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경의날]"네살배기 딸 업고 출동"..강도보다 육아가 더 무서운 그들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밤에 갑자기 여자 유치인이 들어왔다고 해서 동원이 떨어졌는데, 어머니는 아프셔서 네살배기 딸 아이를 데리고 경찰서에 나온 적이 있어요. 남자직원한테 잠깐 봐달라고 한 뒤 입감하고 다시 애를 데리고 집에 들어갔어요.”
이땅에 여성 경찰관이 탄생한지 올해로 69년째를 맞았지만 남성 경찰관에 비하면 여경은 여전히 소수 세력이다. 올해 전체 경찰 11만169명 중 여성경찰은 1만351명에 불과하다. 지난 2005년 여경채용목표제와 여경승진목표제가 시행됐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경비율은 9.4%로, 10%가 채 되지 않는 상황이다.
여경들은 경찰이기에 앞서 한 가정의 딸이자, 아내이자, 어머니이기에 근무환경과 처우에 있어서 더 세심한 배려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마포경찰서 민원실장인 윤경(44ㆍ여) 경감은 올해로 경찰 생활 20년차다. 윤 경감은 경찰 생활 동안 힘들었던 일 중 하나를 열악한 육아환경으로 꼽았다.
그는 “여경은 지금도 동원이 많고 밤에 갑자기 불려 나가는 경우도 많아 애 키우는게 많이 힘들다”며 십여년 전 4살짜리 큰아이를 데리고 한밤중 경찰서에 달려갔던 기억을 회고했다.
서울 광진경찰서 경제수사팀장인 강호남(52ㆍ여) 경감도 29년 경찰 생활에 있어 가장 힘들었던 때를 육아로 고민하던 시절이라고 말한다.
그는 “경찰 생활을 시작한 80년대 후반에는 느닷없이 야간 검문검색에 비상동원시키고, 그러면 당장 애들을 맡길 데가 없어서 난처했다”며 “육아 문제로 사직을 고민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또 “사회의 안좋은 면을 계속 보다보니 ‘내 아이를 이런 곳에서 어떻게 맘 놓고 키우나’하는 생각 때문에도 힘들었다”고 밝혔다.
서울 종로구 사직파출소 박미희(32ㆍ여) 경사는 “야간 근무를 하다보니 남자들보단 체력이 많이 달린다는 걸 느끼고 피부도 안 좋아져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며 “하지만 여성주취자나 치매할머니 등 여경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경은 이들과 대화를 유도해 편안한 심리상태에서 진술을 얻어낼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종로경찰서 외사계의 이지혜(31ㆍ여) 순경은 출동할 때마다 ‘나는 여자가 아니라 경찰관이다’라는 마음을 먹는다고 했다. 이 순경은 “주취자들이 가끔 무시하면서 ‘아가씨’라고 부르면 ‘아가씨가 아니고 경찰관이다’라고 단호하게 얘기하면 죄송하다고 한다”며 “출동했을 땐 똑부러지고 단단한 마음을 먹고 나간다”고 말했다.
애로사항으론 여경 동료ㆍ선후배의 수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경찰학교 졸업 후 막상 파출소나 경찰서에 와 보면 여경이 나 혼자이거나 한 명 더 있는 경우가 많다”며 “마음을 터놓고 일할 여경 동료나 선배가 부족해서 아쉽다”고 토로했다.
또 “아직은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지만 사회에 범죄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알고 보니 걱정이 된다”며 “치안을 더 다져야겠다는 생각도 한다”고 말했다.
1946년 80명으로 출범한 여경은 특유와 섬세함과 부드러움으로 ‘여경 전성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여경은 여성이 피해자나 피의자인 여성청소년범죄 관련 수사나 성매매 단속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소프트 리더십’으로 경찰 조직 내 팀원을 이끄는 모습도 부각된다.
여성들 사이에서 직장으로서 경찰의 인기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2016년 경찰대학교 입시에서 여성 경쟁률은 245대 1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2차 순경공채 여성 경쟁률도 남성보다 훨씬 높은 76대 1이었다.
현장의 여경들은 직장에서 그들의 경쟁력을 ‘팀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황의갑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육아휴직에서 돌아온 후에도 아이를 키우는 여경에게는 아이들의 연령에 따라서 야간 근무나 한밤중 출동을 빼 주는 등 조직적 차원의 배려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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