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라거펠트, 코리아에 살루트

2015. 6. 10.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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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Superhero In Seoul

파장은 생각보다 더 엄청났다. 샤넬이 쇼를 한다, 한국에서, 서울에서. 패션계를 들썩이고도 남을 뉴스가 분명했는데, 결과는 패션계를 넘어서 이 나라는 물론 전 세계에 더 많은 이야기를 낳았다. 그 엄청난 돌풍의 한가운데에 그가 있다. 여전히 검은 선글라스와 검은 장갑을 낀 채. 조용히 칼 라거펠트, 그를 결국 만났다.

자개를 형상화한 샤넬 크루즈 컬렉션을 입고 있는 톱 모델수주를 촬영 중인칼 라거펠트.

1‘샤넬’ ‘가브리엘’ ‘서울’ ‘카멜리아’ 등 샤넬의 키워드를 한글로 짜서 넣은 재킷은 코리아 톱 모델 박지혜가 입고 있다.2기와의 수막새를 연상시키는 한국 전통 문양 인스피레이션의 샤넬 액세서리.3샤넬의 패브릭 디렉터 김영성은 이번 샤넬 서울 크루즈 컬렉션을 적극 도왔다. 2시간째 기다리고 있다. 그가 묵고 있는 방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서울의 이 특급 호텔에 단 한 개뿐인 프레지덴셜 스위트라 바꿀 수 있는 방도 없다. 샤넬 직원들은 물론 함께 기다리고 있는 미국과 영국의 기자들도 함께 가슴 졸이며 전전긍긍 중이다. ‘신’이라 불리던가, ‘교황’이나 ‘황제’라 불리던가. 아무튼 패션계에 그런 존재가 있어야 한다면 바로칼 라거펠트일 확률이 높다. 샤넬과 펜디 그리고 자신의 레이블인 칼 라거펠트까지 3개의 브랜드를 통틀어 1년에 17개의 패션쇼를 창조하며, 샤넬의 광고 캠페인을 비롯해 꽤 자주 포토그래퍼로서 왕성하고, 가끔은 호텔 디자인이나 다른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에도 관여한다. 또 딸 같은 존재인 애묘, 슈페트와의 애정 어린 시간도 꼭 가져야 한다. 아, 그리고 그의 서재를 꽉 메운 수백만 권의 책도 읽어야 한다(그는 한 인터뷰에서 “책은 결코 과다복용할 위험이 없는 마약이다. 나는 책에 행복하게 중독되어 있다”고 밝힌 적 있다). 이런 사람이라는데 모두 모여 2시간쯤 기다려 주는 건 다들 이해할 만하다는 눈치다. 나도 그랬다. 그럼에도 인내심이 슬슬 바닥이 날 무렵, 다행히 우리는 올라와도 좋다는 사인을 받았다. 그는 지금 내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있을샤넬 크루즈 쇼를 준비하는 액세서라이징(모델에게 의상을 입혀보며 액세서리와 백 등을 점검하는 작업) 세션을 막 시작하는 중이다. 특급 호텔 2개 층을 통째로 빌려 그중 가장 큰 홀에서 액세서라이징을 하고 있는 칼을 만나러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홀 안에는 그의 뮤즈이자 그가 ‘잉글리시 인스퍼레이션’이라고 종종 부르는 아만다 할레치와 패브릭 디렉터인 김영성 등이 라거펠트를 둘러싸고 ‘핫’한 모델들인 수주, 빙스 왈튼, 몰리 블레어 등에게 피팅 작업을 막 시작하고 있었다. 으레 프랑스인이면 나누는 비주 대신(어쨌든 그는 독일인이니까) 악수로 인사를 나눴다. 물론 손가락이 나오는 검은 장갑은 낀 채로. “오, 엘르 코리아! 내 방에 있는 엘르 코리아 책 봤는데, 너무 잘 만들었더라. 뷰티풀 매거진! 엄청 두꺼워”라는 칼의 첫 마디가 긴장된 내 마음을 조금 가라앉혀 주었다. “앉아, 앉아.” 어찌 하다 보니 남은 의자는 그에게 바짝 붙은 의자뿐인데 나일론으로 만든 얄팍한 카모플라주 파우치 가방이 그 위에 놓여 있었다. 칼의 가방임이 분명한데 나는 그 가방을 거의 깔고 앉는 듯한 모양새로 앉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는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다. 