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일의 NBA액션] 스티브 커, 그의 존재가 '커'보이는 이유

스포츠팀 입력 2015. 7. 2. 06:01 수정 2015. 7. 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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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조현일 해설위원] 1996년부터 4년 연속 챔피언을 차지한 스티브 커는 실로 오랜만에 1960년대 보스턴 셀틱스 멤버들을 소환했다. '보스턴 왕조'를 이룩했던 당대 전설들 이후 처음으로 개인 4연패를 달성한 선수가 됐기 때문이다. 퇴장도 대단히 화려했다. 한솥밥을 먹었던 데이비드 로빈슨처럼 우승과 동시에 코트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마지막 시즌을 포함해 커는 14년의 선수 생활 중 무려 5차례나 우승 반지를 손에 끼웠다.

그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다. 루트 올슨, 레니 윌킨스, 필 잭슨, 그렉 포포비치 감독을 스승으로 뒀다. 마이클 조던, 팀 던컨, 데이비드 로빈슨 같은 빼어난 동료와 함께 뛰었다. 그는 NBA를 대표하는 승자이기도 했다. 정규시즌-플레이오프 합계 가장 많이 승리한 세 팀에 모두 커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1995-96시즌 불스 87승, 1996-97시즌 불스 84승, 2014-15시즌 워리어스 83승).

선수 생활을 접은 뒤에도 농구 코트를 떠나지 않았다. 피닉스 선즈 단장을 맡아 또 다른 능력을 발휘했다. 이후 NBA 해설위원으로 변신해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커는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길에 도전했다. 이번에는 NBA 감독이었다.

2014-15시즌을 앞두고 커는 지휘봉을 잡는 조건으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5년 계약을 맺었다. '스승' 필 잭슨이 버틴 뉴욕 닉스행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커의 선택은 골든스테이트였다. 커는 신인 감독 최다인 16연승 기록을 세우는 등 정규시즌을 67승으로 마감했다. 반면, 함께 NBA 감독 생활을 시작한 데릭 피셔는 뉴욕에서 고작 15승을 거두는데 그쳤다.

▲ 황소떼의 품으로

커는 1988년 드래프트 2라운드 50순위로 NBA의 지명을 받았다. 4년간 애리조나 대학을 다니며 모교를 파이널 포(1988년)로 이끄는 등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빈약한 체격, 떨어지는 개인기의 한계를 이겨내기는 쉽지 않았다. 애리조나 대학에서 보낸 4년간 기록한 3점 성공률(57.3%, 학교 역대 1위)도 스카우터들의 마음을 돌리진 못했다.

커의 프로 초창기는 밋밋했다. 특유의 외곽포는 정확했지만 그 이상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벤치에서 가장 먼저 출전하는 식스맨 포지션은 언감생심. 피닉스 선즈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커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올랜도 매직을 거쳐 불스에 입단했다.

2013-14시즌 우승의 주역, 대니 그린(샌안토니오 스퍼스)은 스퍼스 입단에 앞서 그렉 포포비치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간곡히 부탁했다. "뭐라도 다 하겠다. 주전자라도 나르게 해 달라." 그린 이전에 커가 있었다. 올랜도와의 짧았던 인연을 끝낸 커는 불스 사무실로 직접 전화를 걸어 트라이-아웃을 부탁했다. 존 팩슨이 은퇴하면서 슈터 영입이 필요했던 필 잭슨 감독은 커의 몸 상태를 체크한 후 OK 사인을 내렸다.

간신히 한 자리를 차지한 커는 치열한 생존 경쟁을 펼쳤다. 1993-94시즌부터 2년 간 164게임 전 경기에 나섰다. 1993-94시즌 기록한 8.6점은 생애 최다 기록. 1995-96시즌 조던이 복귀하면서 커는 역대 최고의 슈팅가드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맡았고 이를 잘 소화해냈다.

사실, 커는 조던과 썩 원만한 관계가 아니었다. 조던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죽도록 연습했던 그는 투지가 지나쳤던 나머지 팀 훈련 도중 조던의 심기를 건드려 주먹세례를 받기도 했다. 다음 날 조던은 커를 찾아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정중히 사과했다. 이후 조던은 커의 플레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했으며 그의 생각을 존중했다.

