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곳에 안기고 싶다 제주 동쪽 끝 오름 탐험
“저희 비행기는 약 20분 후 착륙하겠습니다.” 기내방송이 나오자 왼쪽 좌석에 앉은 승객들은 자연스럽게 창밖을 내다본다. 길쭉한 제주의 전신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맑은 날이라면 한라산 정상부터 왼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유심히 볼 것을 권한다. 엎어놓은 밥사발처럼 솟아있는 것들이 제주의 오름들이다.
제주에는 366곳의 확인된 오름이 있다. 오름 여행이 유행처럼 번진 지도 오래 되었지만 모든 오름이 여행자들의 발길을 끄는 것은 아니다. 여행자들이 주로 찾는 오름은 한정되어 있다. 특히 ‘동쪽 끝’ 지역 오름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이곳이 비교적 덜 알려진 곳이면서도 성산일출봉, 섭지코지, 우도 등 제주를 대표하는 여행지와 가깝다는 것도 인기의 이유 가운데 하나다. 대표적인 오름으로 ‘다랑쉬오름’, ‘용눈이오름’, ‘지미오름’ 등을 들 수 있다.
높이가 약 382m에 이르는, 오름치고는 꽤 높은 곳이다. 생긴 것 또한 남성적인데 ‘오름의 여왕’으로 불린다. 오름 초입은 삼나무, 편백나무 등 키 높은 나무들이 빼곡하게 서 있다. 잠시나마 숲을 걷는 기분이 괜찮다. 본격 탐방로는 지그재그 동선으로 이뤄져 있다. 고도가 조금씩 높아지면서 시야도 차츰 넓어진다. 처음에는 바로 앞에 있는 아끈다랑쉬오름(‘아끈’은 ‘작다’는 뜻의 제주어)과 주변의 푸른 밭들이 보이고 조금 더 오르면 바로 옆 용눈이오름과 바닷가에 거의 붙어있는 지미오름, 성산일출봉이 눈에 잡힌다. 정상 가까이 가면 요즘 여행 명소로 부상한 ‘우도’까지 시야에 들어와 제주 동쪽 끝 지점의 풍경을 파노라마 사진처럼 가슴에 간직할 수 있게 된다. 탐방로 꼭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빨라야 약 30분? 그러나 분화구를 두르고 있는 능선 꼭대기까지 가려면 10분은 더 걸어야 한다. 마침내 능선 정상에 오르면 깔대기 모양의 깊은(약 110m) 분화구와 사방으로 펼쳐지는 오름들, 그리고 서쪽으로 한라산과 오름 군락들이 눈에 들어온다. 억새, 절굿대, 가시쑥부쟁이 등 정상을 뒤덮고 있는 우리 전통 풀들이 세찬 바람에 몸을 맡기며 춤 추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다랑쉬오름에는 둘레길도 별도로 조성되어 있다. 흔히 정상 능선길을 둘레길로 부르는데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다랑쉬오름의 공식 둘레길은 오름 아랫 부분, 그러니까 오름을 빙 둘러 걷도록 조성된 길을 일컫는다. 임도 형식의 이 길은 삼나무와 잡목으로 울창한 숲길로 여행자보다 근처에 사는 제주 사람들이 즐겨찾는 산책로이기도 하다. 총 길이가 2.5km라 달리기 등 운동 코스로도 손색없다.
위에서 보면 비행접시를 닮은 이 오름의 이름을 왜 ‘아끈다랑쉬’로 붙였는지 의문이다.
아끈다랑쉬오름은 예쁘고 아담해서 바로 앞 다랑쉬 오름에 오를 엄두가 나지 않는 노약자, 어린이들이 즐겨 올라가는 오름이다. 언덕 수준의 오름 정상까지 오르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0분. 그러나 막상 굼부리(분화구의 제주어) 주변에 오르면 드넓은 평원이 펼쳐진다. 평지에서 또는 다랑쉬오름에서 내려다 볼 때의 아담함은 사라지고 아득한 느낌이 들 정도의 광활한 풍경이 나타나는 것이다. 나무라고는 지독스럽게도 고독해 보이는 소나무 몇 그루가 전부다. 분화구도 접시처럼 얕고 평평해 안온한 느낌이다. 오름 평야는 억새로 가득하다. 해서, 탐방로 이외의 길은 잠시 사진 찍을 때나 들어가 볼까, 헤집고 다니기에는 버거울 정도다. 굼부리 주변길을 한 바퀴 도는데 20분이면 족하다. 오름을 돌고 나면 이곳의 이름을 새로 지어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든다. 다랑쉬오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기 때문이다. 접시오름은 어떨지.