잠시 인사 후 다시 하던 일에 몰두하는 그는 속사포처럼 영어와 프랑스어를 섞어가며 스태프들에게 디렉션을 지시한다. 그와 너무 바싹 붙은 의자 때문에 나는 어느새 그의 검은 선글라스 뒤에 숨은 날카롭지만 약간 장난기 있어 보이는 눈빛까지 다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는 우리가 늘 사진과 캣워크 피날레에서 봤던 높은 하이 칼라의 흰 셔츠에 검은 수트를 입고 묵직한 실버 브레이슬렛을 치렁치렁 두르고 있다. 그가 갑자기 옷깃을 살짝 올려 손목을 보여준다. “요즘 다들 이 시계 차더라.” “우와 애플 워치네!” 그의 손목에는 고가라고 소문난 옐로골드 애플 워치가 채워져 있다. “응, 맞아. 애플에서 스페셜하게 만들어줬어. 스토어에 출시되기도 전에.” 역시, 이 분 실제 나이는 그저 생물학적 나이에 불과한 게 맞다. 갑자기 이런 자랑을 하는 게 귀엽다. “어때, 차보니까 괜찮나요? 만족해요?” “그럼, 너무 아름답잖아. 아주 좋아!” 그의 책상 위엔 내일 쇼와 관련된 사진들과 액세서라이징에 사용될 각종 액세서리들 그리고 우아한 흰색 반투명 칵테일 잔에 담긴 검은색의 액체가 놓여 있다(분명 다이어트 콜라려니). 갑자기 그가 뭔가를 내밀었다. 우아한 유리 뚜껑이 달린 쿠키 스탠드에 담긴 건 프렌치 마카롱이 아니라 미니 사이즈의 다식이었다. 아. 그렇지 우리 지금 서울, 코리아에서 열릴 샤넬 컬렉션을 준비 중이지. 옆에서 이게 뭐냐고 묻는 미국 신문기자에게 나는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차를 마시거나 손님에게 대접하는 고급 과자 같은 것이라고 나도 모르게 열심히 부연 설명을 했다. “아 그래요? 뭐라고 부르는데요?” “다식이라고 해요.” 미국 기자는 열심히 받아 적는다. ‘Da-Sik’. 그러고 보니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는 모델들은 모두 머리에 가채 같은 헤어피스를 달고 있었다. 그중 두 개짜리 작은 가채를 한 소녀 모델들은 전래동화 <나무꾼과 선녀>에 나오는 선녀 같다. “코리언 패치워크, 너무 좋아. 멋져.” 칼의 말을 들으니 눈앞에는 가채를 얹은 모델이 한국의 조각보 기법을 살린 베이지색 오간자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한국식 버선도 만들었네요.” 내가 말했다. “가죽으로 만든 게 재미있지 않아? 아이들이 신는 귀여운 한국 전통 신의 느낌을 살렸지.” 옆에 있던 미국 기자가 “아, 그럼 옛날 한국에서는 저렇게 가죽으로 만들어 신었나요?” 이번에도 내가 자동적으로 대답했다. “아니요, 면이나 실크로 만든 양말 같은 거죠. 그걸 칼이 가죽 소재로 만들어 신발로 디자인한 게 신선하네요.” 흡사 한국 복식에 관한 포럼 같은 분위기다. “한국 전통 머리 양식을 응용했어. 소재는 오간자, 트윌, 전형적인 한국식 패치워크 그리고 컬러는 주로 파스텔컬러, 핑크 컬러를 많이 썼지. 전형적인 한국 실루엣을 보여주려고 했고. 너무 우아하지 않아? 하이웨이스트 실루엣. 한국 전통 의상의 비율이야, 아름다워. 이렇게 모던하게 응용하면 아주 새롭게 보이지.” 미국 기자가 묻는다. “이전에도 한국 인스퍼레이션을 사용한 적이 있나요?” “아니 아니, 이전에는 없었어. 하지만 항상 한국 전통 의상이나 전통 예술을 좋아했어.” 내가 물었다. “왜 하필 서울이죠? 샤넬 크루즈 쇼가 열리는 곳이?” “지금까지 다들 중국이나 일본에 대해서만 잘 알고 그 영향을 많이 받았지. 아무도 한국적인 걸 패션에서 쓰질 않았어. 한국에도 아름다운 것들이 많은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 그래서 한국에 대한 뭔가를 만들어 보는 게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했어. 특히 샤넬의 패브릭 디렉터인 킴(김영성)이 이번 컬렉션을 많이 리드했지. 킴이 코리언이야. 다른 사람들은 없는 한국에 대한 커넥션이 내가 좀 있는 셈인 거지. 하하.”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와 두바이에 이어 서울이 세 번째로 샤넬 크루즈 쇼의 영감이 된 셈이다.

