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線 넘어 온 100쌍의 백년가약

오로라 기자 2015. 7. 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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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을 계기로 탈북민 100쌍 합동결혼식 14K 커플링 나눠 낀 신부 "제2의 삶을 시작하는 날"

30일 오후 3시 서울 송파구 SK 올림픽핸드볼경기장. 경기장 바닥에 깔린 레드카펫을 밟은 한 신부가 긴장된 표정으로 남편 손을 꼭 잡았다. 탈북 여성 오모(31)씨와 중국인 남편 정모(36)씨였다. 두 사람은 이날 혼례를 올렸다. 2004년 탈북해 중국에서 만난 남편과 함께 산 지 11년이 됐지만, 탈북자 신분이 탄로 날까 봐 그동안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 경기장 2층 하객석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오씨 모습을 바라보던 가족은 자리에서 일어나 "축하해요" 하고 소리쳤다. 오씨처럼 새하얀 드레스에 분홍색 공주화를 신은 딸(11)은 스크린에 비친 엄마 모습을 보며 "예쁘다"고 외쳤다. 긴장했던 오씨는 그제야 웃음을 보였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와 재단법인 행복세상이 이날 북한 이탈 주민 100쌍의 합동결혼식을 열었다. 합동결혼식이 열린 경기장은 오전 10시부터 주최 측이 준비한 14K 커플링을 받고 좋아하는 신랑 신부들로 붐볐다. 참가 신청을 한 130여쌍 중 선발된 100쌍의 부부 가운데 일정을 맞추지 못한 10쌍이 참석하지 못해 이날 결혼식에는 총 90쌍이 참석했다. 이 중 신부 90명은 전부 북한 출신이고, 신랑 90명 중 60%는 탈북자, 30%는 중국인, 10%는 한국인이었다. 부부 나이는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했다.

이날 결혼식장에 선 탈북 여성 최모(42)씨는 지난 27일 주최 측이 택배로 보낸 웨딩드레스를 받고서는 밤잠을 못 이뤘다고 했다. 최씨는 1998년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정착하고서 중국 동포 한모(50)씨와 결혼했다. 그러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직전에 중국 공안에 적발돼 강제 북송되고 가족과 5년간 생이별했다. 동네 사람들은 "북송돼 살아 나오는 사람은 없다"며 남편 한씨에게 재혼을 권유했지만, 그는 아내를 기다렸다. 5년이 지난 2013년 3월에야 두 사람은 서울에서 재회해 부둥켜안고 울었다. 이날 식장에서 최씨는 "결혼식을 계기로 제2의 삶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에 두고 온 가족 생각에 화장한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신부도 있었다. 탈북 여성 이모(30)씨는 북에 있는 여동생 생각에 결혼식 중 연방 눈가를 훔쳤다. 중국에서 만난 남편과 아이 4명을 낳은 이씨는 "북에 있을 때 산에서 벤 나무를 팔며 겨우 입에 풀칠했고 배가 너무 고파서 지난 2006년 탈북했는데, 가난에 못 이겨 먼저 결혼한 동생은 나오지 못했다"며 "나는 오늘 드레스를 입고 예쁘게 화장도 하고 결혼식을 올리는데 북에 남은 동생은 고생할 거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이날 결혼식에선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축사를 하고 전성환 합동결혼식 추진위원장이 주례를 맡았다. 식이 마무리된 오후 4시쯤, 부부들은 자유롭게 식장 안을 돌아다니며 가족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 후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부부들은 주최 측이 마련한 버스를 타고 서울 강남구에 있는 리베라호텔로 만찬을 하러 이동했다. 이날 결혼식의 최고령 탈북자 부부인 유모(61)씨도 아내 김모(55)씨 손을 잡고 나왔다. 유씨는 "탈북해 중국에서 각자 떠돌아다니는 동안 악으로 버텨왔는데 결혼식을 올리니 응어리가 풀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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