용눈이오름은 필히 다랑쉬오름을 오른 뒤에 가도록 한다. 다랑쉬오름에서 내려다 보이는 용눈이오름의 모습은 그야말로 ‘여인의 자태’다. 그냥 척 보면 그런 느낌이 온다. 오름 전체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고 살짝 튀어나온 능선의 모양은 어머니의 품을 연상케 한다. 다람쉬오름에서 용눈이오름까지는 정규 도로 기준 승용차로 5분 거리다. 그러나 두 오름 사이의 평원을 가로질러 천천히 이동할 것을 권한다. 그곳은 전혀 정돈되지 않은 거친 들판이다. 사이로 난 길을 걷거나 운전하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느낌인데 두 오름 중간 쯤에 서서 바라보는 풍경은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맑은 날엔 오름 사이 먼 곳으로 한라산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 용눈이오름 주차장에서 오름 정상까지는 약 20분 거리. 용눈이오름은 분화구가 넓고 경사가 완만한 게 특징이다. 탐방로에서 굼부리로 이어지는 작은 길을 이용하면 그 옛날 용암이 튀어올라왔던 분화구 중심까지 갈 수 있다.
분화구 중심의 기운이 세 우주와 통한다는 속설도 있어서 소똥 피해가며 중심까지 내려가는 사람들도 가끔 있다. 용눈이오름은 ‘팔짝샷’ 놀이 하기에도 좋다. 정상 부분이 넓고 평평하며 멀리 바다와 성산일출봉 또는 풍력발전단지가 보여 배경 또한 멋들어지기 때문이다.
흔히 지미봉이라 부르는 오름이다. 올레21코스의 끝이자 1코스 시작 근처 있다. 마을 이름은 종달리. 종달리는 성산일출봉 옆마을이자 우도가 바라보이는 전망 좋은 동네다. 마을이 크고 집도 많아 제주 동쪽 치고는 꽤 북적거리는 편이다. 최근에는 게스트하우스, 카페 등 여행자를 위한 시설도 속속 생기고 있다. 지미봉은 바로 그 마을 뒷산 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높이 166m로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으나 탐방 계단이 거의 일자로 되어 있어 중턱 이후부터는 헉헉거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정상에 오르면 제주의 참 모습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을 지니고 있다. 제주 여행을 ‘해시태그’(인스타그램에서 사용하는 일종의 태그로, ‘#’뒤에 붙는 키워드를 통해 같은 내용의 해시태그가 붙은 사진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음)로 표현하자면 #한라산, #올레, #돌담, #밭담, #돌집, #형형색색지붕, #푸른 바다, #섬, #먹방, #풍차(풍력발전기) 등이다. 지미오름 꼭대기에 서면 먹방을 뺀 해시태그의 모든 분야가 잡힌다. 한라산이 보이고, 지미오름 정상이 올레21코스이며 내려다 본 지상에는 돌담, 밭담, 돌집이 있다. 푸른 바다와 우도 등 섬, 행원리와 월정리의 풍력발전기도 보인다. 제일 멋진 장면은 역시 ‘형형색색지붕’이다. 주황, 초록, 노랑 등 원색 지붕이 자체 발광하는 색깔은 오랜 시간 가슴에 남기에 충분할 정도로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다랑쉬오름, 아끈다랑쉬오름, 용눈이오름승용차만 접근할 수 있다. 뚜벅이 여행족의 경우 세화리, 종달리 등에서 마을 콜택시를 불러 이용하면 가능하다. 요금은 편도 1만원 선이고 오름에서 다시 전화를 하면 되돌아 갈 수 있다. 승용차의 경우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으면 된다.
다랑쉬오름에서 가까운 또 다른 여행지세화해수욕장, 세화오일장, 세화벨롱장, 평대해수욕장, 월정리
지미오름제주시내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동일주도로를 거쳐 서귀포까지 운행하는 701번 버스를 이용, 종달초등학교 앞에서 내리면 가깝다.
지미오름에서 가까운 또 다른 여행지성산일출봉, 우도, 섭지코지, 해맞이해안도로 드라이브
[글·사진 이영근(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484호 (15.06.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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