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ality] 이번 주에도 타일러는 살아남았습니다

아이즈 ize 글 위근우 2015. 6. 15. 09: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이즈 ize 글 위근우

매주 방영되는 JTBC [비정상회담]에서의 타일러는 수많은 지뢰가 매설된 비무장지대를 걷는 병사처럼 보인다. 지난 8일 방영분에서만도 낙태와 간통죄 폐지 찬반 등 민감하고도 첨예한 주제들이 던져졌고, 그때마다 그는 특유의 차분하고도 논리적인 태도로 그날의 게스트이자 변호사 출신인 로버트 할리마저 감탄할 정도의 토론 능력을 보여주었다. 최근 한국을 대표하는 논객 진중권 교수가 출연하며 화제가 됐던 ‘혐오주의를 혐오하는 것이 비정상인가’라는 주제에 있어서도 혐오의 타당성 문제, 소비자 불매 운동 같은 여러 갈래의 토론 흐름 안에서 흐트러짐 없이 일관성 있는 논지를 펼쳤다. 하지만 그가 정말 지뢰밭을 걷고 있다고 느껴지는 건, 단순히 민감한 문제의 버튼들이 여기저기 깔려 있어서만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그것들은 정말로 지뢰처럼 더 은밀하게 감춰져 있다.

타일러는 [비정상회담] 15회 ‘일도 아이도 포기 못하는 나, 비정상인가’라는 워킹맘 박지윤의 질문에 대해 “박지윤 씨가 남자라면 비정상이라고 할까? 왜 여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느냐”며 그 질문 자체에 깔린 차별적 시선에 대해 비판했다. 너는 어느 입장이냐는 질문에 대해 예스 혹은 노를 말하는 대신 왜 그런 선택을 강요받아야 하느냐고 되묻는 것이다. 옳은 질문에서 항상 옳은 대답이 나오는 건 아니다. 하지만 틀린 질문에선 절대 옳은 대답이 나올 수 없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타일러를 비롯한 tvN [뇌섹시대-문제적 남자] 출연자들에게 했던 ‘매번 나에게 지적질을 하는 뇌섹녀와 사귈 수 있느냐’라고 질문하는 모 매체의 그것처럼 틀린 질문으로 틀린 답을 유도하는 함정 수사를 벌이는 사회다. 해당 질문에서 타일러는 답변을 피했고, 전현무는 보기 좋게 낚여서 “뇌섹녀보다는 몸섹녀가 좋다”는 말을 했다. 종종 타일러가 토론 자체에 발을 담그고 반대편과 논쟁하기 전에 마치 과거 MBC [100분 토론]의 손석희처럼 혼용되는 개념과 논지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앞서의 혐오주의에 대한 토론에서도 그는 혐오주의에 혐오로 대응하는 건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거라는 의견에 대해, 생득적인 이유로 누군가를 혐오하는 것으로서의 혐오주의와 단순히 미워하는 감정으로서의 혐오를 구분해서 토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칫 토론 참가자를 엉망진창의 진흙탕에 빠뜨릴 법한 교묘한 지뢰밭 안에서 그는 더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타일러에게서 논리적인 언변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조심스러운 태도가 중요한 건 그 때문이다. 자기가 잘 아는 분야가 아닌 곳에서까지 자신의 관점을 들이대다가 낭패를 보는 지식인 특유의 성급함이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가령 그는 혐오주의적인 표현 역시 표현의 자유 안에서 용납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강력한 자유 옹호자이지만, 자유가 언제 어느 상황에서고 꼭 지켜져야 하는 절대적인 원칙이기에 그렇다고 말하진 않는다. 그가 표현의 자유가 어떤 상황에서도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그것이 어떤 상황에 한해 법적으로 제재될 때 자칫 편의에 따라 표현의 자유를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청소년 흡연에 대해서도 그는 결코 청소년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인정해야 하기에 청소년 흡연에 찬성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여기에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가 있는 건 양육권을 가진 부모와 교육을 책임진 학교이고, 제3자가 끼어드는 게 허용되면 너무 많은 사회적 간섭이 발생하는 부작용이 생긴다고 본다. 그는 서로 다른 주제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때마다 그 케이스를 자신이 가진 하나의 원칙이나 신념으로 재단하기보다는, 해당 사안 안에서 실천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낳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한다. 그런 면에서 그는 듀이나 리처드 로티로 이어지는 미국 프래그머티즘, 즉 실용주의(이명박 정권이 오염시킨 그 의미가 아닌)의 전통에 서 있는 프래그머티스트에 가깝다.

현대 미국 철학을 대표하는 로티는 “프래그머티스트는 객관성에 대한 욕구를 공동체와의 연대성에 대한 욕구로 대체시키고자 한다”고 정의한 바 있다. 범죄자의 실명이 공개되는 것에 반대하면서 어떤 보편 준칙을 주장하기보다는, 그것이 몰고 올 또 다른 부정적 결과들에 집중하고 그것을 근거로 다른 멤버들을 설득하는 타일러의 태도는 그런 면에서 분명 실용주의적이다. 인종과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진리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비정상회담]에서 보듯 국적과 인종에 따라 보편적이라 믿는 기준은 각기 다르기 일쑤이며,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제1원리를 증명하는 건 그 어떤 토론 주제보다도 거대한 난제다. 실제로도 출연자들이 서로의 다른 보편 준칙을 증명하느라 논의가 공회전하기 일쑤다. 하지만 타일러는 어떤 선택이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냐는 질문을 통해 이 난제를 비켜난다. 각기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아주 익숙하지 않은 한국어로 토론하기에 필연적으로 오해가 벌어지는 [비정상회담] 안에서 타일러가 항상 흔들림 없는 토론꾼이 될 수 있는 건 그래서다.

물론 실용주의자인 타일러가 항상 옳은 건 아니다. 앞서 말한 표현의 자유의 경우, 최근의 혐오 발언들의 경우처럼 마냥 공론장에만 의존해 해결하기 어려운 면이 있으며,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소위 ‘땅콩회항’에 대한 “그 사람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갑의 횡포가 아닌 개인의 문제일 뿐이다”라는 의견은 고착화된 한국의 갑을 관계를 너무 가볍게 본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하지만 괜찮다. 혐오 표현의 허용 범위에 대해 의견이 다를지언정, 그는 교육을 통해 혐오주의의 발현을 제로로 만들자고 말한다. 조현아의 잘못이 구조적인 것인지 개인적인 것인지 진단은 다를지언정 이 “미친” 행위에 대한 적합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결론에는 무리 없이 이를 수 있다. 토론하는 그에게 중요한 건 토론하는 우리가 더 나은 결론에 이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문제의 실천적 해결보다는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는 것에 안달인 상당수 한국 지식인들에게 볼 수 없는 큰 미덕이다. 미국에서 온 이 20대 청년은 우리가 보면서 감탄하는 것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그러니 그가 보여준 토론의 기술, 그리고 불의의 지뢰밭에서 생존하는 기술을 좀 더 겸허히 배워야 하지 않을까. 그가 매주 경험하는 지뢰밭은 사실, 우리의 일상에 가깝지 않나.

글. 위근우
교정. 김영진

▶ 아이즈 ize 바로가기▶ 스타들의 다양한 사진을 더 크게! 포토 갤러리

▶ 아이즈 ize의 스타인터뷰

<아이즈 ize>와 사전협의 없는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 ize & iz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