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구 "복싱은 남보기에 창피하다고 안 합니다"

CBS노컷뉴스 문수경 기자 입력 2015. 7. 7. 06:00 수정 2015. 7. 7.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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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구 사랑의 나눔' 만들어 소년소녀가장 돕고파
자신이 운영하는 서울시 동대문구 장안동 '장정구 복싱클럽'에서 포즈를 취한 전 권투 세계챔피언 장정구. 사진=CBS노컷뉴스 문수경 기자
"복싱은 못 먹고 못 배운 사람이 하는 운동이라는 인식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장정구(52) 전 WBC 라이트플라이급 세계챔피언이 지난 4월말, 동대문구 장안동 촬영소 사거리에 '장정구 복싱클럽'을 열었다. 부산, 인천, 수원에 그의 이름을 빌린 체육관이 몇 군데 있지만 장정구 관장이 직접 관원들을 지도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장정구가 가르친다'고 입소문이 난 덕분에 개관 두 달 남짓 만에 관원 120명을 돌파했다. 장 관장은 "한 곳에 얽매여 있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탓에 체육관 운영을 망설였지만 '제2의 장정구를 키워보라'는 전인욱(54) '장정구 복싱클럽' 후원회장(부림마트 대표)의 간곡한 권유를 뿌리칠 수 없었다.

장 관장은 매일 체육관에 나와서 관원들을 가르친다. "선수가 되려고 오는 분들은 아니에요. 다이어트나 체력 단련이 목적이죠. 커플, 부부, 부녀끼리 오는 경우도 많고요." 생활체육 복싱 동호인은 늘고 있지만 엘리트 선수는 줄고 있는 상황. 그렇다고 후배선수 육성을 포기한 건 아니다. "가르치다 보면 복싱에 재능있는 인재 1~2명은 반드시 있을 겁니다."

장 관장은 선수 육성이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로 우리나라 특유의 '체면 문화'(일명 '가오병')를 꼽았다.

"일본은 현 세계챔피언만 6명이에요. 미국은 한 경기에 파이트머니가 수 백억원 씩 오가고요. 우리보다 잘 사는 일본, 미국은 복싱이 활성화된 반면 우리는 침체일로에요. 왜 그럴까요? 우리나라는 '복싱은 못 먹고 못 배운 사람이 하는 운동'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어요. 복싱을 하면 남보기에 창피스럽다고 안 합니다. 손주세대 정도 돼야 이런 인식이 바뀔 겁니다." 그는 "복싱이 '헝그리 스포츠'라는 건 옛말이다. 지금은 복싱도 경제적인 뒷받침이 안 되면 못 한다"고 강조했다.

12살에 복싱에 입문한 장 관장은 88년 6월 15차 방어를 성공한 후 WBC 라이트플라이급 타이틀을 자진 반납했다. 이후 재기전에서 3패를 떠안았지만 전적(42전 38승 4패)과 상관 없이 그는 한국이 낳은 최고 복서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 복서로는 처음으로 2000년 WBC가 선정한 '20세기를 빛낸 위대한 복서 25인'에 포함됐고, 2010년 국제복싱 명예의전당(IBHOF)에 헌액됐다. 지난해에는 WBC가 제정한 '팬들이 선정한 위대한 선수'로 뽑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제52차 WBC 총회에서 수상했다.

"수상하러 시상식에 갈 때면 '내가 복싱하길 정말 잘했구나' 싶어요. 선수생활할 때 고생하고 열심히 운동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 같아 흐뭇합니다."

자신이 운영하는 '장정구 복싱클럽'에서 포즈를 취한 전 권투 세계챔피언 장정구. 사진=CBS노컷뉴스 문수경 기자
그 중에서도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20세기를 빛낸 위대한 복서 25인'으로 선정된 것이다. "21세기(1901~2000년)에 단 25명만 받았어요. 100년 단위로 주기 때문에 다음 시상은 2100년에야 있을 거에요. 화환 문구에도 '챔피언 장정구' 대신 '20세기를 빛낸 복서 25인 장정구'라고 씁니다." 멕시코에서 열린 시상식에는 아내와 두 딸이 동행했다. "제 이름을 호명하니까 당시 5살이었던 막내가 얼마나 고함을 지르는지 주변 사람들이 다 놀랐습니다. 하하"

모든 걸 쏟아부었다. 선수생활에 후회는 없지만 한 가지, 유명우(전 WBA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와 맞대결을 하지 못한 건 아쉽다. "저는 KBS, (유)명우는 MBC와 전속 계약을 맺었어요. 제 시합은 KBS, (유)명우 시합은 MBC를 통해서만 중계됐죠. 방송사 간 자존심 싸움도 있었고 여건 상 시합이 성사되기는 어려웠습니다." 시합 때마다 꼬박꼬박 써온 훈련일지를 잃어버린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복싱선수는 링에 올라가면 아이큐가 350은 돼야 합니다. (링에서) 내려오면 100이더라도 자기 분야만큼은 아이큐가 그렇게 돼야 한다는 거죠."

장 관장에게는 또 다른 꿈이 있다. 봉사단체 '장정구 사랑의 나눔'(가칭)을 만들어서 소년소녀 가장을 돕는 것. "체육관은 관원 60명만 되면 유지됩니다. 모자라는 부분은 후원회원들 도움을 받으려고요. '짱구'랑 술 한 잔 마신다고 생각하고 10만원 정도 씩 후원해주십시오. 1천만원이 모이면 매달 10명에게 100만원 씩 전달하려고 합니다."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품어안은 장 관장의 한 마디가 뇌리에 남았다. "돈 많아도 한 평생, 돈 없어도 한 평생 아닙니까?"

[CBS노컷뉴스 문수경 기자] moon034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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