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의 마니아썰]생존 위해 티박스마저 옮긴 남자프로골프

김세영 기자 2015. 6. 3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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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청년실업률이 외환위기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문제는 내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지금보다 더 악화될 것이라는 데 있다.

경제상황은 좋지 않은데 대졸자들은 쏟아지는 반면 은퇴자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대학 4년도 모자라 졸업을 미루면서까지 취업에 매달렸는데 오갈 데 없는 '백수' 신세가 되니 우울할 수밖에.

얘기를 골프로 옮겨보자. 지난주 군산CC오픈을 끝으로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는 상반기 일정을 모두 마쳤다. 지난 4월 개막전이었던 동부화재 프로미오픈 이후 두 달 만이다. 투어는 8월 하반기나 돼야 재개된다. 두 달간은 '개점휴업' 상태다.

상반기 남자 골프는 6개 대회를 치렀다. 그 중 원아시아 투어 대회가 2개(매경오픈, SK텔레콤오픈) 포함됐다. 매경오픈은 더구나 대한골프협회(KGA)가 주관하는 대회여서 KPGA 투어 선수들의 출전 폭은 더욱 좁았다. 특히 시드전을 통해 올해 투어 무대에 합류한 '새내기'들에게는 출전 기회가 거의 돌아가지 않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대부분의 새내기들이 출전한 대회는 4개에 불과하다.

사진/한석규 객원기자

이런 상황에 대해 한 선수는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선수는 "두 달 쉬는 동안 전지훈련이라도 가야할 판"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대회에 나가 상금으로 먹고사는 투어 프로들에게는 일거리도 줄어든 데다 그나마 있던 직장마저 일시 폐쇄된 셈이다.

남자 대회를 취재하는 한 사진 기자는 "선수들이 집단 무기력증에 빠진 것 같다"고 했다. 이어 "표정만 봐서는 버디를 했는지 보기를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남자 대회의 침체된 현실이 그대로 표정과 몸짓에서 드러나는 것"이라고 했다.

프로 골퍼가 되기 위한 길은 험난하다. 어린 시절부터 골프채를 잡은 그들은 프로 골퍼를 목적으로 정한 그 순간부터 치열한 '경쟁의 세계'에 내몰린다. 수많은 난관을 뚫고 프로 골퍼가 됐다고 해서 장밋빛 인생이 펼쳐지는 건 아니다.

진짜 경쟁은 그때부터다. 투어에 나가기 위해서는 퀄리파잉스쿨(Q스쿨)을 치러야 한다. 대회마다 다르지만 여기서 상위 40~50명 안에 들어야 그나마 출전을 보장 받을 수 있다. 투어에 뛰면서는 상금 랭킹 60위 이내에 속해야 이듬해 시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다시 Q스쿨을 치러야 하는 고난의 행군이 이어진다.

이렇게 어려운 관문을 뚫고 들어왔는데 참가할 대회가 없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반면 KPGA 투어에서 한때 '셋방살이'를 했던 여자골프는 최대 호황기를 맞고 있다. 매주 대회를 치르고, 매 대회장마다 '구름 갤러리'가 몰린다. 여자 골퍼들은 흥이 샘솟아 더욱 좋은 샷으로 보답한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남자 골퍼들의 박탈감은 더욱 커진다.

사진/한석규 객원기자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남자 프로 골퍼들은 '생존'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단적인 예가 프로암의 변화다. 개막전이었던 동부화재 프로미오픈 프로암 당시 선수들이 라운드 후 클럽하우스 한쪽 방으로 하나 둘 모여들었다. 동반자들에게 줄 감사의 편지를 작성하기 위해서였다. 그날 있었던 에피소드나 원 포인트 레슨을 자필로 적어 식사 자리에서 전하는 것이다.

남자 골퍼들은 티박스도 옮겼다. 지난해부터 일반인과 함께 화이트 티에서 플레이를 하고 있다. 강제사항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선수가 여기에 동참한다. 그전까지 남자 프로 골퍼들은 백 티에서 쳤다. 그들은 프로암 대회를 연습 라운드쯤으로 생각했다.

지금은 화이트 티에서 치는 까닭에 티샷을 할 때 드라이버 대신 우드나 아이언을 잡아야 한다. 여자로만 구성된 조에서 프로암을 치른 한 선수는 레이디 티에서 웨지로만 공략했다고 한다. 일반인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서다.

지난 5월 열렸던 '미소사랑 프로암'은 변화의 작은 성과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코스닥 회원사 CEO들이 참가하는 이 대회는 지난해까지는 여자 프로 골퍼들과 함께하다 올해 남자로 바꿨다. 정의철 KPGA 홍보팀 과장은 "당시 프로암 참가자들이 매우 만족했다"고 전했다.

남자 골퍼들은 이제 명함도 들고 다닌다. 협회 차원에서 만들어줬다. 프로암 대회 후 동반자들에게 명함을 건네며 "언제든 도울 일이 있거나 스윙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한다.

사진/한석규 객원기자

한 중견 프로 골퍼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 굴곡이 있잖아요. 지금 남자 골프도 그런 것 같아요. 몇 년 전까지 호황을 누리다 지금은 밑바닥이에요. 그렇다고 계속 침체돼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해요. 지금 선후배들이 모두 열심히 뛰고 있어요. 쉽지 않을 거고, 당장은 아니겠지만 그러다 보면 분명 좋은 날이 오겠죠."

그래,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란다. 기왕이면 빨리….

김세영 마니아리포트 국장 k01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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