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 쓸쓸하게 떠난 '금메달리스트'..비운의 역사 김병찬

권혁준 기자 2015. 6. 30.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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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역도 스타 김병찬씨의 경기 모습. (사진-mbc 영상 캡쳐) © News1

(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비운의 역도 스타 김병찬(46)이 자신의 집에서 홀로 쓸쓸히 숨진 채 발견됐다. 춘천경찰서는 26일 오후 7시20분께 춘천시 후평동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김병찬이 숨져 있는 것을 이웃 주민이 발견해 신고했다고 30일 밝혔다.

김병찬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역도스타였다.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남자 90kg급에 출전한 그는 당시 국내 1인자였던 선배 이형근을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가 들어올린 합계 367.5kg은 당시 아시아최고기록이었다.

1991년과 1992년에는 2년 연속 아시아선수권 3관왕을 차지했고, 1991년 세계선수권에서도 은메달과 동메달을 목에 걸며 포효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도 출전했지만 2.5kg 차이로 아쉽게 4위에 그쳤다.

명실상부한 한국 역도의 간판스타의 마지막이 이렇게 비극적일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없었다.

1996년,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면서 그의 운명이 바뀌었다. 현역생활을 좀 더 연장할 수도 있었던 27세의 김병찬은 그렇게 쓸쓸히 역도계를 떠나야 했다.

대한역도연맹 관계자는 "갑자기 안 좋은 사고를 당했고, 이후 역도 연맹이나 관계자들과도 왕래가 끊겼다"고 회상했다.

한평생 역도만을 바라보고 살아왔던 그에게 하반신 마비는 시한부선고와도 같았다. 거동이 불편했기에 다른 직업을 구할 수도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보살피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했다.

그의 한달 소득은 52만5000원이었다. 1990년 금메달을 딴 대가인 메달리스트 연금이었다. 최저생계비 지급 기준(49만9288원)보다 3만원 가량이 많은 액수였기에 최저생계비조차 받을 수 없었다.

2년전에는 그의 곁을 지켜주던 어머니마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는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에는 식도암 초기 진단을 받고 매달 한 번씩 항암치료를 받아야했다.

하반신마비에 암세포까지 떠안은 그는 결국 2년을 넘기지 못했다.

이웃 주민은 "예전에 유명했던 역도 선수가 같은 아파트에 어렵사리 산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우리나라를 빛낸 금메달리스트가 홀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니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역도연맹 관계자도 "연락이 끊긴지 오래돼 소식을 알지 못했다. 기사를 보고나서야 별세한 사실을 알았다"며 안타까워했다.

김병찬은 30일 화장을 거쳐 춘천안식원에 안치됐다. 중·고교 시절 역도를 함께했던 동료들과 강원도체육회 관계자들은 뒤늦게나마 빈소를 찾아 그의 명복을 빌었다.

starbury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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