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청의 타인의 시선] 비엘사의 묘목, 칠레 거목으로 성장

조회수 2015. 7. 5. 15:4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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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는 결과로 평가 받는 곳이지만, 씨를 뿌리는 이도 거두는 이와 같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2015 칠레 코파아메리카'에서 우승을 거둔 호르헤 삼파올리 칠레 감독은 전임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올랭피크드마르세유)에 일정부분 빚이 있다.

메시가 없는 곳에서는 산체스가 왕이라는 조어는 빛을 일었다. 알렉시스 산체스는 메시가 보는 앞에서 파넨카 킥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대회에서 산체스가 메시를 뛰어넘을 정도로 좋은 기량을 보인 것은 아니지만, 칠레는 아르헨티나보다 평균적으로 좋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바로 2007년 칠레를 맡았던 비엘사의 방식(비엘시스타)으로.

4-3-1-2, 압박 그리고 압박

비엘시스타는 극단적인 공격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술이 좋은 공격수 두 명(에두아르도 바르가스, 알렉시스 산체스) 밑에 호르헤 발디비야를 놓고 상대 수비를 괴롭히는 것도 비엘시스타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전방부터 강력한 압박을 하는 부분이다. 결승전에서 이 전방 압박은 가장 두드러졌다. 바르가스와 산체스는 마치 수비형 미드필더처럼 아르헨티나의 수비수와 미드필더들을 몰아 붙였다.

높은 지역에서 공격수들이 상대방의 패스와 경로를 차단하면, 바짝 라인을 올린 미드필더와 수비진들은 공간을 없앴다. 메시를 보유한 아르헨티나와 개인기술이 좋은 공격수를 보유한 다른 팀들이 고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리 좋은 기량을 지닌 선수도 좁은 공간에서 많은 상대와 싸워서 이기기는 어렵다. 특히 아르헨티나와 같이 메시 자체가 전술인 팀은 칠레가 더 벅찰 수밖에 없다. 압박할 대상이 너무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압박 후에는 효율적인 역습이 나왔다. 발디비야의 진가는 여기서 드러난다. 압박으로 빼앗은 공을 전방에 있는 공격수나 침투하는 측면 풀백들에게 무리 없이 전달하는 고리역할을 완벽하게 했다. 발디비야는 화려한 기술을 보이는 선수는 아니지만, 수비수 사이와 뒷공간으로 넣어주는 패스는 다른 누구보다도 뛰었다. 칠레는 우루과이와의 8강전에서 밀집수비를 펼치는 상대를 넘어뜨리는 것도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당시 가장 빛났던 선수는 발디비야였다.

개인이 아닌 팀, 1명 아닌 11명

선수의 이름값으로 보면, 칠레는 아르헨티나나 브라질보다 떨어진다. 산체스라는 걸출한 선수를 보유하고 있지만 축구대륙 남미에서 명함을 내밀기 어려웠던 것이다. 거의 모든 팀이 토털사커를 구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미와 유럽의 전술적 차이를 논하기는 어렵지만, 남미는 여전히 개인적인 플레이에 조금 더 의존하고 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이번 대회에서도 세계 최고 기량을 지닌 네이마르와 메시를 살리는 전술을 썼다.

칠레는 달랐다. 산체스와 바르가스를 살리는 전술이라기 보다는 팀 전체를 키울 수 있는 전술을 활용했다. 모든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많이 뛰면서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현란함을 대체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메시와 같이 개인기가 좋은 선수들을 1대1로 상대하면 무조건 진다. 방법은 몇몇 선수가 같이 싸우는 것이다. 같이 싸우려면 많이 뛰어야 한다. 칠레는 '상대보다 한 발 더 뛴다'는 단순하고도 어려운 숙제를 잘 풀었다.

칠레와 같은 구성은 누군가가 욕심을 내면 무너진다. 11명이 모두 서로를 위해 유기적인 움직임을 해야 하는데, 한 명이 동료가 아닌 자신을 위해 뛰면 그 그물은 끊어지고 만다. 팀을 바라보고 가다 보면 '이게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원론적인 의문이 드는 시점이 있는데, 칠레는 이 지점을 넘어 성적을 냈다. 모두가 희생한 결과다.

상식적이지 않은 홈 어드벤티지

호주오픈이나 프랑스오픈 같은 세계적인 테니스 대회에 가면 노박 조코비치, 로저 페더러 같은 최고 선수들은 메인 스타디움에서 계속해서 경기를 한다. 일종의 시드 어드벤티지인 셈이다. 경기장을 돌아다니지 않으니 다른 경기장의 조건을 고려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건 테니스 이야기다. 축구는 큰 대회에서 한 팀이 한 경기장을 계속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런데 칠레는 이번 대회 내내 한 경기장만을 사용했다.

이번 대회는 총 8개 도시 9개 경기장에서 치러졌다. 상식적으로 한 팀이 모든 경기를 한 곳에서 치를 수는 없다. '2015 호주 아시안컵'을 개최했던 호주는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 뉴캐슬에서 경기를 했다. 5개 경기장 중 4개를 사용했다. 반면 칠레는 6경기를 모두 수도 산티아고에 있는 국립경기장에서 했다. 다른 팀들의 원성을 살 수 밖에 없다. 준우승을 차지산 아르헨티나는 4개 경기장을 사용했다.

주전 미드필더인 아르투로 비달의 음주운전 교통사건 사고도 있었다. 웬만한 나라나 팀에서는 자체 징계를 줄법한 사건이었는데 별다른 일 없이 넘어갔다. 비달은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스스로 '구원' 받았다.

물론 이런 부분이 칠레의 사상 첫 코파아메리카 우승을 가리지는 못한다. 칠레는 우승할만한 전력을 보였다. 삼파올리 감독의 뚝심과 선수들의 희생이 비엘사 감독이 뿌린 씨앗을 거목으로 만들었다.

글= 류청 풋볼리스트 취재팀장사진=칠레축구협회,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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