4쇼가 끝난 후 인파 속에 휩싸인 칼 라거펠트.

5가채를 얹은 모델 수주에게 쇼 전 날, 액세서라이징 작업을 하고 있는 칼 라거펠트.

6한국적인 조각보를 모티프로 한 롱 재킷과 드레스.7칼 라거펠트가 한국의 구름을 보고 영상화시켰다고 하는 드레스.

8한국적인 색상과 문양, 실루엣이 넘쳐난 샤넬 크루즈 컬렉션. “맞아요, 한국인에게는 익숙하기도 한 모티프들인데 세계인들에게는 이번 컬렉션이 정말 새롭게 보일 거 같네요.” 나의 맞장구에 그도 기분 좋게 응답한다. “물론이지. 로컬에서 시작된 글로벌 패션인 셈이야.” 칼은 옆에 앉은 기자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연신 의상과 액세서리에 대한 디렉션을 전달한다. “노노노 너무 커, 너무 커. 그리고 그건 좀 더 창백한 색으로 해야 해.” “재킷을 앞으로 당겨서 입어야 해요.” “몰리, 파자마 팬츠 포켓에 손을 넣어봐. 그렇지, 퍼펙트!” “그의 목소리는 80세에 가까운(?) 노인의 목소리라고 하기에는 놀랍도록 단호하고 힘 있고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그가 여전히 젊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워커홀릭임은 온전히 믿을 만한 사실인 것 같다. “저 드레스는 한국 하늘의 구름에서 따왔어. 봐봐. 여기 창문 밖 구름이랑 이 드레스랑. 멋진 구름 드레스지! 소재는 플라스틱과 실크를 섞었지. 이렇게 오래된 것과 현대적인 것을 함께 섞는 게 좋아.” 실리콘으로 덮여 반짝이는 층층이 오간자 드레스는 정말 간만에 파랗게 개인 하늘에 뜬 구름과 닮아 있었다. 칼은 옆에 있는 프랑스 기자에게도 똑같이 프랑스어로 설명해 준다. “한국적인 재봉 기법들에 대해서 여기 기자들에게 설명 중이야”라며 중간중간 나에게 보고(?)도 해가며. 이어서 등장한 드레스는 한국의 자개 장식을 그대로 비즈로 옮겨 놓은 듯하다. 아름답다. 이렇게도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슬슬 이 의상들을 선보일 내일의 컬렉션에 대한 궁금증이 치민다. “내일 쇼 무대는 어떨지 이야기 좀 해 주면 안 되나요?” “쇼 무대? 아, 그건 서프라이즌데. 흠, 조금 보여줄까, 그러면?” 그는 아이폰을 꺼내든다. 휴대폰은 두 개다. 하나는 순전히 그의 고양이, 슈페트와의 대화(!)를 위해서만 쓰는 폰이라고 귀띔해 준다. 