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역대 최고의 로빈' 스카티 피펜, 2인자의 모든 것 ➀

스포츠팀 2015. 6. 2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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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사흘 전 2015 NBA 신인 드래프트가 열렸다. '전미 대학 최고의 빅맨' 칼 앤서니 타운스와 코비 후계자로 낙점된 디안젤로 러셀, '듀크대를 우승으로 이끈 정통파 센터' 자릴 오카포 등 예상된 선수들이 예상된 순번으로 NBA 유니폼을 입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상위픽에 뽑힌 선수 중 한 명이 유독 눈에 띄었다. 1라운드 5번으로 올랜도 매직의 선택을 받은 크로아티아 출신의 스윙맨 마리오 헤조냐. 203cm의 키에 슈팅 능력이 뛰어난 '유럽형 장신 가드'다. 팀에는 이미 빅터 올라디포라는 미래의 스타 2번이 있기에 스몰포워드로 출전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결론적으로 해조나는 '1옵션이 슈팅가드인 팀에 2옵션 노릇을 소화해줄 것을 기대받는 5번픽 스몰포워드'로 정리할 수 있다.

2문단 마지막 문장을 보며 어떤 누군가가 떠올랐다. 피부색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다.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해조나가 아닌 '해조나를 둘러싼 상황'을 보고 필자는 'NBA 역대 최고의 2인자' 스카티 피펜(51)이 떠올랐다.

1987년 1라운드 '5번'으로 시애틀 슈퍼소닉스(현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에 지명받은 '스몰포워드' 피펜은 곧바로 시카고 불스가 전체 8번으로 지명한 올든 플러니스와 맞트레이드돼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훗날 '조던 공백기' 시절에 피펜과 불편한 관계에 놓이기도 했고 피펜을 영입할 때도 설왕설래가 많았던 제리 크라우스 단장이지만 당시 드래프트에서는 "조던의 뒤를 받칠 수 있는 다재다능한 스몰포워드(피펜)와 파워포워드(호레이스 그랜트)를 얻었다"며 기뻐했다.

올랜도에는 이미 니콜라 부세비치라는 좋은 빅맨이 있다. 조던-피펜-그랜트로 팀을 새롭게 재편하고자 했던 당시의 시카고와 올라디포-헤조냐-부세비치로 이어지는 새로운 '3인조'로 동부 강호로 거듭나기 위해 칼날을 갈고 있는 올랜도의 상황은 묘하게 닮았다. 플레이스타일도 다르고 이름값도 차이가 크지만 동일한 드래프트 순번과 포지션, 팀 사정 등을 공유하고 있는 헤조냐를 통해 피펜의 기억을 떠올려봤다.

'NBA 역대 최고의 로빈'으로 꼽히는 피펜은 한 팀의 1인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췄음에도 스스로를 낮추고 더 큰 목표를 쟁취한 선수였다. 리더의 화려한 조명보다 '위대한 2인자의 삶'을 살아간 그는 NBA 역사에서 손꼽히는 3번으로 자신의 이름을 새기며 은퇴 후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선수 생활 중이었던 1996년에는 'NBA 위대한 50인'에 선정되는 영광도 누렸다.

래리 버드가 물러난 뒤 피펜은 '듀크의 영원한 아이콘' 그랜트 힐과 함께 NBA 최고 스몰포워드 자리를 놓고 자웅을 겨뤘다. 데뷔 이듬해인 1988-89시즌부터 주전과 벤치를 오가는 핵심 멤버로 거듭난 그는 그해 73경기에 출전(56경기 선발)해 평균 14.4득점 6.1리바운드 3.5어시스트 1.90가로채기를 기록하며 서서히 기량을 꽃피웠다.

입단 3년 차인 1989-90시즌부터 전문가와 팬들은 '불스의 33번'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82경기 모두 스타팅으로 출장한 피펜은 경기당 평균 38분 40초를 소화하며 16.5득점 6.7리바운드 5.4어시스트 2.57가로채기 1.23블록슛을 기록했다. 데뷔 3년 만에 자신의 재능을 폭발시키며 리그 정상급 포워드로 이름을 알렸다.

피펜의 합류 이후 황소군단도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조던 원맨팀'으로 불리던 불스는 1988년 피펜과 함께 처음으로 동부 컨퍼런스 세미 파이널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듬해에는 47승, 1990년에는 55승을 챙기며 '동부의 패자'로 거듭났고 두 해 모두 컨퍼런스 결승에 올랐다. 비록 두 번의 컨퍼런스 결승 모두 '배드보이즈'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 패하며 NBA 파이널 무대에는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시카고는 피펜의 합류 이후 단순 플레이오프 진출팀에서 진지하게 대권 도전을 노릴 만한 '출사표를 준비하는 팀'으로 성장했다.

피펜의 성장세는 눈부셨다. 당대 제이슨 키드, 그랜트 힐 등과 함께 '트리플더블러'로서 명성을 떨쳤다.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수비 등 모든 면에서 재능을 보였다. 1990-91시즌 역시 82경기 모두 선발로 출전해 평균 17.8득점 7.3리바운드 6.2어시스트 2.36스틸 1.13블록슛을 올렸다. 훗날 포틀랜드에서 동료로 만나게 될 데이먼 스타우더마이어는 이 시절의 피펜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어렸을 때 사람들은 칼 말론(전 유타 재즈, LA 레이커스)을 '우편배달부'로 부르며 칭송했다. 그러나 내가 볼 때 최고의 배달부는 피펜이었다. 그는 큰 경기든 작은 경기든, 가비지 게임이든 박빙의 승부든, 동료의 컨디션이 좋든 나쁘든 주변 상황에 상관없이 늘 18득점-8리바운드-7어시스트를 꾸준히 기록했다. 기록원이 경기 전에 미리 피펜의 기록만 따로 작성해놓고 게임을 시작하는 건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피펜은 전형적인 엘리트 스몰포워드였다. 포인트가드처럼 볼배급을 도맡는가 하면 파워포워드처럼 상대 페인트존을 공략하기도 했다. 슈팅가드처럼 팀 내 주득점원 노릇을 소화하면서도 스몰포워드 본연의 역할로 돌아와 내 ·외곽에서 상대 그물망을 흔들고 적군의 1옵션을 꽁꽁 틀어막기도 했다.

6개의 우승 반지를 수집한 NBA 최고의 포인트포워드 피펜은 커리어 내내 리그 최정상급 선수로서 코트를 누볐다. 올-NBA 퍼스트팀 3회, 세컨드팀 2회, 서드팀 2회에 선정됐고 '원조 드림팀'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농구 대표팀에도 뽑히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4년 뒤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도 대표팀으로 참가해 2연속 금메달을 따내는데 공헌했다). 수비력도 뛰어나 올-NBA 디펜시브 퍼스트팀에 1992년부터 8년 연속 이름을 올렸다.

총 17시즌을 현역으로 뛰었던 그는 '황소 군단의 2인자'로서 팀이 필요로 하는 모든 역할을 빈틈없이 수행했다. 많은 이들이 불스의 구단 역사를 '조던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 그러나 1984년 못지않게 '피펜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수 있는 1987년도 상당한 역사성을 지니는 해로 기억된다.

[사진] 스카티 피펜 ⓒ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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