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업도에서 <폭풍의 언덕>을 느끼다

김수종 2015. 7. 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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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섬 굴업도를 걷다 2

[오마이뉴스 김수종 기자]

이제 왔던 길을 조금은 비틀어서 옛 마을 터를 조망하며 걸었다. 그리고 다시 목기미 해안을 지나 선착장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차가 거의 없고, 해안도로도 빈약하지만 걷기에는 너무 조용하고 포근한 느낌이 드는 섬이다. 선착장까지는 가지 않고, 우측에 산속을 통과하는 오솔길이 있어 그 길을 따라 올랐다. 작은 섬에도 이런 조용하고 아름다운 숲길이 있음에 놀란다. 곳곳에 독성이 강한 풀인 천남성이 많이 보여 조심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 목기미 해변 정말 이쁜 여인의 허리 같다
ⓒ 김수종
이제 해질녘이 다 되어 숙소로 돌아갔다. 나는 물을 한 사발을 마실까 했더니, 몇몇이 "막걸리를 한잔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하여 수박을 안주 삼아, 강남에서 수학강사로 일하는 서미석 선생이 생크림을 휘핑(whipping)하여 특별히 제조한 막걸리를 나누어 마셨다. 막걸리에 생크림을 넣어 마신 것은 처음이었지만, 새로운 도전에 기분 좋게 즐겼다.
  
▲ 해안의 방풍림 인근 바다의 지나친 모래 채취로 , 방풍림이 뿌리를 드러내고 있다
ⓒ 김수종
조금 쉬다가 저녁식사를 했다. 온갖 해산물과 꽃게탕으로 맛있는 저녁을 했다. 다들 반주가 생각이 난다고 해서 추가로 소주를 한잔하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식사를 마치고는 지난 수년 동안 제작된 굴업도에 관한 영상과 자료집, 지도와 책을 보면서 짧은 토론 시간을 가졌다.

정말 굴업도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반나절 만에 느낌과 감동이 좋은 섬이다. 이어 특별 안주로 민어구이가 나왔다. 대단히 크고 맛도 일품이었다. 굴업도는 1920년대 초까지 해마다 백령도에 이어 민어 파시가 형성되었던 어업전진기지였으며, 최고의 민어산지였다. 당시 파시가 서면 수백 척의 어선과 수천 명이 북적였다고 한다.

▲ 굴업도 지도 잘 만든 지도이다
ⓒ 김수종
늦은 시간까지 담소와 반주를 한 우리들은 이제 잠자리에 들었다. 공기가 너무 맑고 좋아서 기분이 좋다. 20일(토) 아침에 일찍 일어난 사람들은 아직은 개장하지 않았지만, 조만간 해수욕장으로 쓰일 마을 앞의 해변을 산책했다. 우측 멀리 개머리초지가 보이고, 왼쪽에 토끼섬이 보이는 넓은 해변은 상당히 고운 모래밭이라 걷기에 편했다.
▲ 아침 식사 정말 최고의 식사를 4끼 했다
ⓒ 김수종
산책을 마친 사람들은 각자 세수를 하고는 아침식사를 위해 다시 모였다. 아침 역시도 해산물과 김, 산나물 등이 너무 풍성하다. 평소 아침을 조금만 먹는 나는 과식을 할 정도로 너무 맛있게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는 잠시 쉬고 있는 사이에 비가 오기 시작한다. 하루 종일 가랑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던 터였지만, 준비성이 부족해 우산을 준비하지 않은 나 같은 사람들은 우비를 착용하고는 박민영 선생의 길 안내에 따라 해변을 걸었다.

▲ 박민영 굴업도를 사랑하는 건축가 박민영 선생
ⓒ 김수종
순비기나무를 보았다. 바닷가 모래땅에 비스듬히 누워 자라는 작은 나무다. 바닷물에도 죽지 않는 내염성이 있다. 열매는 만성두통 치료제로 쓰이고 잎과 가지는 향료로 쓴다. 앞을 문질러 향을 맡으면 아주 좋은 허브향기가 난다.

보라색 꽃과 까만 열매를 맺는데, 굴업도 사람들은 이 열매를 말려서 향이 좋은 베개 속을 만든다고 한다. 워낙 소량이라 1년에 1개 정도를 만들지, 팔지는 못한다고 한다. 나는 그 잎을 여러 장 따서 주머니 속에 넣었다. 너무 향이 좋았기 때문이다.

▲ 개머리 초지에 많은 금방망이 개머리초지
ⓒ 김수종
이에 천천히 개의 머리모양을 닮았다고 하는 개머리언덕(초지)으로 올랐다. CJ측에서 입구에 출입을 금지하기 위해 철조망과 철문을 만들어 두었지만, 개발이 어려워진 현실 때문인지 요즘은 관리인도 없어 옆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누구나 자유롭게 이곳을 오르내린다고 한다.
▲ 개머리초지 풀과 키작은 잡목이 많다
ⓒ 김수종
개머리초지는 아주 오래전 소와 염소, 사슴 등을 방목하기 위해 나무를 전부 베어내고, 초지를 조성한 곳이라고 전한다. 대략 20년 전까지는 초지로 사용을 하다가 소 방목이 중단된 이후에는 그냥 초지로만 남아있다고 한다. 짙은 안개와 비에 나무는 거의 키 작은 잡목만 보이고, 다양한 풀, 나비, 벌레들이 살고 있는 것이 영국 소설 <폭풍의 언덕>과 같은 느낌이다.
▲ 개머리초지 캠핑족이 많다
ⓒ 김수종
안개가 많은 굴업도에 비까지 오는 날씨라, 눈앞의 초지만 겨우 보일 뿐 삼면의 바다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영화 세트장 같은 폭풍의 언덕 위에는 어젯밤 이곳에서 유숙을 한 캠핑족들만 간간히 보인다.

