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70년> "사죄하라" 위안부 피해자들의 계속된 절규

입력 2015. 6. 22. 07:02 수정 2015. 6. 22.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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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등록 피해자 238명 중 50명만 생존..올해 5명 사망 공식사죄·법적배상 촉구하는 수요집회 23년째 지속

정부 등록 피해자 238명 중 50명만 생존…올해 5명 사망

공식사죄·법적배상 촉구하는 수요집회 23년째 지속

(서울=연합뉴스) 설승은 기자 = "나 그때 열세 살 철부지 어린아이였습니다. 내 고향 평양을 놀이터 삼아 여기저기 새처럼 날아다녔죠.

어느 날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낯선 사람을 따라나섰습니다. 아버지의 감악소 벌금 10원을 벌고 싶어서….

그 길이 그렇게 아프고 죽음보다 못한 삶으로 이끌 줄 누가 알았을까. 열세 살 어린 나이로 견디기 너무 어려워 평양에 있을 엄마에게 들리기를 바라며 '엄마, 엄마' 소리치며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13살의 나이에 중국에 있는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간 길원옥(88) 할머니가 작년 8월 14일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행사에서 낭송한 시 '평화가 춤춘다, 통일이다'의 한 대목이다.

지금도 국내외를 활발히 오가며 일본을 향해 배상과 사과를 촉구하는 길 할머니의 외침은 계속된다.

올해로 광복 70주년이자 한일수교 50년을 맞지만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겪은 질곡의 상징으로 꼽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한 맺힌 절규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위안부 피해자 대부분은 태평양전쟁 말기에 고초를 겪었다. 10대의 꽃다운 나이에 일자리를 준다는 말에 속아 넘어가거나 강제로 트럭에 실려 일본과 중국, 동남아, 멀게는 남태평양 외딴 섬의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갔기 때문이다.

◇ 이제는 시간이 없다…생존자 50명만 남아

"내 청춘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죽기 전에 꼭 아베 총리가 사과하는 것을 보고 싶다."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광복 후 고향에 온 소녀들에게 돌아온 것은 곱지 못한 사회 시선과 가난, 각종 질병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용기를 내 몸소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고 나섰다. 세계 각국을 돌면서 일제의 전쟁 성범죄를 알리는 '살아 있는 증인' 역할도 하고 있다.

2007년 이용수·김군자 할머니가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네덜란드 피해 여성과 함께 일본의 만행을 증언했다. 그 덕에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법적 책임 이행을 촉구하는 결의안 통과를 끌어냈다.

같은 해 길원옥 할머니는 벨기에에서 열린 유럽의회 청문회에 네덜란드·필리핀 피해자와 함께 자리해 위안부 범죄를 생생히 증언했다.

세월이 흘러 위안부 피해자들은 80∼90대의 고령이 됐다.

일본 정부가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일 기미가 없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이 잇달아 세상을 뜨고 있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는 모두 238명이다. 생존자는 50명(국내 45명·국외 5명)에 불과하다.

올해에만 5명의 위안부 피해자가 유명을 달리했다.

이달 11일 위안부 피해자 김외한(84)·김달선(91) 할머니가 한날 별세했다.

앞서 지난달 27일엔 이효순(91) 할머니가, 올 1월과 2월엔 황선순(89) 할머니 등 2명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운명했다.

◇ 23년째 수요집회…끝내고 싶은 절규

"일본 정부는 위안부 범죄를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법적 배상을 해라.", "사죄하라, 사죄하라, 사죄하라."

매주 수요일이면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건너편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주관으로 수요집회가 열린다.

일본 정부에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행사다. 수요집회는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 전 일본 총리 방한을 앞두고 시작됐다. 이달 17일로 1천183차에 이르며 역대 최장기 집회 기록을 매주 경신한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처음에는 주변 시선을 의식해 자신의 과거를 알리려 하지 않았지만 1992년 2월 26일 7차 집회부터 현장에 나와 일본의 위안부 만행을 직접 고발하고 사죄를 촉구했다.

일본대사관 건너편 도로는 2011년 12월 1천차 수요집회를 맞아 '평화로'로 명명됐다. 위안부 소녀를 상징하는 소녀상인 '평화비'도 자리 잡았다.

매주 수요일이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길원옥 할머니는 한결같이 평화비 옆에 시민 참가자들과 함께 자리를 한다. 굳게 닫힌 일본대사관을 향해 책임 있는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수요집회에는 일본 시민들도 종종 찾아와 아베 정부 대신 사죄를 하기도 한다.

작년 10월 1천146차 집회 때는 일본군에 자원입대해 자폭 특공대원으로 복무했던 한 목사가 "과거 일본의 폭력을 용서해 달라"며 자필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외국 여러 나라의 여성 운동가와 인권 단체, 정치인도 찾아와 지지와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 국외 피해여성도 돕는다…시민단체도 힘 보태

위안부 피해자들은 자신이 성범죄의 피해자이지만 외국으로도 눈을 돌려 세계의 전쟁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보듬고 있다.

김복동·길원옥 할머니는 2013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함께 '나비기금'을 조성해 베트남전 성폭력 피해 여성들과 콩고민주공화국 등 아프리카 내전에서 성폭력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을 돕고 있다.

이에 화답하듯 베트남전 민간인 피해자들이 지난 4월 1천173차 수요집회에 참여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이처럼 왕성한 활동을 하는 데에는 시민단체의 역할이 크다.

수요집회를 주관하는 정대협이 윤미향 상임대표를 필두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이들은 전국에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국내외에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리는 일에 앞장선다.

정대협은 작년에 이어 지난달 중국 선양(瀋陽)에서 북한의 '조선 일본군 성노예 및 강제연행 피해자문제 대책위원회'와 만나는 등 북한과 연대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는 위안부의 존재를 처음 세상에 알린 고(故) 김학순 할머니 등과 함께 1991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해 배상 청구소송을 내는 등 법적 싸움을 벌였다.

대구의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도 위안부 할머니들을 돌보는 한편 역사관을 건립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

s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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