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팩스 영장' 달랑 보내..이름만 올린 '카톡방'까지 압수수색

입력 2015. 6. 30. 01:30 수정 2015. 6. 30.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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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검·경, 세월호시위 대학생 수사때

카카오 직원한테 '대리' 수색맡겨

세탁물 부탁 등 무관한 내용까지

압수한 것으로 재판과정서 드러나

변호인, 위법에 불복 준항고장 내

수사 범위와 무관한 내용까지 '팩스 영장' 한 장으로 확보하는 편의적 압수수색이 또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가만히 있으라'라는 침묵시위를 제안한 대학생 용혜인(25)씨의 변호인 김종보 변호사는 29일 "서울중앙지법에 경찰과 검찰의 위법한 압수수색에 불복하는 준항고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수사기관이 직접 압수수색 현장에 가지 않은 채 포털·통신사·금융기관 직원에게 관련 자료를 대신 찾아 제출하라고 하는 것은 '영장주의'에 위배된다는 취지다. 준항고는 검경이 한 처분에 이의가 있을 때 법원에 이를 취소·변경해달라고 청구하는 제도다.

서울 광화문광장 집회와 관련해 용씨를 수사하던 은평경찰서는 지난해 5월24일 스마트폰과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압수수색하겠다며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을 발부받았다. 경찰은 차로 1시간30분(44㎞) 거리에 있던 카카오(현 다음카카오) 본사에 직접 가지 않고 이틀 뒤 이 영장을 팩스로 보내 '집행'에 나섰다. 카카오 법무팀 직원은 5월20~21일 이틀치 카카오톡 대화방 57개의 대화 내용(A4 용지 88쪽 분량)을 서버에서 찾아내 경찰에 넘겼다.

포털 직원 등은 대화 내용이 수사 대상인지 가려낼 능력도 권한도 없다. 이 때문에 사실상 영장에 기재된 시기의 모든 개인 정보를 수사기관에 넘기는 식으로 대처해 왔다. 이런 방식으로 경찰이 압수한 대화 내용에는 용씨가 '초청'만 받았을 뿐 아무 글도 남기지 않은 대학 새내기 대화방(참여자 67명), 동생에게 세탁기를 돌려달라고 부탁하는 내용까지 포함됐다. 압수수색 대상을 최소화하려는 노력 없이 범죄 혐의와 무관한 사적 정보까지 모두 쓸어담은 것이다.

용씨는 경찰이 엠티 비용을 걷는 후배들의 대화까지 압수한 사실을 지난달 재판 과정에서야 알게 됐다. 압수수색 1년 만의 일이다. 검찰은 그런 식으로 확보한 88쪽 분량의 대화 내용 가운데 어느 하나도 재판의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최근 서울고법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안재구 전 경북대 교수 사건에서 "팩스 영장에 의한 압수 관행은 업체 쪽 업무 사정과 수사 밀행성 등을 이유로 상당 기간 이어져 왔기 때문에 무조건 위법은 아니다. 다만 수사기관이 압수물을 건네받는 시점까지 업체 쪽에 영장 원본 등을 제시해야 적법성이 인정된다"며, 수사 관행과 영장주의 사이의 기준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다음카카오 관계자는 "용씨를 수사한 경찰이 우리 쪽에 사후적으로 영장 원본을 제시한 사실은 없다"고 했다. 이어 "지난해 10월 카톡 감청영장 논란 이후 영장에 '범죄 혐의와 관련된'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을 경우 수사기관 관계자를 직접 본사로 불러 압수 대상 대화를 선별하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이 모든 과정이 당사자 입회를 보장한 가운데 범죄와 관련한 정보를 압수하고, 이후 당사자에게 통보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규정 등을 위배한 것"이라고 했다.

검찰 관계자는 "범죄 혐의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려면 (당사자가 언급되거나 참여한) 일부 개인적인 내용까지 볼 수밖에 없다. 대신 수사기관 종사자가 수사 과정에서 본 개인 정보를 유출하면 공무상 비밀누설로 강력하게 처벌하는 선에서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박태우 정환봉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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