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의 탈락으로 보는 한국 테니스의 윔블던 도전사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2015. 7. 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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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분패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풀세트 접전 끝에 윔블던이 주목했던 정현(79위·19)은 1회전에서 탈락했다. 그만큼 윔블던의 문은 단단하다. 한국 선수의 윔블던 도전 역사는 처절함 그 자체였다.

정현은 30일(한국시각) 영국 윔블던의 올잉글랜드 클럽에서 열린 윔블던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본선 1회전에서 피에르-위그 에베르(151위·프랑스)를 상대로 풀세트 접전을 펼쳤으나 세트스코어 2-3(6-1,2-6,6-3,2-6,8-10)으로 패했다.

경기를 마친 뒤 정현은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강했는지 나도 모르게 소극적으로 경기를 했다"며 "주니어 때와는 확실히 다른 것 같다. 모든 선수들이 톱랭커같다. 그랜드슬램 본선 승리는 다음 기회를 노려야할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왼쪽부터 이덕희, 이형택, 정현

정현이 있기 전에도 한국 선수들은 40여년 동안 수없이 윔블던의 문을 두드렸다. 그 속에서 분명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해내기도 했다.

비공식적으로 윔블던 무대를 처음 밟은 것은 1973년이었다. 당시 유럽 전지훈련을 떠났던 한국 대표팀은 윔블던 대회 혼합복식에 김성배-이덕희 조, 김문일-양정순 조를 내보냈다. 하지만 당시 대회 출전은 전지훈련의 연장선상에서 참가한 탓에 공식 기록에서는 제외되고 있다.

공식적인 첫 출전은 '한국 테니스계의 대모' 이덕희가 참가한 1980년 대회였다. 한국 프로 테니스 선수의 시초인 이덕희는 한국선수로는 처음 출전해 운좋게 1회전 부전승을 거두며 2회전에 진출했다.

이덕희는 1983년 대회 때 체코의 마르셀라 스쿠헤르스카를 꺾어 정식 1승을 한국 테니스 역사에 바쳤다.

이덕희 여사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1995년 20세의 박성희가 윔블던에 나섰다. 그리고 1996년 대회에서 2회전에 올라 선배 이덕희의 맥을 잇기도 했다. 이처럼 여자테니스가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기는 동안 남자 테니스는 더뎠다. 다행히 이형택의 등장으로 한국인의 윔블던 도전사는 확 바뀌었다.

2001년 세계 랭킹 64위 이형택은 세계랭킹 46위 다비드 프리노질(독일)을 상대로 첫 윔블던 본선에 도전했다. 하지만 1회전에서 1-3 역전패를 당하며 세계의 벽을 절감했다. 당시 세계 랭킹 161위 윤용일 역시 이형택과 동반 출전했지만 세계 랭킹 7위였던 예브게니 카펠니코프(러시아)에 0-3으로 완패했다.

윔블던 처녀출전을 마친 이형택의 기량은 갈수록 향상됐다. 2002년 단식 1회전에서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110위 안드레이 스톨리아로프(러시아)를 3-2로 꺾으며 한국 남자선수로는 사상 첫 윔블던 1회전 통과라는 쾌거를 이뤘다.

하지만 2003년 대회에서 이형택은 1회전에서 세계 최고인 로저 페더러(스위스)를 만나 2002년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했다. 반면 당시 세계 여자 랭킹 46위였던 조윤정은 크리스티나 토렌스 발레로(스페인)에 2-1로 승리했다. 아쉽게도 2회전에서 스베틀라나 쿠즈네초바(러시아)에게 0-2로 패하며 그 돌풍은 아쉽게 이어지지 못했다.

2005년은 남녀 동반 1회전 통과의 역사를 쓴 해였다. 이형택은 스웨덴의 노장 토마스 엔크비스트을 따돌리고 1회전을 통과했고, 조윤정은 스페인의 아란차 파라 산토냐를 꺾고 2회전에 올랐다. 아쉽게 두 선수는 2회전에서 동반 탈락했다. 이형택은 한국계 케빈 김(미국)과 함께 복식에도 나갔지만 1회전에서 탈락했다.

2006년에도 이형택은 2회전까지 진출했으나 3회전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어느새 윔블던 본선 3회전 진출은 한국 테니스의 숙명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2007년, 이형택은 6번의 도전 만에 드디어 3회전 진출의 쾌거를 이뤘다. 예견된 결과였다. 당시 세계 38위까지 오르며 자신의 역대 최고 순위를 찍고 있었기 때문.

재밌는 것은 1회전에서 맞붙은 마르틴 아르게요와 2회전 상대 아구스틴 칼레리 모두 아르헨티나 국적이었다. 아르헨티나가 한국 테니스 역사를 쓰는데 도움 아닌 도움을 준 것. 아쉽게 3회전에서는 토마스 베르디흐(체코)에 0-3으로 패하며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이형택의 2007년 3회전 진출은 한국 테니스 역사상 윔블던에서 가장 높은 단계에 오른 것으로 기록돼있다.

이형택은 2008년 1회전에서 부상으로 기권패 당한 후 더 이상 윔블던 무대를 밟지 못했다. 자연스레 한국 테니스의 윔블던 도전 역시 끊기고 말았다. 이형택 이후 한국 테니스를 이끌어나갈 거목을 찾지 못했던 한국은 드디어 2015년 아직 만 19세밖에 되지 않은 정현이 다시 윔블던 무대에 서며 약 7년여 만에 도전을 재개할 수 있었다.

정현의 나이는 앞날이 창창한 19세. 한국 역사상 윔블던 대회에서 가장 높은 단계에 오른 이형택도 윔블던 처녀출전이 25세 때였고 3회전 진출사를 썼을 때는 이미 31세였다. 이에 비하면 정현은 아직도 도전의 나날이 많이 남아있다.

사진=대한테니스협회, 스포츠코리아 제공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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