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애국자 당신은 매국노" 투표소 곳곳 'NAI-OXI' 충돌

이덕주,김기철 2015. 7. 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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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투표 전과 후 그리스는 완전히 딴 나라로 변해"젊을수록 반대 지지..두쪽난 국민 생활苦까지 덮쳐'베일인'가능성에 요동..獨국민 "그리스 지원 반대"

◆ 그리스 운명의 날 / 김기철 기자 그리스 르포 ◆

그리스 아테네 국제공항 인근 코우카키 지역에 있는 한 투표소 부근. 젊은 남녀 한 무리가 'NAI(찬성)'라고 쓰인 플래카드에 스프레이로 'X'자를 그린 뒤 'OXI(반대)'라 쓰고 있다. 그러나 곧 주변에 있던 아버지뻘 되는 중년 남자들이 다가오면서 논쟁이 벌어졌고 논쟁은 이내 밀고 당기는 몸싸움으로 커졌다.

'찬성파' 시민들은 대학생들이 들고 있는 '반대' 유인물에 대해서도 "오늘은 투표운동하면 안 되는 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애국자고 당신들은 매국노"라고 외치는 '반대' 대학생들에게 '찬성' 시민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렉시트(Grexit)가 아니라 치프라스 퇴임(Tsipra's Exit)"이라고 맞섰다.

5일(현지시간) 그리스 운명을 결정할 국민투표일이 밝았다. 그리스에서는 이날 오전 7시(한국시간 오후 1시)부터 전국 각지에 마련된 투표소 1만9159개가 일제히 문을 열고 투표를 시작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이날 오전 10시 30분께 아크로폴리스 인근 킵셀리 지역 학교에서 투표를 마치고 취재진 앞에서 "누구도 국민 스스로 운명을 선택한 결정을 무시할 수 없다"며 "내일 우리는 유럽의 모든 국민을 위한 새로운 길을 열 것을 확신한다"고 승리를 확신했다.

반면 야당인 신민당의 안토니스 사마라스 당수는 이날 투표를 마친 후 "오늘 우리 그리스인들은 그리스의 미래를 결정한다"면서 "우리는 그리스와 유럽에 대해 'Yes'라고 투표할 것"이라고 유권자들에게 찬성표를 던질 것을 호소했다.

이날 투표 현장에서는 '찬성'과 '반대'로 갈린 갈등의 골이 정점에 치달으면서 투표소 곳곳에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났다. 그리스 중앙은행 광장에서 마주친 한 시민은 "오늘 그리스와 내일 아침 동이 튼 후 그리스는 완전히 다른 나라로 변해 있을 것"이라며 불안해했다.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독일과 그리스 간 감정싸움도 극으로 치달았다. '테러세력'이라는 원색적인 비난까지 등장했다.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은 "우리가 국민투표를 선택하자 트로이카(유럽연합·유럽중앙은행·IMF)는 은행을 폐쇄하고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어주었다"며 "이것은 바로 테러행위고 우리는 여기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앙금과 상처가 상당히 깊게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지 언론사들이 지난 3일 실시한 마지막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찬성과 반대는 각각 44%와 43%, 43%(입소스)와 42.5%(일간 아브기)로 모두 1%포인트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니코스 마란치디스 그리스 마케도니아대 교수는 "명확한 것은 그리스가 이제 경제 문제만 안게 된 것이 아니라 국민 분열 문제까지 떠안게 된 점"이라며 "앞으로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갈등과 분열은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투표 결과에 따라 '반쪽' 시민들은 허탈감을 느끼고, 나머지 '반쪽' 시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겠지만 당장 들이닥칠 현실은 생활고다.

아테네 도심 바르바케이오스 시장에서 육류를 팔고 있는 제론타스 씨는 "지금까지는 장사하는 데 별문제는 없다"며 "하지만 재고 창고에 보관 중인 물건에 한계가 있어 다음주부터는 공급 자체가 달릴 수 있다"고 말했다.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그리스가 채권단의 조건을 거부할 경우 신규 자금을 수혈받지 못할 것"이라면서 "이로 인해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고 전력 공급도 끊기며 생필품도 수입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투표일 직전 일각에서는 2년 전 키프로스 디폴트 때처럼 은행이 파산 지경에 이르면서 예금자들에게 손실을 부담시키는 '베일인(Bail-in)' 가능성도 언급돼 국민 염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리스 은행들이 8000유로(약 1000만원) 이상인 예금자에게 최소 30% 손해를 부담시키는 방안(헤어컷)을 준비하고 있다고 3일 보도했다. 예금자의 손실 참여는 2013년 키프로스 구제금융 사태 때 은행권 구제금융 지원 조건 중 하나였다. 국제 채권단은 당시 금융위기에 처한 키프로스에 100억유로를 지원하기로 하면서 자구책으로 키프로스 양대 은행의 10만유로 이상 예금주들에게 최대 40% 손실을 강제했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은 FT 보도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트위터에서 "그리스 은행 베일인에 대한 FT 보도는 악의적 루머이며, 그리스은행연합회장이 오늘 아침 이를 부인했다"고 말했다.

독일에서는 더 이상 그리스에 대해 지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3일 독일 제1공영 TV ARD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68%는 그리스와 국제채권단 간 협상 결렬 책임이 그리스에 있다고 응답했으며 그리스가 양보해야 한다는 데 89%가 찬성했다.

[김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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