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르포> 반으로 나뉜 그리스..'오히'(반대) vs '네'(찬성)

입력 2015. 7. 4. 06:43 수정 2015. 7. 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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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카와 전 정부는 거짓말쟁이" vs "치프라스 총리의 말은 프로파간다" 아테네 한복판 800m 떨어진 두 곳서 국민투표 찬반 집회 동시 개최

"트로이카와 전 정부는 거짓말쟁이" vs "치프라스 총리의 말은 프로파간다"

아테네 한복판 800m 떨어진 두 곳서 국민투표 찬반 집회 동시 개최

(이스탄불=연합뉴스) 김준억 특파원 = 6년 전 국가부채를 분식회계한 것이 들통나면서 시작된 현대 그리스 비극은 언제 막을 내릴 수 있을까.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규모의 나라 빚을, 다시 빚을 내서 갚아간 지난 5년은 그리스 국민을 반으로 갈랐다.

채권단의 제안에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의 선거전 마지막 날인 3일(현지시간) 아테네 도심은 그리스어로 '아니오'란 뜻인 '오히(Oxi)'와 '예'인 '네(Nai)' 두 단어가 뒤덮었다.

이날 오후 7시30분 국회의사당 앞 신타그마 광장에는 집권당인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주최한 '오히 집회'가 시작했고, 여기서 800m 떨어진 1896년 제1회 올림픽이 열렸던 파나티나이코 경기장 앞에서도 같은 시각 '네 집회'가 열렸다.

◇치프라스 불끈 쥔 주먹에 "오히! 오히!" 연호

신타그마 광장과 광장을 둘러싼 주변 도로에는 오히 집회가 시작되기 2시간 전부터 시민들로 가득찼다. 'OXI'라고 쓰인 스티커를 붙인 이들의 손엔 그리스 국기와 시리자 깃발이 들렸다.

광장 곳곳에 자리잡은 노점상들은 그리스 전통 꼬치구이인 수블라키와 옥수수를 구웠고, 시민들은 물이나 캔맥주, 커피 등 마실것을 들고 나왔다.

국회 바로 앞에 설치된 무대에 유명 가수들도 올라 시위라기보다 한여름밤의 축제 분위기였다.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던 이들은 짧은 인터뷰를 요청하자 분노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대학생 니토코스씨는 채권단의 제안에 반대하는 이유를 묻자 "우리를 속였기 때문"이라며 "부채가 지속 가능하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우리에게 긴축을 강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 총리인 안토니스) 사마라스도 연금을 깍고 세금을 올리면 그리스 경제가 좋아지고 빚을 갚을 수 있다고 했지만 IMF(국제통화기금)도 헤어컷(채무탕감)이 필요하다고 인정하지 않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설자가 IMF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ECB)으로 구성된 채권단인 '트로이카'의 대표들과 최대 채권국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을 언급할 때마다 시민들은 야유를 보냈다.

또 전 정부들의 총리와 그리스 언론재벌들의 방송사인 스카이, ANT1 등을 언급할 때도 야유가 쏟아졌다.

이날 집회에 수만 명이 운집해 신타그마 지하철 역에서 광장으로 나가기가 힘들 정도였다.

집회의 열기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연단에 오르자 최고조에 달했다.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부친 치프라스 총리는 "우리 국민은 총과 칼 없이 투쟁하고 있다. 그들에겐 더 강한 것이 있다. 정의!"라며 주먹을 불끈 쥐자 시민들은 "오히!, 오히!"로 화답했다.

그는 "일요일에 우리는 단지 유럽에 남는 것만 결정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존엄을 갖고 유럽에서 사는 것을 결정할 것이다"라며 EU 관리들이 이번 투표는 유로존 탈퇴 찬반 투표라고 규정한 것을 반박했다.

◇ 그리스 국기와 EU 깃발 휘날린 '네 집회'…"치프라스 사임하라"

광장에서 도보로 10분 남짓 거리에 있는 파나티나이코 경기장 앞 광장에는 그리스 국기와 EU 깃발이 휘날린 푸른 물결을 이뤘다.

이곳의 시민 가슴에는 'NAI' 스티커가 붙었고 '그리스에 찬성, 유로에 찬성' 등의 구호가 적힌 팻말들을 들었다.

경기장 앞에 설치된 무대에선 흥겨운 팝 음악이 중간중간 흘러나왔고 연사들이 정부를 비판하는 말을 할 때마다 시민들은 깃발을 흔들거나 호루라기를 불면서 호응했다.

이곳 연단에는 게오르게 카미니스 아테네 시장이 올라 "그들(시리자 정부)은 국민투표 후 48시간 안에 협상을 타결할 거라고 말하는데, (채권단) 누구도 그들과 말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직장인 파파디미트리우씨는 "치프라스 총리의 말들은 다 프로파간다다"라며 "지난 5개월 동안 했던 협상에서 실패해놓고 국민투표가 협상력을 높인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긴축을 원하는 건 아니지만 '네'로 결정돼야 협상의 기회라도 생긴다"라며 "'오히'로 결정되면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금요일 퇴근길에 들렀다는 정장 차림의 미누씨는 "1월 총선에선 시리자에 투표했지만 5개월 지켜보고 나니 시리자는 준비되지 않은 정부라는 게 드러났다"며 "치프라스와 (재무장관인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IMF가 전날 그리스의 정부부채가 지속 가능하지 못하기 때문에 탕감도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낸 것이 투표에 영향을 미칠 것이냐는 질문에 "경제학자가 아니라서 자세한 건 모른다, 다만 그리스를 더 나빠지게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에 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류매장 직원이라는 차론타키스씨는 "협상과 관련한 뉴스가 신문과 방송마다 다 달라서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이 집회에 나온 건 은행 문이 닫아서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하루에 60유로만 ATM(현금자동출금기)에서 찾을 수 있는데 다음주 월요일에 ATM에 돈이 떨어지고 키프로스처럼 은행 예금도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얘기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부동표 10%…"누구 말도 믿을 수 없다"

이날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찬성과 반대의 비율은 40%대 초반으로 1%포인트 정도만 차이나는 백중세를 보였다.

또 투표를 이틀 앞뒀지만 선택을 결정하지 못한 비율도 10%대에 달했다.

두 집회가 열린 장소의 가운데 놓인 '완충 지대'인 자피온 공원에서 만난 볼로풀로스씨는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며 아직 어느 쪽을 찍을지 결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EU 관리들이나 정부나 다 협상을 위한 선동일 뿐이지 그들이 말하는 일들이 일어나지는 않을 거 같다"며 투표장에 갈 것인지도 확실치 않다고 밝혔다.

이날 두 집회의 연단에서 나온 연설 중에 가장 많이 들린 단어는 '디모크라티'(민주주의)였다. 두 집회 모두 그리스 국기가 나부꼈다.

그러나 두 곳의 시민들이 민주 국가의 깃발 아래 뭉칠 수 있는 날은 멀어보였다.

justdus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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