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 열기도 전에..면세점 입찰 자격 논란

2015. 7. 6. 09:2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주관광공사 참여에 중소기업 '발끈', 관세청 세부 평가 기준도 모호해

서울·제주 시내 면세점 신규 사업자 선정(7월)을 앞두고 참가 업체들의 아우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문제는 관세청의 모호한 평가 기준 때문이다. 올해 유통 업계 최대 이슈인 면세점 대전의 열쇠를 쥔 관세청은 기업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 가운데 불명확한 평가 기준을 내놓고 있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제주 지역에선 참가 기업의 ‘자격’ 논란이 거세다. 공기업이 출사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관세청은 호텔롯데·호텔신라 등 대기업이 운영 중인 기존 제주 시내 외국인 면세점 두 곳 외에 중소·중견기업이 운영하는 시내 외국인 면세점 한 곳을 추가 허용하기로 하고 지난 6월 1일까지 사업자 신청을 받았다. 이 한 곳을 따내기 위해 신청서를 낸 곳은 엔타스 듀티프리(외식 업체 엔타스 자회사), 제주면세점(부영주택 등 중소기업 7개 업체의 컨소시엄), 제주관광공사 등 세 곳이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제주관광공사, 즉 지방 공기업의 참여다. 정부가 중소·중견기업 몫의 면세점을 따로 마련하면서까지 중소기업 육성에 나서고 있지만 제주도에서는 공기업인 제주관광공사가 시내 면세점 입찰에 참여했다. 특히 정부가 ‘공기업 개혁’을 명분으로 상당수 사업을 민간에 넘겨주면서 한국관광공사도 50년간 운영한 면세점 사업에서 전면 철수한 상황에 제주관광공사의 이 같은 행보는 정부 정책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김종수 관세청 수출입물류과장은 “제주관광공사는 이번 입찰을 위해 중소기업기본법상 중소기업의 요건을 갖춰 중소기업청으로부터 확인서를 받아 제출했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고 설명했다.

공기업이 중소·중견기업인가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중소·중견 면세점 관계자는 “지방 공기업은 중소기업에는 대기업이나 마찬가지 상대”라면서 “기업엔 장벽을 만들어 놓고 지자체는 막지 않는 것은 곧 ‘시내 면세점은 지방 공기업 몫’으로 정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공기업의 참여로 중소·중견기업에 불리한 심사 평가가 이뤄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제주관광공사는 면세점 수익금 전액을 제주 관광 진흥을 위한 공적 자금으로 투입하고 이를 통해 제주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입찰에 참여한 한 면세점 관계자는 “평가표에 따르면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 및 상생 협력 노력 정도에 배점 150점을 배정하고 있는데,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제주관광공사가 수익금을 공익 업무에 활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중소기업이 모든 수익을 공공 목적으로 활용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사와 민간 기업을 동일한 평가표로 평가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제주관광공사 측은 지역의 특수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관광산업 의존도가 높은 제주도는 지역 공기업이 적극 나서 관광 수익을 지역에 환원해야 한다는 여론에 따른 것이라는 것이다.

문성환 제주관광공사 기획전략처장은 “관광산업의 진흥에 따른 과실이 대기업 면세점에 집중되고 있다는 도민 사회의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면서 “그래서 지방 공기업이 이런 시내 면세점을 해야 한다고 도민 여론이 모아지면서 3년 전부터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제주관광공사의 면세점 운영 능력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제주관광공사가 기존 운영 중인 ‘지정 면세점’ 두 곳(제주국제컨벤션센터·성산항)의 당기순이익은 3년 새 80% 줄어들었다. 2014년 11월 발표된 ‘2014년 제주특별자치도 행정사무 감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제주관광공사는 최근 4년간 당기순익 급감, 성산항 면세점 오픈에도 매출 하락, 개발사업단·부설연구소의 성과가 없어 폐지 등 총체적 위기”라고 지적하며 “경영 정상화를 위해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런 운영 능력으로 외국인 면세점 시장을 이미 선점하고 있는 대기업과 시내 면세점 경쟁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잇따르는 것이다. 또한 시내 외국인 면세점 한 곳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약 1000억 원에 달하는 선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만큼 원활한 자금 조달이 가능할지에 관해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제주관광공사가 운영하는 지정 면세점은 외국인 여행객은 물론 내국인 제주도 여행객 역시 이용할 수 있는 면세점으로 지난해 매출이 414억 원이었다. 반면 외국인 여행객과 외국으로 나가는 내국인 여행객이 이용할 수 있는 롯데와 신라가 운영하는 시내 면세점의 매출은 각 2000억 원, 4000억 원대다.