사실 작은 섬에 화장실도, 상하수도시설도 변변찮은 개머리초지에서의 야영은 내가 보기에는 적극적으로 추천하기에는 조금(?) 그렇다. 자연친화적인 섬이기는 하지만, 보고 즐기는 것으로 만족을 하는 것이 좋지 숙박을 하면서 배설물까지 이곳저곳에 흘리고 가는 것은 사실은 별로인 것 같아 보인다.

▲ 사슴 야생으로 사는 사슴이 사람보다 많은 곳
ⓒ 김수종
육지에서 흔히 보지 못하는 풀과 나무들을 보면서 초지를 둘러보다가 돌아서 나오는 길에 요즘은 야생으로 자라고 있는 어린 사슴을 한 마리 발견했다. 워낙 사람을 두려워하는 짐승임에도, 흐린 날씨에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우리들이 한참을 바라보고 사진도 찍고 있는 가운데에도 오랫동안 서 있다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너무 고마웠다. 현재 굴업도에는 야생으로 자라고 있는 사슴과 염소가 거주민보다는 많다고 한다.  

소의 방목장이었던 초지가 지금은 캠핑족들의 텐트촌으로 바뀌고, 천적이 거의 없는 환경이라 염소와 사슴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자라고 있다고 한다. 아무튼 한국에서는 별로 찾아 볼 수 없는 바닷가의 대형초지에 감동을 해서 그런지, 안개 낀 초지를 이곳저곳 거닐다가 사진도 찍고, 담소도 나누고, 뜀박질도 하면서 놀았다.

나도 개인적으로 다시 기회가 된다면 개머리초지를 중심으로 2박 3일 정도 여유를 갖고, 숙박하며 쉬면서 천천히 굴업도를 걸으면서 가슴 속에 깊이 안고 싶어진다. 너무 멋진 곳이다.

▲ 토끼섬 아름다운 섬
ⓒ 김수종
다시 언덕에서 내려와 해변을 한참 동안 걸었다. 토끼섬까지 가려고 했지만, 아직은 바닷길이 열리지 않아 숙소로 돌아가 한참을 쉰 다음 다시 길을 잡아 토끼섬으로 향했다. 정말 토끼섬은 굴업도 최고의 장관이다. 바위의 생김새와 모양이 화산섬 특유의 느낌과 바람과 파도, 소금 등이 만들어 낸 기묘한 암벽의 모습에 놀랐다.

비가 와서 약간 미끄러운 섬의 초입을 조심스럽게 걸어서 간다. 미역 등의 해초류를 밟으면 큰일이 나지만, 바위에 붙은 굴을 밟으며 걸으면 안전하게 섬으로 진입이 가능하다. 정말 섬 입구 왼쪽 아래에 위치한 활 모양으로 파고든 거대한 해식와는 보는 순간 입이 딱 벌어진다. 과히 국내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대단한 지형이다.

▲ 토끼섬 해변 굴업도
ⓒ 김수종
나는 이곳 해안절벽을 가장 앞서서 보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 나가 절벽의 끝까지 둘러보았다. 파도와 소금, 바람에 침식된 바위벽이 아주 오래된 콘크리트와 비슷한 느낌도 났다. 바위에 붙어서 살고 있는 해초와 조개가 기생하면서도 공생하는 바다의 진실을 품은 듯 보이기도 했다.

굴업도의 서쪽은 건조하고 온도가 높은 데다 강한 파도가 때리는 힘을 받아 바위가 절리를 따라 무너져 내려 절벽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목기미 해안에는 계절마다 온도차가 커 금이 간 바위가 파도에 맞아 떨어져 나가면서 코끼리바위 같은 절경을 이루거나, 거대한 바위군락을 이루고 해안을 차지하고 있다.

▲ 토끼섬의 해식와 굴업도
ⓒ 김수종
그러나 동쪽은 파도의 영향을 덜 받는 대신 바람, 온도, 습도, 소금의 영향을 크게 받아 바위가 부식된 오래된 콘크리트의 모습처럼 곳곳에 작은 구멍과 부풀어 오른 상처를 드러내고 있다. 너무 아름답고 특이하여 한참을 더 보고 싶었지만, 비가 오는 관계로 더 높이 멀리 가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정말 어제 갔던 연평산 아래와 코끼리바위 주변의 풍광과 토끼섬의 경치는 확연히 다르다. 단순하게 생각을 하면 여러 번의 화산 폭발과 마그마 분출이 일어났고, 소규모의 지진과 폭발이 있어서 식생이 다양할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형과 파도, 바람 및 소금, 온도 등의 영향으로 동서차가 심하게 난다고 한다. 아무튼 너무 재미있고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 해식와가 멋진 굴업도 토끼섬 굴업도
ⓒ 김수종
토끼섬을 마지막으로 둘러본 다음 숙소로 돌아와 간장게장 요리로 늦은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짐을 정리하여 선착장으로 나왔다. 이제 배를 타고는 덕적도에서 다시 한 번 배를 갈아타고 인천으로 향한다. 굴업도는 대기업 중심의 개발이라는 광풍이 스쳐지나간 다음,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큰 섬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곳을 지킨 주민들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조용하고 편안한 섬으로 지금 이대로의 모습이 오랫동안 간직되었으면 한다.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와서 몸이 축 늘어졌다. 힘들었지만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던 1박 2일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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