 제시하고 일반독자들은 비평적 감각을 가지고 의견을 개진하며 작가의 수준을 견인해가는 공동체가 이상적"이라면서도 "하지만 역사상 이런 공동체가 실현된 적은 없고 대부분의 독자들이 베스트셀러에 의존해 미적판단보다 유명세나 유행 등에 자신의 취향을 맞춰왔다"고 지적했다.

한편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책을 구매하거나 읽지도 않으면서 문단을 강하게 비난하는 태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작게나마 나왔다. 누리꾼 일부는 신경숙 표절 관련 기사에 "책도 사보지 않는 인간들이 비난에는 열심이구나", "책 하나 읽지도 않으면서 표절 기사 터지니 문학이 어쩌니 문단이 어쩌니 ㅋㅋ 문제집이나 자격증 관련 책 말고 일년에 한 권이라도 보는 인간 몇이나 될까?"의 댓글을 달았다.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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