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 수혈됐던 '수천억유로', 그 많은 돈은 누구 주머니로?

2015. 7. 2. 10:2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그리스 위기

지원금 313조의 92%채권자 주머니로 갔다

사실상 '디폴트'에 빠진 그리스 경제는 왜 5년 전 수천억유로의 구제금융을 수혈받고도 회복하지 못했을까? 일부의 주장처럼 그리스 정부가 강도 높은 긴축을 하지 않고 복지 등에 무책임하게 탕진해버렸기 때문일까?

대답은 '아니다'이다. 영국에 있는 세계 부채탕감 운동 조직인 '주빌리 부채 캠페인'은 그리스 정부에 제공된 구제금융의 92%가 다시 채권자들에게 돌아간 것이 위기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금융위기 이전 그리스에 돈을 빌려준 민간기관들의 몫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구제금융 중 그리스 경제의 몫으로 돌아간 것은 채 10%도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결과, 2010년 당시 3100억유로였던 그리스의 부채는 2015년 현재 3170억유로로 오히려 늘었다. 구제금융이 그리스 경제를 회복시키기는커녕, 빚만 늘리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는 구제금융이 채권자, 특히 유럽의 상업은행 등 민간 채권자들의 투자금 회수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 휩쓸려 허우적대던 그리스는 2010년 3100억유로의 부채 더미에 올라 재정 파탄 상태에 몰렸다. '트로이카'(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는 그리스에 최저임금과 연금 삭감 등을 통한 긴축을 실시하는 조건으로 '구조'에 나섰고, 현재까지 2520억유로(약 313조원)의 구제금융을 지원했다.

유럽은행 등 민간 채무 갚거나파산 몰린 자국은행에 투입경제 위해 쓴 돈은 201억유로뿐2010년 3100억유로였던 부채올 3170억유로로 되레 늘어

주빌리 부채 캠페인이 올해 초 내놓은 분석을 보면, 그리스 정부는 지난해 말까지 지원받은 2520억유로 가운데 1492억유로(59%)를 부채 원금과 이자를 갚는 데 썼다. 지난 5년간 적게는 한해 224억유로에서 많게는 405억유로(약 50조원)씩 갚아왔다. 지난해 그리스 국내총생산(GDP)이 1864억유로였으니, 많게는 국내총생산의 22%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빚을 갚아왔다는 얘기다.

구제금융 가운데 약 345억유로는 민간 채권자들에게 부채탕감에 대한 대가로 건네지기도 했다. 2012년 부채 협상에서 자신들의 채권 1000억유로를 탕감해줘야 할 처지에 몰린 민간 투자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준 것이다. 이 돈도 고스란히 그리스의 빚으로 남았다. 당시 트로이카의 지휘 아래 이미 민간 부문 채권자들은 그리스 정부에 빌려준 돈의 상당 부분을 돌려받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공공기관 관련 부채는 상환 대상에 올라 있지 않았다. 특히 주요 채권자였던 그리스 은행들과 그리스 연기금은 전혀 상환받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민간 부문 채권자들이 50%의 부채탕감 결정을 하자 이들 기관은 파산에 이르렀다. 결국 그리스 정부는 2012년 다시 국내 채권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트로이카로부터 또 돈을 빌려야 했다. 그리스 은행들을 구제하는 데 482억유로를 썼다.

결국, 구제금융을 받아 그리스 정부가 손에 쥐고 자국 경제에 투입한 금액은 201억유로에 불과했다. 복잡한 셈법의 끝은 간단했다. 그리스에 지원된 구제금융은 그리스 경제와 시민이 아닌 유럽의 민간 은행들의 몫이 된 것이었다.

경제기업조사센터의 수석 경제자문가 비키 프라이스는 "은행 부문에서 이뤄진 '구조'는 사실 그리스에 과도하게 빚을 내준 북유럽 금융회사들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허핑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민간 부문에서 빌린 돈이 대부분이었던 그리스 정부 부채는 현재 약 78%가 유로존의 공공 부문으로 넘겨진 상황이다. 팀 존스 주빌리 부채 캠페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럽과 그리스의 은행들이 구제받을 동안 그리스 국민들에겐 부채만 쌓였다"며 "이는 1980년대와 1990년대 개발도상국들이 겪어야 했던 금융위기 때와 같은 부당한 대응"이라고 비판했다.

2010년 그리스 국내총생산의 133%에 해당했던 부채는 2011년 말 162%로, 2015년 현재는 175%로 늘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에 대해 "그리스 경제가 붕괴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리스의 성장률은 2010년 -5.4%, 2011년 -8.9%를 기록하는 등 마이너스 행진을 계속하다 지난해 겨우 0.8%로 반등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마틴 울프 경제담당 수석 논설위원은 지난 1월 칼럼에서 "구제금융 이후 그리스 국민의 지출이 실제로는 40% 이상 감소했다"며 "그리스의 불황은 재앙"이라고 지적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이상돈 교수 "친박이 천박해졌다" 직격탄박 대통령 '뒤끝' 계속?…광주에서도 정의화·김무성 외면"분노가 불안을 떨쳤다" 그리스 도심 한밤 환호 인파[만평 몰아보기] "고마해라"…청와대의 '보복 운전'[화보] 이것 아는 사람, 최소 '30대' 이상?

공식 SNS [통하니][트위터][미투데이]| 구독신청 [한겨레신문][한겨레21]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