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혁신' 타령, 실천은 언제 하나

백철 기자 입력 2015. 5. 30.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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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연합 김상곤 혁신위 출범… 공천·계파·인물 문제가 3대 과제

“‘혁신’보다는 ‘실천’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과거 숱한 야당의 혁신위에 참여했던 인사들과 현 새정치민주연합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한 한 문장이다.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을 위원장으로 하는 새정치연합 혁신위가 출범했다. 새정치연합이 야당이 된 2008년 이후 이번까지 총 일곱 번 혁신위를 출범시켰다. 모두 선거 패배와 관련이 있다. 2008년 10월 정세균 지도부와 최고위원회는 뉴민주당 비전위원회 출범을 의결했다. 대선과 총선에서 연거푸 패배한 이후에 나온 혁신방안이다. 뉴민주당 비전위원회는 2010년 3월 뉴민주당 선언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어진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권은 모처럼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뒤이은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하고 손학규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지도부가 들어선다. 손학규 지도부는 천정배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수권정당을 위한 당 개혁 특별위원회’를 만든다.

이후 2012년 총선에서 야당이 패배한 뒤, 민주정책연구원에서 총선 평가보고서를 작성한다. 하지만 논란 끝에 이 보고서는 대외비에 부쳐진다. 대선에서 또 패배하자 한상진 서울대 교수가 위원장인 대선평가위원회와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가 위원장인 정치혁신위원회가 들어섰다. 2014년 3월 새정치연합 창당 이후에는 전원 외부인사로 구성된 새정치 비전위가 구성됐다. 같은 해 7·30 재·보선 패배 뒤 원혜영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정치혁신실천위원회가 나타났다. 그리고 올해 3월 재·보선 패배 이후 김상곤 혁신위가 등장한 것이다.

2012년 대선 이후인 2013년 1월 현충원을 찾은 민주통합당 지도부가 국민들에게 사죄하는 의미로 절을 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잠자고 있는 문서화된 혁신안만 6건전문가들은 “그동안 여러 혁신위에서 다룬 내용만 간추려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미 새정치연합에는 문서화된 혁신안만 6건이 있다. A4 용지 기준으로 볼 때, 뉴민주당 비전위는 78쪽, 2011년 천정배 혁신위는 30쪽, 2012년 정치혁신위원회는 26쪽, 대선평가위원회는 369쪽, 새정치 비전위원회는 45쪽의 결과물을 남겼다. 지금도 이 보고서들은 모두 인터넷에 공개돼 있다. 비공개 결정이 난 2012년 총선 평가보고서는 30페이지 분량의 파워포인트 자료로 알려져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12년 총선 평가보고서에는 야권연대와 MB 심판론이 등이 총선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새정치 비전위에 참여했던 최태욱 교수는 “지난해 우리가 만든 것도 사실 새로운 안은 아니었고 과거 천정배 혁신위나 정해구 혁신위에서 발표했던 것을 토대로 제언을 한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만든 혁신안을 어떻게 구속력 있는 제도로 만들 수 있는지가 중요한데, 현재로선 그 부분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김상곤 위원장이 해결해야 할 3대 과제로 공천, 계파, 인물 문제를 지적했다. 새정치비전위에 참여했던 A씨는 “최소한 40% 이상의 현역 물갈이가 필요하다. 특정 지역에서 3선 이상 당선된 사람이라면 의무적으로 야당의 지지율이 낮은 곳에 나서게 하는 것도 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뉴민주당 비전위에서 활동했던 당내 인사 B씨는 “국민의 기대수준에 맞는 혁신을 하려면 무엇보다 인적 쇄신이 중요하다. 서너 번씩 국회의원을 했던 인물이 아니라 새로운 인물이 들어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1년 천정배 혁신위에 참여했던 김태일 영남대 교수는 “혁신의 아이디어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공천룰이다. 계파 갈등의 핵심은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하느냐 하는 문제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의사결정의 규칙이 확정되지 않고 계속 바뀌다 보니 그 결정의 정통성도 떨어지고, 계파별로 승복하지 않는 부분도 나타난다. 총선이 많이 남은 지금 시점에서 공천룰을 확정해야 오히려 총선 때 안정적인 공천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역시 문제는 실천 의지다. 과거 혁신위에 참여한 인사들도 혁신안이 제대로 실천이 됐는지를 잘 모르고 있었다. A씨는 “새정치비전위에 참여하기 전에 과거 혁신안을 다 검토해 봤다. 그런데 이 문건들에 대해 당에서 공식적으로 채택을 했는지, 했으면 어떤 혁신안 중 어디까지 실천을 했고, 어떤 부분은 어느 사유로 실천이 안 됐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그 내용을 잘 아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과거 혁신위의 권고가 무시되고 있는 정황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지난해 4월 새정치비전위는 부패 전력자 공천 배제, 공천배심원단 도입을 통한 객관적인 공천제도 등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치러진 7월 재·보선은 중앙당의 무리한 전략공천과 비리 전력자 공천으로 내부 분란이 계속된 끝에 패배로 끝났다. 최태욱 교수는 “당시 우리는 공천제도를 그때그때 할 게 아니라 독일이나 미국처럼 법으로 강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봤다. 그 외에 공천배심원제 등이 도입되면 계파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효과도 있는데, 실천을 안한 게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6월 중 완료될 혁신위 구성부터 난항2012년 총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천정배 혁신위는 이미 2011년 7월에 당 개혁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2012년 총선 공천룰에 관련된 것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 총선 공천룰은 선거가 두 달여밖에 남지 않은 2012년 2월 12일에 확정됐다. 천정배 혁신안은 2012년 총선에선 여성 15%, 이후 선거에서는 여성 30% 할당제를 제안했고, 한명숙 지도부는 이를 수용했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서는 여성 할당제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하겠다는 목소리까지 터져나왔다.

김상곤 위원장은 강력한 ‘혁신의 아이콘’이 될 수 있을까. 출범 전부터 기존 원혜영 의원의 정치혁신실천위와의 권한문제, ‘486·호남 물갈이론’ 등이 튀어나왔다. 6월 중으로 완료될 것으로 알려진 혁신위 구성부터 만만치가 않다. 우선 내부인사와 외부인사의 비율도 결정되지 않았다. 과거 사례를 보면 뉴민주당 비전위는 전원이 당내 인사였고, 새정치 비전위는 전원 외부인사였다. 하지만 당내 인사가 주도한 것과 당외 인사가 주도한 혁신안 사이에 차이가 크지 않고, 더 이상 데려올 당외 인사도 마땅치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태일 교수는 “혁신안을 공들여서 만들었는데 당시 최고위에서 접수를 하는둥 마는둥 우물쭈물했다. 말로는 접수했다고 하고 사실상 캐비닛에 잠재워 놓으니 혁신위에 더 이상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당내 인사 C씨는 “지난해 새정치 비전위원회를 구성할 때도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구성에 참 애를 먹었다. 비전위 안이 제대로 실천됐는지 검토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어떤 사람들이 혁신하겠다고 들어올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상곤 위원장의 정무특보를 맡았던 김동선 혁신더하기연구소 이사는 “연구소 사람들은 거의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안다. 당분간은 혁신위가 어떻게 활동해야 할지 의견을 청취하고 나서 그걸 바탕으로 인선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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