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생략, 결혼 直行하는 草食男들

배준용 기자 입력 2015. 6. 30. 03:00 수정 2015. 6. 30.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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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보다 경제 안정 찾다가 뒤늦게 결혼정보업체 몰려.. 男女회원 비율 역전 '男超' 여성들은 반대로 '연애' 선호.. 결혼은 경력 단절 겁내 꺼려

28일 오후 3시 결혼 정보 업체 선우가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구혼(求婚) 남녀들을 상대로 단체 미팅 자리를 마련했다. 남녀 각 34명씩 68명이 모인 이날 미팅에서 분주히 자신의 짝을 찾아다니는 남자 회원 상당수는 상대 여성들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대기업에서 관리직으로 일하는 A씨(30)는 마주 앉은 여성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 뒤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혹시 영화 좋아하세요?"라는 상대 여성의 질문에 A씨는 "네"라고 짧게 대답하고 얼굴을 붉혔고 여성은 곧장 자리를 옮겼다. A씨는 "20대 때 연애를 거의 안 해 봐서 여성을 상대하는 데 미숙하다"며 "결혼 상대를 고르기 위해 최대한 많은 여성을 만나볼 생각"이라고 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미디어에서 거론된 20대 초·중반의 '초식남(草食男)'들이 30대 결혼 적령기를 맞아 결혼 시장으로 모여들고 있다. 초식남이란 연애나 데이트에 흥미가 없는 대신 자기 계발이나 취미 활동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남성을 말한다. 연애에 서툴지만 결혼 자체를 피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독신주의자와는 다르다. 이날 선우의 단체 미팅에서 A씨를 비롯한 적지 않은 남성이 연애 경험이 거의 없다고 답했다.

연애에 소극적인 초식남들이 결혼할 나이에 이르면서 '결혼 시장'의 풍경도 달라졌다. 전통적으로 여성 회원이 많았던 결혼 정보 업체의 회원 수가 '남초(男超)'로 돌아선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 최대 결혼 정보 업체 듀오는 지난 2008년 가입 회원 중 여성이 57.5%, 남성은 42.5%를 차지했고 이후로도 여성이 더 많았다. 하지만 지난해 말 처음으로 남성 회원이 52%를 차지했다. 올해도 회원 2만6300명 중 남성이 1만3400여명(51.3%)으로 여성보다 많다. 남성 회원의 증가 속도도 여성 회원보다 빠르다. 지난 7년간 여성 회원 수가 50.5% 늘어나는 동안 남성 회원 수는 120%가 늘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박수경(49) 듀오 대표는 "젊은 남성들이 연애보다 경제적 안정이나 자기 계발에 투자하고 결혼으로 직행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흐름이 강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취업난과 불경기가 이어지면서 연애에 드는 감정이나 시간, 돈을 '비용'으로 인식하는 남성들이 늘어나면서 연애를 건너뛰고 결혼 정보 업체를 통해 배우자를 고르는 남성이 늘었다는 얘기다.

연애 경험이 적거나 거의 없는 초식남들이 여자 사귀는 데 미숙해 결혼 정보 업체를 찾는 경향도 있다고 업체 관계자들은 말한다. 한 결혼 업체 관계자는 "취업 경쟁과 일에 치이면서 연애 대신 취업이나 직장 생활에서의 성공을 추구하던 초식남들은 결혼 상대를 찾는 요령은 물론 여성을 대하는 기본적인 매너도 잘 모르는 경우가 흔하다"면서 "커플 매니저들이 기본적인 매너부터 소개받는 여성과 만날 약속 장소까지 챙겨준다"고 했다.

초식남과 반대로 결혼보다 연애를 선호하는 직장인 여성은 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이야기다. 직장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에 따른 경력 단절을 우려해 결혼에는 소극적이지만 연애에는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일본 사회에서 연애에 소극적인 초식남에 대비해 '육식녀(肉食女)'라 부르는 이들이다. 최근 드라마에서 '연상녀·연하남' 커플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초식남과 육식녀들의 불일치 현상을 보여준 것이란 분석도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취업난과 경기 불황으로 연애를 비용으로 여기는 '초식남'과 결혼을 손실로 여기는 '육식녀'들의 시선 차이로 빚어지는 불일치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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