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터 회장 못 꺾은 UEFA의 반란과 고민

김태석 2015. 5. 3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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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

지저분한 부패 스캔들 때문에 제프 블라터 FIFA(국제축구연맹) 회장 체제가 무너지나 싶었지만 그런 일이 없었다.

블라터 회장이 30일 새벽(한국시각) 스위스 취리히에서 벌어진 제64차 FIFA 총회에서 벌어진 FIFA 회장 선거에서 요르단 왕족 출신 알리 빈 알 후세인 FIFA 부회장을 꺾고 5선에 성공했다. 블라터 회장은 140표를 넘겨야 바로 당선 자격을 얻는 1차 투표에서 133표에 그쳤다. 2차 투표로 돌입하는 순간 알 후세인 FIFA 부회장이 돌연 후보직에서 사퇴하면서 회장직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정부가 FIFA 고위 관계자들을, 그것도 자국 영토 밖에서 스위스 정부의 협조를 받아가면서까지 부정부패 혐의로 대거 체포하는 유례없는 사건이 있었기에 혹시나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 기대하는 이들이 많았을지 모르겠다. 특히 UEFA(유럽축구연맹) 가맹국들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대로였다. '골 프로젝트'를 비롯한 여러 루트를 통해 각종 이권을 아시아·오세아니아·아프리카·남미·북중미에 안겨준 블라터 회장의 입지는 철옹성이었다. AFC(아시아축구연맹)는 선거 전 벌어진 사건과 무관하게 재차 블라터 회장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는 공식 성명까지 냈으니 말 다했다.

게다가 대항마의 무게감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알 후세인 FIFA 부회장은 분명 향후 주목해야 할 축구계 지도자 중 한 명이지만, 국제 축구계 경험이 4년 밖에 되지 않은 신출내기다. FIFA 회장 선거를 다섯 번이나 치르며 산전수전 공중전은 물론 지하전까지 치른 블라터 회장에게 아직은 비할 인물이 아니다.

그나마 의미 있었던 건 유럽을 제외한 나머지 대륙에서 몰표가 쏟아져 1차 투표에서 블라터 회장이 5선에 성공하는 일은 막았다는 점이다. 알 후세인 FIFA 부회장이 2차 투표를 포기한 것은 판세가 기운 탓도 있지만 블라터 회장의 5선에 대한 정당성을 크게 흔들려는 측면도 있다. 반(反) 블라터 진영에서는 일말의 자존심을 지킨 액션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알 후세인 회장은 1차 투표에서 73표를 얻었는데, UEFA의 54표를 빼더라도 블라터 회장의 텃밭인 타 대륙에서 19표나 표를 빼앗아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름 선전한 셈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선거는 끝났지만 전쟁은 이제부터다. 1998년 블라터 회장이 레나르트 요한손 전 UEFA 회장을 물리치고 세계 축구 수장에 오른 후 FIFA의 운영 실태에 노골적 반감을 드러냈던 UEFA는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블라터 체제와 충돌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본래 사이가 좋지 않긴 했지만, 지금은 심각할 정도로 분열될 가능성이 보인다.

UEFA가 총회를 열어 2018 러시아 월드컵 보이코트 문제를 다루겠다고 할 정도다. '축구 종가'로서 UEFA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잉글랜드 여론은 특히 심각할 정도로 좋지 않다. 2018 월드컵 개최국 선정 당시 참패를 당하며 러시아에 개최권을 넘겨준 후 FIFA를 바라보는 잉글랜드 여론은 매우 험악한 상황인데, 블라터 회장이 5선에 성공하자마자 월드컵 본선 보이코트하자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잉글랜드 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도 같은 목소리를 내는 상황이다.

믿는 구석이 있다. 유럽은 세계 축구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그야말로 '축구의 본향'이다. UEFA가 주관하는 대회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은 FIFA 월드컵 부럽지 않을 정도로 풍족한데다 시스템도 대단히 체계적이다. 유로는 월드컵과 비교해 빠지지 않는 메이저 대회다. 섣부른 상상일 수 있으나, 보이코트한다는 가정 하에 2018 러시아 월드컵 때 유로가 동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흥행성과 주목도에 있어서 월드컵에 못잖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될 경우 유럽은 세계 축구계에서 고립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에서 블라터 회장이 승리한 이유는 축구 강국과 축구 약소국, 경제적 강국과 빈국의 양극화 현상을 절묘하게 자극했기 때문이다. 축구 실력 자체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빼어난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선도적 위치에 자리하는 유럽이지만, 이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주장은 타 대륙에서 바라보기에는 '축구 귀족'의 공허한 외침일 뿐이었다. 게다가 블라터 회장의 수하에는 남미라는 또 다른 거목이 자리하고 있다. UEFA가 블라터 회장의 치세를 무너뜨릴려면 타 대륙을 품는 수완이 필요하다. 명분으로 블라터를 공격해도, 블라터의 죄보다 돈이 더 눈에 들어오는 타 대륙에게는 의미없는 주장일 뿐이다.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월드컵 보이코트라는 초강경 카드를 꺼내들었다지만, 기실 54개 가맹 협회의 뜻이 과연 하나로 모일지는 미지수라는 점이다. 당장 존 델라니 아일랜드 축구협회(FAI) 사무총장은 "아일랜드는 월드컵 불참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뜻을 내비쳐 선거 직후 UEFA의 월드컵 보이코트 움직임이 현실화되려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UEFA에서도 월드컵을 밥먹듯이 나가는 강국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국가도 있을 것이다. UEFA 내에서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상황이라 '블라터 타도'라는 기치 아래 뜻이 하나로 모이는 게 미셸 플라티니 UEFA 회장의 마음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 초강경 카드도 공허한 외침이 될 공산이 크다는 뜻이다.

선거는 끝났지만 반블래터 진영의 본진으로 꼽히는 UEFA의 움직임은 분명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거가 끝났어도 블라터 회장의 체제는 미국 정부의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만큼은 매우 혼란스러울 것인 만큼 이들이 내는 목소리는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초대형 스캔들 직후 벌어진 FIFA 회장 선거, 그리고 하늘을 찌르는 UEFA의 불만. 축구계는 한동안 혼돈의 정국을 피할 수 없을 것같다. 과연 이들의 반목은 어떤 결말로 이어질까?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사진=ⓒgettyImages멀티비츠(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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