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연예인, 무분별 주점.. 대학이 대학이 아니다

김예지 입력 2015. 5. 30. 17:34 수정 2015. 5. 3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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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매년 논란 되풀이, 대학 축제 변해야 한다

[오마이뉴스 김예지 기자]

대학 축제 기간이다. 학교에서 '시조새'로 비유되는 고학년인 나는 어느덧 맘껏 축제를 즐기기 모호한 위치가 됐다. 하지만 아쉬운 건 없다. 학교에 입학하고 두 번의 축제를 경험했다. 돌이켜보면 그 두 번의 축제에 관한 기억은 데칼코마니처럼 비슷하다. 그동안 내가 경험한 축제는 그저 고생의 기억이다.

지난 두 번의 축제 동안 나는 계속 무언가를 팔았다. 주점을 운영했던 것은 아니다. 학회활동의 일환으로 낮 부스에서 아이스크림 같은 간식거리를 팔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 시절엔 그저 열심이었다. 교양수업만 같이 듣는 서먹한 친구, 내 이름조차 모를 어느 교수님, 그리고 여대 축제를 구경하러 온 남학생에게 음식을 거의 '강매'했다. 그 후 내가 학회를 맡고, 더 이상 눈치 볼 선배가 없는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목적 없는 '팔이'는 계속됐다.

고생만 잔뜩 하고, 수익도 별로 나지 않는 부스를 운영하고 싶지 않았지만 '해야 하니까' 했다. 돈을 벌어 어디에 쓸지도 정해두지 않았다. 그저 내년 학회 운영에 보탬이 되겠거니 생각했다. 물론 아이스크림 같은 것을 팔아봐야 기계 대여비나 재료값을 빼면 그다지 남는 것은 없었다. 적자가 날까 두려워 파는 물건을 스스로 사 먹은 적도 많다. 돈도 쓰고, 힘도 빠졌다.

주점 운영 돕던 후배가 선배 되면 불참하는 이유

올해도 학교 축제는 돌아왔고, 후배들은 지난 2년간 내가 그래온 것처럼 또다시 무언가를 판다. 이것을 왜 해야 하는지 그들도 나도, 여전히 모른다. 저녁이면 캠퍼스를 가득 채우는 주점도 상황은 비슷하다. 보통 주점 운영을 돕던 후배는 시간이 지나 선배가 되면 다시 주점 운영에 참여하려 하지 않는다. 목적 없는 고생을 되풀이하기 싫은 거다.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매년 해온 것이니까, 관행처럼 하는 것. 부스 운영뿐만 아니다. 대학 축제 자체가 그렇다. 지금의 대학 축제는 목적성을 잃었다. 아니, 무엇이 목적이었는지 잊었다. 대신 팔고 소비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됐다. 대학 축제를 가득 채우는 부스 중에서 무언가 참여하고 체험할 수 있는 부스는 몇 없다. 밤이 되면 모든 부스가 주점이다. 이 부스에서 누군가는 술을 많이 팔기 위해 원치 않는 복장을 한다. 비슷한 판매 부스들 사이에서 관심을 끌기 위해 성희롱이나 다름없는 자극적인 문구로 메뉴판과 포스터를 꾸미기도 한다. 파는 사람도, 소비하는 사람도 축제가 불편해진다.

팔고 소비하는 것이 주목적인 대학 축제에서 학생들은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다. 대학 축제에서 학생들이 운영하는 부스만큼이나 많이 보이는 것은 기업의 홍보 부스이다. 학생회 주관 행사보다 기업의 홍보 행사에 더 긴 줄이 이어지는 것은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공연 무대도 마찬가지다. 대학 축제 무대에서 학생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학생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어도, 관람석은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학생들 대신 무대에 서는 건 연예인이다.

또 연예인을 섭외할지 말지, 어떤 연예인을 섭외할지 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학생회의 권한이다. 보통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배제된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꾸려진 공연을 관람하는 것도 모든 학생들에게 열려있는 것은 아니다. 올해 어느 대학 축제에서는 학생회 '귀빈석'이 등장했다. 학생회 간부들은 공연 무대와 가까운 쪽에 따로 관람석을 마련했고, 학생들은 그 뒤에서 공연을 봤다. 또 다른 대학 축제에서는 인기 연예인이 출연하는 공연 암표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학생들의 공연 관람이 어려웠다. 학교 축제인데 정작 학생들은 축제를 즐기기 힘든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축제기간 청소노동자 현수막 철거, '백지학보' 사태로 비화

학생들만 축제에서 소외되는 것은 아니다. 올해 한 대학의 학생회는 축제를 앞두고 임금과 근로조건 향상을 놓고 농성을 벌이던 청소노동자들의 현수막을 모두 철거했다. 축제의 미관을 해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누군가는 축제를 했지만, 누군가는 목소리를 잃은 채 농성을 해야 했다.

결국 이 사태에 문제의식을 느낀 학생들과 졸업생들이 학생회에 항의의 목소리를 냈고, 29일 총학생회는 학내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지난 28일에는 청소노동자들과 용역업체의 협상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해당 문제를 전면에 다루려던 학보는 주간교수와의 마찰로 백지 발행됐다. 축제는 끝났지만, 문제는 마무리되지 않았다.

그런데 학내 구성원 사이에서 끈질기게 논의되어야 할 이런 문제들은 축제가 끝나면 모두 자취를 감춘다. 휘발적인 축제의 성격 탓도 있지만, 시기의 문제도 있다. 보통 대학 축제는 5월 중순에서 말까지 이어진다. 축제가 끝나고 나면 바로 기말시험 기간이다. 기말시험이 끝나면 곧바로 방학이다. 축제 과정에서 불거지는 다양한 문제들을 논의하고, 피드백할 시간이 없다. 학생들 사이에서 논의가 산발적으로 이루어져도, 학생회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변화는 요원하다. 대학 축제의 문제는 해만 바뀐 채 되풀이된다.

대학 축제의 문제가 데칼코마니처럼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끈질기게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 팔고 소비하는 것이 전부가 아닌, 보다 새로운 축제를 상상해야 한다. '그들'만의 축제가 아닌 '모두'의 축제를 고민해야 한다. 특히나 학생회는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거창한 담론을 구성하고, 심각한 축제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신나게 노는 것을 축제의 목적으로 정할 수도 있다. 대신 일부만 신나게 노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신날 수 있는 축제를 고민하면 된다.

무엇보다 학내 구성원이 주인공이 되는 축제를 상상하면 된다. 그런 축제를 만들기 위해, 축제의 끝은 논의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 대학 축제가 더이상 '고생의 기억'으로 남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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