이 같은 지적에 문 기획전략처장은 “이용 제한 조건이 다른 시내 면세점과 지정 면세점의 매출을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제주관광공사가 꾸준히 흑자를 이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기순익 폭이 감소한 것은 사업 확대에 따른 투자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독과점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제주관광공사가 입지를 확정한 중문관광단지 롯데호텔 제주는 현재 제주관광공사가 운영하고 있는 지정 면세점에서 불과 10분 거리에 있다. 이에 한 면세점 관계자는 “현재 운영하는 지정 면세점의 확장이 관세법상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근거리에 국민의 혈세를 사용해 추가로 신규 설립하는 것은 면세 사업의 과잉 욕심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누가 선정되든 뒷말 나올 것”

‘관세청의 평가 논란’은 서울에서도 거세다. 문제는 관세청이 공고한 사업권 심사 기준이 세밀하지 못한 때문이다. 업체별 장단점이 상이해 평가 점수를 객관화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세부적인 채점 기준이나 내용도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선정되든 뒷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이 돌 만큼 공정성에 문제가 제기되는 배경이다.

관세청은 지난 2월 총점을 100점으로 한 사업권 신청 공고를 처음 냈지만 평가 기준이 지나치게 ‘두루뭉술’하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4월 추가 공고를 냈다. 추가 공고에서는 총점을 1000점으로 늘렸고 심사 평가표도 제시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세부 항목만 새롭게 추가됐을 뿐 해당 항목에 대한 평가 기준이나 구체적인 채점 방식 등은 빠져 있다. 4월 발표된 시내 면세점 심사 평가는 ▷특허보세구역 관리 역량(250점) ▷운영인의 경영 능력(300점) ▷관광 인프라 등 주변 환경 요소(150점) ▷중소기업 제품 판매 실적 등 경제·사회 발전을 위한 공헌도(150점)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 및 상생 협력 정도(150점) 등 크게 5개 항목이다. 총 1000점 만점이며 각 항목별로 2~5개의 세부 평가 항목을 두고 있다.

HDC신라면세점·현대DF와 같은 합작 법인이거나 신세계DF·이랜드와 같은 신규 법인은 기존 데이터가 없는 업체이므로 어떤 기준에 따라 평가가 내려질지 모호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평가 과정에서 재무제표를 연결로 볼 것인지, 별도로 볼 것인지에 대한 결정도 명확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세부적인 기준은 추후 심사위가 결정한다는 것이 관세청 측의 방침이다.

한 시내 면세점 후보 업체 관계자는 “심사를 최대한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진행한다고 하지만 세부적인 점수나 자세한 평가 과정이 비밀에 부쳐지는 이상 어떤 기업이 선정되든 특혜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면서 “관세청의 보다 세밀하고 객관적인 심사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종수 관세청 과장은 이같은 논란에 대한 질문에 공식 인터뷰는 어렵다면서도 “문제로 지적되는 사안에 대한 대책은 있지만 공정성을 위해 비공개가 불가피하다”면서 “평가는 공정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세청은 7월 초 15명 선으로 심사위원을 구성하고 서류심사 및 실사, 최종 프레젠테이션(PT)과 질의응답 등을 거쳐 7월 중순께 심사를 마칠 계획이다. 심사위원은 관세청장이 선임하며 정부 위원과 민간인으로 구성된다. 결과는 신규 사업권을 획득하는 기업에만 알리고 세부적인 심사 점수는 공개하지 않을 방침이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

Copyright © 한경비즈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