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서 게임해라" 교내 PC방 만든 교장선생님

2015. 6. 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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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산업정보학교 방승호 교장
[동아일보]
서울 마포구 아현산업정보학교 방승호 교장이 4일 교장실에서 자신이 만든 금연송을 부르고 있다. 방교장은 “훈계나 담화보다 노래와 공감이 학생들의 마음을 여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게임과 흡연은 한번 빠지면 중독에까지 이르는 심각한 ‘병’. 특히 청소년기에는 겉멋과 재미로 한번 빠지면 잘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 화장실에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와 새벽까지 PC방을 전전하는 청소년들은 선생님들의 골칫덩어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서울 아현산업정보학교 방승호 교장(54)은 보통 사람은 생각하지도 못한 방법으로 이 난제들을 모두 해결해 눈길을 끌고 있다.

2012년 9월 서울 중랑구 중화고 교감으로 부임한 방 교장은 당시 학교를 꽉 채운 담배 냄새로 골머리를 앓았다. 화장실에서 나온 냄새가 교장실까지 퍼져 손님을 초대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던 것. 참다못한 방 교장은 어느 날 무작정 기타와 앰프를 화장실 앞에 설치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화가 나기도 했지만 교장이 화장실 앞에 있으면 담배를 피우는 것이 줄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웅성웅성 모여든 학생들은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려 댔고, 그날 이후 방 교장을 보면 “가수!”를 외치며 하이파이브를 해댔다.

방 교장은 “당시 즉흥적으로 화장실 공연을 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었다”며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말하는 것보다 진심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후 방 교장은 지인의 도움으로 작곡가 안영민 씨를 만나 금연송 ‘노 타바코(No Tabacco)’를 만들었다. 가사는 방 교장이 직접 학교에서 겪은 일을 토대로 썼다.

‘다 되는데 담배는 안 되는 것 같다/등나무 밑에 가면/하얀 담배꽁초가… 도망가는 너희들의 그 뒷모습/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거였을까/어른들이 해 주지 못했던 일/그건 바로 사랑일 거야’(‘노 타바코’ 중)

방 교장은 이 노래를 흡연하다 걸린 학생들과 함께 교장실에서 여러 번 불렀고 이후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장난처럼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이 가사를 곱씹어 보더니 담배를 끊기 시작한 것. 몇 달 만에 흡연율은 방 교장 부임 당시보다 10분의 1가량으로 줄었다.

방 교장은 담배만 잡은 것이 아니다. 이전에는 학생들이 담배보다 더 지독하게 빠지는 ‘게임 중독’도 잡았다.

2007년 아현산업정보학교에 교감으로 부임한 방 교장은 학부모들로부터 학생들의 심각한 게임 중독을 근절시켜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았다. 중학생 때는 부모 몰래 게임하던 애들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새벽까지 게임을 하고, 지각하는 일이 잦다는 것. 이런 일들이 쌓이면서 수업 일수를 못 채우고, 퇴학을 당하고, 결국에는 부모를 때리고 가정이 무너지는 일까지 벌어진다는 것이다.

고민하던 방 교장은 학교에 ‘e스포츠학과’를 만들었다. 그는 “말이 학과지 실은 게임 중독자 치료 과정이었다”며 “어차피 학교 밖, 집에서도 게임만 하는 아이들을 학교에서 컨트롤해 보자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아예 학교에 만든 PC방에서 1교시부터 스타크래프트를 하게 하고, 중간에 간간이 게임 제작 등 교과목을 가르치는 방식으로 수업을 한 것.

방 교장은 “몇 달이 지나자 게임에 중독된 아이들 중에서도 정말 게임만 할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갈리기 시작했다”며 “실력이 좋은 아이들은 프로게이머로 정식 데뷔했고, 승부에서 진 아이들은 스스로 다른 진로를 찾아 나섰다”고 말했다.

방 교장은 “학교에 PC방을 만들고, 금연송을 함께 부른 것 때문에 처음에는 욕을 많이 먹었다”며 “하지만 무작정 다그치는 것보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진심을 가지고 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흡연과 게임 중독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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