홈 사진은 당연히 슈페트다. “쇼 초대장에 그려진 도트 무늬 봤지? 서울 DDP 근처에 도트 무늬 빌딩이 하나 있어. 이런 게 한국의 모던한 부분이라고 생각해. 자하 하디드의 아름다운 건물 안에 이런 모던한 패턴으로 세트를 만들었어. 1000명 이상이 앉을 건데, 도트로 디자인된 모든 의자가 다 높이가 다르고 다른 색으로 만들어져 있어. 캣워크 라인도 다 도트로 만들었어. 거의 설치미술 같이 만들었어.” 칼은 그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 이미지를 보여주며 크루즈 쇼의 무대 세트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하지만 그의 저장된 사진들의 9할은 슈페트 사진인 것 같다. “서울에 슈페트도 같이 왔나요?” “아니, 여행하는 건 위험해서 안돼. 이 폰으로 대화도 하니까 괜찮아. 메이드가 항상 곁에 있고 간호사 두 명이 24시간 붙어 있어.” 호령하던 마스터는 간 데 없고 급 ‘딸바보’처럼 슈페트 사진을 자랑한다. “진짜 예쁘지? 진짜 스페셜하지? 이 눈 좀 봐 봐.” 살짝 물었다. “혹시 질투는 안 나나요? 슈페트의 인기도 장난 아니던데.” “질투는 내가 모르는 감정이야.” 완강히 부인한다. 곧 또 이어지는 고양이 딸 자랑. “엄청나다니까. 독일에선 자동차 광고도 했는데, 2주 안에 솔드아웃 됐어. 대단하지?” 실제로 슈페트는 2014년 단 2개 브랜드의 광고 수입으로 총 35억 원의 수입을 올렸다. 카라 델레바인이 수십 편의 광고를 찍고 번 돈과 비슷한 액수다. 이쯤 되면 딸 자랑을 할 만도 하다. 사실 ‘딸’이라는 비유는 부적절할 수도 있겠다. 라거펠트는 얼마 전 <CNN>과의 인터뷰에서 “고양이와 사랑에 빠질 줄은 몰랐다. 아직 동물과 결혼하는 절차는 없지만 나는 솔직히 슈페트와 결혼하고 싶다”고 밝힌 적이 있으니! “이건 놀라는 표정, 이건 인사하는 표정…. 쇼핑백에 숨어 있는 걸 제일 좋아해.” 사진을 계속 보여주는 칼의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당신이 제일 행복한 시간은 슈페트랑 함께 있을 때겠군요?” “그렇지. 그럼, 그럼.” ‘신’은 두렵고도 먼 존재일 거라 생각했다. 만나보니 ‘패션 갓’은 재미있고 장난기 많고 지독히도 일을 열심히 하며 즐기는 존재였다.

9색동의 느낌을 비즈와 사선으로 더욱 다이내믹하게 풀어냈다.10 11자개 장식에서 영감받은 의상들.12화려한 색동의 즐거운 충돌.

