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오본' 전희철의 새로운 도전

전민선 2015. 6. 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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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농구 열풍에서 빠져선 안 될 이름 전희철. 슈터 못지않은 3점슛, 일정한 포지션에 얽매이지 않고 내외곽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전천후 해결사였던 그가 골프에 푹 빠졌다. 요즘그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전국을 누비며 골프를 즐긴다.

1990년대는 대학 농구가 전성기를 맞이했던 시기다. 아마 최고의 인기 스타였던 농구 선수들을 보기 위해 농구장에서 살다시피한 억을 가진 이들이 꽤 많을 거다. 에디터 역시 그중 한 명. 히 연세대와 고려대의 양자 구도는 전설의 ‘오빠부대’를 만들 정도로 최고의 인기였고, 단연 빅매치였다. 연세대 농구부는 문경은, 우지원, 이상민, 서장훈, 김훈 등이 대표 선수로 활약했다. 준수한 외모에 실력까지 겸비한 이들의 인기는 당대 최고 연예인 못지않았다. 이에 맞서는 고려대 또한 대단한 선수들이 포진해 있었다. 전희철, 김병철, 현주엽, 양희승, 신기성이 바로 고려대를 최고의 전력으로 이끌었던 주인공들. 렇듯 시대를 풍미한 스타 플레이어 중 외곽과 내곽을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코트를 누빈 ‘에어본’ 혹은 ‘에어 희철’로 불린 전희철을 만나봤다(여기서 ‘에어’는 점프력과 탄력이 뛰어난 아트 덩커들에게 붙는 애칭이다). 농구 스타 중 대표적인 골프 마니아답게 그는 요즘 골프에 푹 빠져 있다. 농구의 달인에서 골프도 싱글 핸디캐퍼로 접근 중이라는 그와 최전성기였던 그 시절 이야기부터 골프 라이프까지 이야기를 나눠봤다.

시작한 계기BASKETBALL초등학교 때 단지 키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농구를 시작했다. 5학년 때 큰 키 때문에 초등 농구의 전통 명문, 대방초등학교 농구부에 스카우트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키가 170cm였다. 그때 김병철, 석주일 등이함께 있었다.GOLF1999년에 시작했다. 농구 선수 문경은, 이상민과 비슷하게 시작했다. 아버지가 운동을 좋아하는데, 골프도 잘 치신다. 싱글 핸디캐퍼다. 어머니 역시 골프를 친다. 부모님과 같이 즐길 수 있는 운동을 찾다가 입문했다.

처음 시작했을 때 어떤 농구 선수 또는 골퍼가 되고 싶었나BASKETBALL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재능이 없었지만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농구계에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신체 조건과 재능이 좋았다.GOLF골프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어려웠다. 공을 맞히는 것조차 쉽지않았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 것 싱글을 쳐보고 싶었다. 베스트 스코어는 지난해 기록했다. 80타다. 요즘에는 잘 안 맞는다 해도 90타 초반의 스코어를 기록한다.

끊임 없는 노력BASKETBALL키는 큰데 상당히 마른 체형이었기 때문에 몸이 약했다. 그래서 중학교 때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했다. 그 후 말랐지만 강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파워포워드 포지션은 몸싸움에서 지면 안 된다.GOLF골프는 소위 설거지를 잘해야 스코어

메이킹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 내기 골프를 즐기는데, 지지 않으려면 어프로치와 퍼팅을 잘해야 한다. 처음에는 드라이버 샷 비거리에만 신경 썼는데 점차 숏게임에 집중하게 됐다. 게다가 34~36세엔 농구에 집중하기 위해 2년 동안 골프 클럽을 잡지 않았다. 36세 때 은퇴하고 오랜만에 골프 클럽을 잡았더니 300야드 남짓 나가던 비거리가 230야드로 줄었다. 그 후부터는 더욱 숏게임을 잘하려고 노력한다.

롤모델BASKETBALL‘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다.<fontsize=2>GOLF남자 아마추어 골퍼는 여자 선수의 스윙 템포와 스피드를 따라 하면 좋다고 들었다. 때문에 KLPGA투어 중계방송을 자주 본다. 허윤경 프로와 김효주 프로의 스윙을 눈여겨본다.

최고의 라이벌BASKETBALL대학 때는 연세대가 라이벌이었다. 아직도 농구 경기장을 함성으로 뒤흔들었던 연세대와의 맞대결이 잊혀지지 않는다. 누구 한 명을 꼽을 수는 없지만 같은 포지션에 있는 상대편 선수는 모두 나의 라이벌이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최고의 라이벌이다. 다행히 나는 멘탈이 강한 편이었다.

GOLF지금 함께 서울 SK 나이츠에 있는 문경은 감독이다. 자주 라운드를 나가는 데다 나보다 항상 한두 타 정도 잘 치기 때문에 흥미진진하다.

승부욕BASKETBALL

선수시절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선배들과도 다툼이 있었다. 경기가 끝난 후 사과를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승부욕 때문에 이마가 찢어지건 손이 골절되건 이를 잊고 게임에 집중했다. 대구 동양 시절 현대와의 원정 경기에서 상대 외국인 선수의 왼쪽 팔꿈치에 이마를 가격 당했다. 이마에서 피가 철철 흘렀지만 붕대를 칭칭 감고 현대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종료를 3분 정도 남기고 덩크슛을 쐈고, 결국 우리 팀이 승리를 거뒀다.GOLF골프는 상대와 싸우면 안 되는 스포츠다. 나의 스코어를 체크하면서 나 자신에게 지면 안 된다.

나의 장기BASKETBALL내외곽 플레이.GOLF멘탈이다. 황당한 미스 샷에 화가 날 때도 있지만, 예를 들어 벙커에서 두세번을 쳤는데 탈출하지 못했어도 다음에 잘 맞으면 보기로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얼마 전 동반자 한 명이 라운드 중 이런 말을 했다. “쟤는 절대 안 무너져.”

내가 생각하는 나의 전성기와 베스트 스코어를 기록한 날BASKETBALL대학교 3, 4학년 때가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다. 인기나 몸 컨디션이나 농구 기술도 그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GOLF지난해 레이크사이드 골프장 동 코스에서 기록한 80타가 베스트 스코어다. 예전에는 드라이버 샷 비거리가 워낙 길어서 파5 홀이 아니고서는 거의 세컨드 샷에서 웨지를 잡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거리가 50야드 이상 줄면서 7번과 8번 아이언을 자주 꺼내게 된다. 결국 아이언 샷이 그날의 스코어를 좌지우지한다. 지난해 미즈노에서 JPX E Ⅲ 포지드 아이언을 피팅받은 후 라운드당 아이언 미스 샷이 3~4개 줄었고, 마침내 베스트 스코어를 기록했다.

editorJun Min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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