커는 1997년 파이널 6차전에서 우승을 확정 짓는 결승 득점을 올렸다. 작전시간 도중 조던과 눈빛을 교환한 후 조던의 어시스트를 받아 특유의 정확한 중거리슛을 터뜨렸다. '농구 황제'의 주먹을 부르기도 했던 벤치 멤버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부터 볼을 건네받은 것이다. 승부욕 강하고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의 조던에게 인정받는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

2003년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 6차전은 더욱 극적이었다. 샌안토니오는 4쿼터 초반 13점 차로 끌려가고 있었다. 댈러스 매버릭스의 기세와 경기력을 고려할 때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점수 차였다. 이때 포포비치 감독은 색다른 카드를 꺼내 들었다. 플레이오프 들어 17경기 중 고작 5게임에 출전(13분)한 커를 투입한 것이다.

벤치만 뜨겁게 데우던 커는 코트를 밟자마자 연거푸 3점을 터뜨렸다. 슛 자세는 흔들림이 없었다. 표정도 포커페이스 그대로였다. 야금야금 추격한 샌안토니오는 4쿼터를 34-9로 압도한 끝에 극적인 역전승을 따냈다.

이날 커는 13분간 4개의 3점슛을 모두 넣었다. 제 발로 불스를 찾아갔을 때만큼 간절했고 치명적이었다. 6차전을 잡아낸 샌안토니오는 결승에서 뉴저지 네츠를 4-2로 꺾고 우승컵에 입맞춤했다. 핵심 로테이션에 포함되기도 쉽지 않았던 벤치멤버였지만 무임승차는 결코 아니었다.

▲ 그가 더 '커'보이는 이유

커는 NBA에서만 3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고 있다. 선수는 물론, 단장과 TV 해설가, 감독까지 NBA와 관련한 대부분 주요 직업을 거쳐 왔다. 열린 사고방식, 친밀한 리더십, 남다른 친화력으로 야생과도 같은 NBA 정글을 버텨냈다. 그런가 하면 남다른 냉철함도 갖고 있다. 불스 시절, 커와 한솥밥을 먹었던 룩 롱리는 "그 양반? 엄청난 냉혈한이지. 차가운 피가 흐르는…"이라는 말로 커의 또 다른 매력을 설명했다.

시카고 시절, 커는 조던이나 스카티 피펜을 대신해 불스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했다. 화려한 언변 속에는 배려심이 깃들어 있었다. 논란이 될 만한 언행은 절대적으로 조심했다.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그는 선수들과 수평적인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2014-15시즌 파이널 4차전을 앞두고 커 감독은 주전 센터인 앤드류 보거트 대신 1년 내내 스타팅으로 뛴 경험이 없었던 안드레 이궈달라를 주전으로 내세웠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극단적인 스몰라인업이었다.

그런데 이는 커 혼자만의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서른 살도 채 되지 않은 막내 스태프, 닉 유렌의 작품이었다. 유렌은 한밤중에 커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보거트 대신 이궈달라를 선발로 넣는 게 나을 듯해요, 감독님." 막내 스태프와의 한밤의 대화는 몇 시간 동안 이어졌다. 통화가 끝난 뒤 커 감독은 결국 라인업을 바꾸기로 했다.

지난 3월 덴버 너기츠와의 원정경기를 앞두고 커 감독은 스테픈 커리, 클레이 탐슨 등 주전들을 출전시키지 않았다. 이에 대해 몇몇 팬들이 '돈을 낭비했다'며 항의 메일을 보냈다. 커 감독은 사태를 관망하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후 일일이 직접 답장을 보내 사과 메시지를 전했다. 유연하면서도 세련된 대처능력이었다.

또 2주에 한 번씩 선수들과 면담을 했다.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화합을 도모했다. 많은 시간을 뛰지 못하는 벤치 멤버들에게도 각별한 신경을 기울였다. 어시스턴트 코치의 아이디어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골든스테이트의 우승은 커 감독의 우승 DNA와 온화한 리더십이 만든 합작품이었다.

커가 태어난 곳은 미국이 아니다. 레바논의 베이루트다. 아버지 말콤 커가 중동지역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레바논 소재 미국대학 총장이었던 아버지의 삶은 오래가지 못했다. 커는 1984년 1월 이슬람 반군의 손에 아버지를 잃었다. 애리조나 대학 1학년 때 맛본 비극이었다. 조부와 아버지를 가장 존경했던 커에겐 이겨내기 어려운 역경이었다.

우승을 확정 지었던 파이널 6차전은 '아버지의 날'이 있는 주(週)였다. 가르침을 직업으로 삼으며 행복을 느꼈던 자신의 아버지처럼 커 역시 남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배움을 전수하고 있다. 커가 획득한 6개의 NBA 챔피언 반지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감독으로서 따낸 이번 우승이 더욱 값져 보이는 이유다.

[사진] 스티브 커 ⓒ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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