13쉴새 없이 속사포처럼 디렉션을 쏟아내는 라거펠트는 딱 봐도 워커홀릭이다.14쇼직후 거대한 카밀리아 트리를 형상화한 구조물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파티 홀. 다음 날, 어린이날을 앞둔 느긋해진 저녁 시간에 샤넬 크루즈 쇼는 시작했다. 서울 DDP에 모인 수많은 인파 속에는 틸다 스윈턴, 크리스틴 스튜어트, 지젤 번천, 알마 조도로브스키, GD와 태양, 최시원, 씨엘과 크리스탈, 윤아, 한예슬, 배두나, 정려원 등 할리우드와 코리아의 셀러브리티들이 섞여 모여들었고, 흡사 DDP는 샤넬 프레타 포르테 쇼가 열리는 그랑 팔레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쇼는 흥미진진했다. 스팽글로 장식된 색동 소매가 등장했고, 한국의 둥근 선을 드러낸 우아한 트위드 재킷도 있었다. 전날 라거펠트가 말했듯 ‘한복을 샤넬 버전으로 만든’ 의상이었다. 수 년간 한국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그려낸 ‘한국적인 패션’을 봐왔지만, 한 재능 있는 이방인의 눈으로 한국을 패션으로 그려낸 걸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으로도 가치는 충분하지 않은가. 너라면 당장 쇼핑하겠느냐고? 내 답은 예스다. 한복의 소매선을 닮은 우아한 재킷과 한국 전통 자수 베개를 모티프로 만든 사랑스러운 핸드백은 쇼를 보는 내내 어떻게든 고이 간직하고 싶은 마음을 들게했으니까. 쇼는 끝났는데 서울은 여전히 이 쇼로 인해 좀 떠들썩했다. 한복을 너무 직설적으로 담아냈다는 둥, 한복을 제대로 연구하지 않은 거 같다는 둥, 너무 직접적으로 한국 소비자들에게 구애한 컬렉션이라는 둥의 부정적인 의견부터 한국을 테마로 한 컬렉션을 샤넬이 보여주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전 세계에 한복이라는 운을 떼어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 긍정적인 의견까지, 팽팽하게 맞섰다. 나는 며칠 전부터 쇼를 보러 온 세계 주요 프레스들이 올리는 인사동과 한옥마을 체험 사진과 포스팅들을 모니터링했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트렌드세터들과 VIP 1000여 명은 샤넬 쇼에 초대받아 ‘한국의 오늘’을 며칠간 체험했더랬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대폿집에서 삽겹살에 한국 맥주를 마셨고, 틸다 스윈턴은 지인들과 노래방에 가서 노래도 불렀다. 포스팅에는 경복궁과 비빔밥, 녹차 사진이 올라왔다. #ChanelCruiseSeoul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나는 그래서 나의 페북에 이렇게 썼다. “패션계에서 이건 월드컵 유치나 올림픽만한 가치가 있는 행사였다”고. 누군가는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내 생각은 며칠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쇼가 끝난 3일 후, <엘르> 프랑스 편집장으로부터 메일이 도착했다. “디어 줄리아. 나 이제 막 한국 샤넬 쇼 보고 왔어. 서울 너무 멋지더라! 그래서 몇 가지 더 물어봐도 괜찮겠니? 샤넬이 한국을 테마로 쇼를 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샤넬이 정말 한복을 제대로 표현했다고 생각하니? 한국 사람으로서 볼 때 말이야. 한국인들은 실제로 한복을 언제, 어떻게 입니?” 그녀는 이메일에 ‘Hanbok’이라고 정확히 썼다. 수 년간 파리와 뉴욕과 밀란 컬렉션에서 얼마나 여러 번 수없이 ‘기모노’와 ‘젠’과 ‘오비’와 ‘청삼’이라는 단어와 만났던가. 이런 것들이 영감의 원천이니, 트렌드이니 할 때마다 느꼈던 마음 한켠의 아쉬움이 이제야 좀 덜어지는 걸 느끼는 게 뭐 그리 촌스러운 일일까. 영국 <데일리 메일 Daily Mail>은 샤넬 크루즈 쇼 다음 날, 이런 타이틀의 기사를 실었다. ‘하이패션의 한국화, 샤넬 크루즈 컬렉션 서울에서 개최, 왜 디자이너들이 다 동쪽을 주목하는가.’ 쇼에 참석한 최시원과 윤아의 사진까지 실은 이 기사의 끝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서울이 그저 쇼의 장소로 선택된 것뿐 아니라 칼 라거펠트의 영감의 원천이었다는 점이다. 샤넬 외에도 다른 하이패션 브랜드들이 한국을 계속 주목하고 있다. 샤넬이 분명 서울에서 쇼를 한 첫 번째 브랜드이긴 했으나 마지막이 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샤넬 쇼는, 칼 라거펠트는, 분명 문 하나를 열었다. 그것이 어떤 문인지는 두고 보면 알 일이다.

editor 강주연

Courtesey of CHANEL, 목정욱(흑백인물사진)

design 최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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