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불황, "오늘은 손님을 한 명도 못 받았다"

조현주 기자 입력 2015. 6. 30. 10:45 수정 2015. 6. 30.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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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7일 오후 1시 서울의 관광 명소라 불리는 동대문 패션타운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밀리오레·두타·굿모닝시티 등 대형 쇼핑몰이 한데 모여 있어 웬만한 불황에도 북적이던 곳이었지만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여파로 관광객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동대문 관광안내소 부스에서 만난 관광안내사 장 아무개씨는 "평소 같으면 외국인 관광객이 적어도 600~700명은 이곳에 찾아와 문의를 한다. 주말에는 1000명 정도 찾아온다. 요즘은 하루 100명 남짓"이라며 "체감으로는 방문객이 10분의 1로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세월호 불황'보다 '메르스 불황' 더 심각

이날 오후 서울 동대문 굿모닝시티 쇼핑몰의 1층 매장 또한 한산했다. 매장을 채우는 것이라곤 매장 직원들과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뿐이었다. 굿모닝시티 쇼핑몰 1층에 가게를 열고 3년 동안 의류 도·소매업을 하고 있는 박 아무개씨는 "오늘은 손님을 한 명도 못 받았다. 주말에는 하루에도 70명 가까이 손님이 찾아왔는데 요즘은 하루에 10명도 안 온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박씨는 "지난주까지만 해도 몇 달 전에 관광 예약을 해둔 외국인들이 찾아왔지만 이제는 예약이 전부 취소돼 관광객의 발길이 아예 끊긴 상태"라며 "이번 주부턴 매장들이 올스톱 상태가 됐다"고 말했다.

↑메르스 감염 공포로 대한민국의 곳곳이 텅 비었다. 6월17일 서울의 관광특구로 불리는 명동·동대문 일대가 한산한 모습이다. ⓒ 시사저널 임준선·조현주

서울 남대문시장 인근에서 시계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노 아무개씨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노씨는 "10년 넘게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데 요즘처럼 사람 구경 못했던 적은 없다"며 "얼마 전 이번 달에 관광객이 10만명 넘게 줄어들었다고 하는 뉴스를 봤는데 이러다 한 명도 안 오는 건 아닌지 겁이 날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때도 힘들다고 했는데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며 "정부가 자영업자에게 세제 혜택을 주겠다는 말도 나오지만 그게 이 상황에서 무슨 도움이 되나. 요즘 가게를 계속 운영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다"고 밝혔다.

이른바 '메르스발(發) 불황'이 한국 경제를 덮치고 있다. 메르스 감염 공포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일단 피하고 보자는 인식이 퍼지면서,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은 물론이고 전통시장, 식당가, 영화관, 놀이공원을 찾는 발길이 '뚝' 끊겼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수가 급감해 서울 명동·동대문 같은 관광특구도 매출 부진에 신음하고 있다.

메르스가 한국 경제에 미친 충격이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보다 크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지난 6월1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메르스 발생 초기인 6월 첫째 주 영화 관람객 수는 세월호 사고 이후인 지난해 6월 첫째 주보다 64.9% 감소했다. 놀이공원 입장객도 같은 기간 대비 60.4%나 줄어들었다. 프로야구 관중도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38.7% 감소했다. 6월 첫째 주 박물관 관람객과 미술관 관람객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81.5%, 48.3% 줄어들었다.

메르스가 확산되기 직전인 5월 넷째 주만 해도 영화 관람객은 1년 전보다 32.2% 증가했다. 5월 넷째 주 놀이공원 입장객은 전년 동기 대비 99.9% 늘어났다. 회복 기미를 보이던 소비심리가 메르스로 인해 급격이 꺾이며 다시 얼어붙은 게 숫자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람들이 외부 활동을 줄이면서 직격타를 맞고 있는 곳은 관광업계와 영세 사업장들이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6월1일부터 15일까지 메르스를 이유로 한국 여행을 취소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11만3300명에 달한다. 중소기업청이 중소기업중앙회·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6월9일부터 13일까지 전국 1403곳의 소상공인 및 전통시장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메르스 직격탄을 맞은 전통시장에서 방문객과 매출이 50~8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한 충북 옥천군의 경우 지역 내 3개 전통시장(옥천공설시장·옥천오일장·옥천가축시장)이 잠정 폐쇄되기까지 했다.

메르스로 지역 상권이 아예 죽어버린 경우도 있다. 한국의 대표적 관광도시인 전주와 경주만 해도 그렇다. 여행을 자제하는 분위기 탓에 전주 한옥마을은 평일 방문객 수가 80% 이상 감소했다. 경주 충효상가 등 지역 상가 매출이 50% 이상 줄어드는 등 큰 타격을 입었다.

금융연, 경제성장률 전망치 0.9%p 하향조정

메르스 환자가 국내에서 처음 확인된 지(5월20일) 한 달이 지났다. 메르스 확산을 막지 못한 정부의 초동 대응 실패는 한국 경제를 위기로 내몰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6월17일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7%(2014년 10월 예상치)에서 2.8%로 0.9%포인트나 낮췄다. 정부 기관이나 주요 연구소 가운데 2%대 성장률 전망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금융연구원은 수출 둔화와 메르스 확산으로 인한 내수 부진이 성장률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융연구원의 이번 분석은 2003년 홍콩의 사스(SARS) 사례를 토대로 메르스가 지역 감염으로 확대되지 않고 최초 발병 이후 한 달 동안 지속된 후 종식된다는 가정 아래 진행됐다. 이 가정과 달리 메르스가 지역사회로 전파되고 진정기에 들어서기까지 수개월이 소요된다면 충격은 훨씬 더 클 것이란 전망이다.

대책 마련에 나선 정부는 메르스 확산에 따른 경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1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기로 했다. 세계잉여금, 한국은행 잉여금으로 최대 1조원을 확보하고 여기에 국채 발행을 통해 9조원을 더해 총 10조원의 예산을 추가로 투입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추경 내용은 6월 말 기재부가 발표할 2015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담길 예정이다.

조현주 기자 / cho@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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