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무너지면 당신의 연금도 위험하다

박종훈 2015. 7. 6.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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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31

2013년 통계청의 조사 결과, 우리나라 60세 이상 고령자들 중 무려 38.6%가 노후에 가장 큰 위협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꼽았다. 현재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으로 두 명 중 한 명이 빈곤선 아래에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이처럼 절박한 상황에서 노후에 국민연금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국민연금의 보장 수준이 충분해서라기보다는 지금처럼 가계 저축률이 4% 정도 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는 대다수 가계가 국민연금 외에 다른 노후 대비 수단을 마련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는 지극히 낮다. 2013년 KBS의 여론조사 결과, 국민연금의 수령액이 지금과 같을 것이라는 응답은 17%에 불과했고, 응답자의 무려 83%가 지금보다 연금 수령액이 줄어들거나 아예 못 받을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도대체 왜 우리는 국민연금에 대해 이 같은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일까?

국민연금에 대한 불안감은 결코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든든한 노후 연금을 받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를 살펴보면 답은 분명하다. 강력한 청년 투자로 청년들이 경제를 지탱하는 동량(棟梁)이 된 독일같은 나라에선 든든한 연금이 보장되어 있는 반면, 청년에 대한 투자를 꺼리면서 기성세대의 연금만 지키려던 그리스와 스페인 등 남유럽은 청년들의 소득기반이 붕괴되면서 연금 재정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 노인 한 명의 연금에 매달린 두 젊은 영혼

스페인의 젊은 여성 마르셀라는 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한 달에 500유로(약 60만 원)를 받고 노환으로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지내는 아마도르라는 노인의 말동무를 해주는 일을 맡게 되었다. 생활비 걱정을 덜게 된 마르셀라는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뿐, 간병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마도르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당장 눈앞의 돈이 절실했던 마르셀라는 아마도르의 죽음을 딸에게 알리지 않고, 시신과 함께 생활하며 계속 간병하는 것처럼 속이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스페인 특유의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자, 이웃들이 집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수군대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마르셀라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꽃집에서 팔다 남은 장미를 집 안 가득 채워놓고 방향제까지 뿌리면서 시신과 함께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르의 딸이 불시에 찾아오면서 그가 이미 숨졌다는 사실이 들통 나고 말았다. 그런데 그 순간, 시신을 목격한 딸은 뜻밖의 말을 했다. 자신도 아빠의 연금이 계속 필요하니 두어 달만 시신과 함께 더 버텨달라는 충격적인 부탁을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노인 한 사람의 연금에 매달려 살아가는 두 젊은이의 절박한 모습을 통해 스페인 청년들의 비참한 현실을 고스란히 그려낸 영화 '아마도르(Amador, 2010)'다.

■ 국가 부도의 위기 상황에 내몰렸던 스페인의 선택

스페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속히 늘어난 국가부채 때문에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2008년 40% 수준에서 2013년에는 92%대로, 5년 만에 2배가 넘게 급증했다.

이런 최악의 경제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2011년 총선에 나선 마리아노 라호이(Mariano Rajoy)는 노인연금을 2%나 올려주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덕분에 기성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총선에 승리한 라호이는 취임 직후 첫 TV 인터뷰에서 "(재정적자가 아무리 커도) 건드리지 않을 부문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연금"이라며 공약 실천의지를 강조하였다.

■ 미래에 대한 투자를 포기한 나라에서 승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 결과 직격탄을 맞은 것은 바로 청년들이었다. 지난해 스페인의 청년 실업률이 54%까지 치솟아 OECD국가 중에 가장 높았다. 이처럼 높은 실업률에 신음하던 스페인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탈출하기 시작하였다. 스페인 통계청(NSI)은 2020년까지 해마다 50만 명의 스페인 젊은이들이 해외로 빠져나갈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스페인 정부는 나라 빚을 줄이겠다며 2013년 400억 유로(약 50조 원) 규모의 대대적인 재정적자 축소 방안을 내놓았다. 그 주된 내용은 공공기관들의 청년 채용을 대폭 줄이거나, 빈곤층과 청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대폭 축소하는 방안이었다. 이처럼 경제위기 속에서 '버림받은 세대'로 전락한 스페인 청년들은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조차 잃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라호이 총리는 천문학적인 재정적자 속에서도 반드시 노인 연금만은 인상하겠다던 자신의 공약을 지킬 수 있었을까? 청년이라는 버팀목이 무너진 스페인 경제가 이처럼 후한 연금을 지탱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라호이는 자신의 공약을 깨고 연금 수령시기를 65세에서 67세로 늦추고, 연금 지급액을 축소하는 개혁에 나서야 했다. 만일 앞으로도 스페인 청년들의 붕괴를 이대로 계속 방치한다면 이마저도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

■ 당신의 노후가 두렵다면 대한민국의 미래에 투자하라!

좋든 싫든 앞으로 우리 노후에 가장 중요한 소득원은 국민연금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1.19라는 세계 최하위 출산율로 인구가 급속히 줄고 있는데다, 그나마 얼마 안 되는 청년들은 시간제 계약직을 전전하고 있기 때문에 나라의 소득기반이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가까운 미래에 국민연금의 재정 건전성은 크게 위협받게 될 것이다.

청년에 대한 투자에 인색했던 스페인과 이탈리아, 그리스 등 대부분의 남유럽 국가들은 연금 재정의 불안이 가속화되자 결국 연금 지급시기를 늦추거나 연금액을 줄이고 있다. 이에 비해 청년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독일과 덴마크, 벨기에 등은 앞으로 연금 수령액을 점진적으로 올려나갈 계획이다. 이들 나라는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노인 인구가 급증했는데도 연금이 흔들리기는커녕 여전히 든든한 노후 보장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청년에 대한 투자에 인색한 우리나라에서 청년들이 나중에 우리를 위해 천문학적인 국민연금 재정을 감당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욕심일지 모른다. 우리가 이미 남유럽에서 목격한 것처럼, 청년이 무너진 나라에선 우리의 연금도 위험할 수밖에 없다. 우리 자신의 노후를 위해서라도 청년과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를 지금부터라도 강력히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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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기자 ( jonghoo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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