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부검실, 죽음의 사연 읽어내는 '제3의 눈'

2015. 5. 3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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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하리하라 눈을 보다

(19) 국과수 부검현장(하)

그렇게 한동안을 서늘한 부검실에서 상념에 잠겨 있다가 다시 두 겹의 문을 지나 밖으로 나왔다. 형광등 달린 지붕 대신 보이는 눈에 들어오는 파란 하늘이 낯설었다. 문밖에서는 공기조차 살아 숨쉬는 듯 파란 5월의 하루가 흘러가고 있었다. 단지 두 개의 문으로 나누어진 안과 밖의 시간은 전혀 다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현재를 살아간다.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한 시간은 멈추거나 되감는 법이 없었기에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찰나를 느끼며 살아가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단 하나, 예외가 있다면 그건 바로 죽은 자인 것이다. 죽음 이후에도 인간의 시간은 어긋난다. 물리적 육체는 여전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모해가지만, 그의 인간으로서의 삶의 시간은 죽음의 순간에 영원히 고정된다. 익숙해서 낯선 느낌은 거기서 왔다.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기에 죽음 그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꼭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며, 더군다나 이곳에서 자신을 보아주길 기다리는 주검들은 하나같이 모두 '부자연스러운' 죽음의 사연들을 간직한 채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억지스러운 죽음 이후 어긋나버린 육체와 삶의 시간의 괴리를 추적해 무엇이 이를 어긋나게 했는지 알아내기 위한 노력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첩보영화의 클리셰는 어떻게 가능한가

철학자들은 존재와 인식에 대해서 다양한 관점들을 제시하지만, 어쨌든 직관적으로 보기엔 일반적인 사물은 나와 따로 떨어져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익숙하다. 내가 지금 아무리 딸기가 먹고 싶다고 해도 눈앞에 있는 사과가 딸기로 보이진 않으니까. 그렇게 세상은 내 눈에 비치고 보여진다. 하지만 망막 위를 흘러가는 빛의 입자들이 의미 있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보는' 행위가 필요하다. 매일 걷는 집 앞 거리 가로수에서 초록색 잎사귀 사이로 튀어나온 초록색 송이들이 눈에 띈다. 자세히 보니 송알송알 맺힌 듯 잔뜩 피어난 은행꽃이다. 이렇게 잔뜩 핀 것을 보니 어제도 그제도 있었을 성싶은데 왜 난 의식하지 못했을까. 또한 존재하는 것을 의식하는 것조차도 부족한 때가 있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먹구름이 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지만, 아이들은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하늘이 보여주는 신호를 읽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는 것은 눈이 물리적으로 활동하고 있음을 뜻하며, 의식하는 것은 뇌의 인식적 기능이 제대로 수행되고 있음을 뜻한다. 나아가 이들이 가진 의미를 읽어내는 것은 뇌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현재의 증거를 바탕 삼아 미래를 예측하는, 고차원적인 사고를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읽어내는 것이 단순히 보는 것보다 더 나아간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어쨌든 읽어내기 위해서는 일단은 볼 수 있어야 한다. 한 치 앞도 구별할 수조차 없는 어둠 속에서 상대의 표정을 읽어낼 수는 없다.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것은 어둠 속에서 상대를 읽어내는 것과 비슷하다. 이미 사건은 흘러간 과거가 되었고, 피해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사는 동물들이 모두 볼 수 없는 건 아니듯이-박쥐는 빛이 아니라 초음파로 세상을 '본다'- 사람에게는 어둠 속에서 볼 수 있는 제3의 눈을 만들 능력이 있다. 부검실을 나와 찾아간 국과수 내 또다른 공간에서 그런 눈을 만날 수 있었다. 인간이 지닌 생물학적, 일시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낸 물리적이고, 연속적이며, 수학적인 눈을.

평소에는 한산했던 건물이 오늘은 안팎으로 분주하다. 오늘 이곳에서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이 회의에 참석하는 이들은 모두 각 국가에서 요직을 맡고 있는 인물들이기에 경비는 오싹할 정도로 삼엄하다. 건물 주변에는 검은 옷을 입고 조용하지만 민첩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분주하고, 건물 입구마다 금속 탐지기와 레이저 스캐너가 설치되어 있다. 시간이 다가오자 창문이 검게 코팅된 방탄차량들이 속속 건물 입구에 들어선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크고 육중해 보이는 자동차의 뒷문이 열리고 차량의 주인이 몸을 드러낸 순간, 어디선가 총탄이 날아와 그의 가슴팍을 뚫고 지나간다. 그리고 이어지는 몇 발의 총성. 순식간에 건물 주변은 아수라장이 된다. 분명 총탄은 날아들었지만, 정작 이를 발사한 사람은 보이지 않자 사람들은 더더욱 패닉 상태에 빠져든다. 순간, 차량 뒤에서 제정신을 유지하고 상황을 살피던 유난히 날카로운 눈매의 검은 옷의 남자가 어딘가를 향해 총을 발사한다. 그의 총구를 떠난 총알은 그가 조준한 곳으로 정확히 날아갔고, 그 총알이 움직임을 멈추자 어디선가 날아오던 의문의 총탄들도 더 이상 날아오지 않았다. 날카로운 눈매의 사나이가 쏜 총탄에 살인자가 죽었기 때문이었다.

첩보영화의 흔한 클리셰다. 몰래 숨어서 조준사격을 하여 사람들의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암살자가 등장하고, 하필이면 주인공이 엄청난 시력의 소유자여서 총알의 움직임을 간파당하고 역으로 사살당하는 장면 말이다. 이는 영상으로는 너무나 익숙하게 접해서 충분히 가능할 것도 같지만, 음속보다도 빠른 총알의 속도로 인해, 현실에서는 허공에 총알이 날아오는 궤적 따위가 그려지는 법이 없다는 것을 고려해 본다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이 만들어낸 눈까지도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3차원의 이미지와 수학적 수치를 동시에 찍을 수 있는 적외선 파노라마 스캐너로 본다면, 총탄이 날아오는 방향과 각도를 계산해 암살자의 위치를 추적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헬리캠, 적외선 파노라마 스캐너…부검실을 나와 또 다른 공간에서인간의 생물학적 한계 극복하는물리적이고 연속적이며 수학적인제3의 눈들을 만날 수 있었다거실바닥에 아기처럼 웅크린 채빨간 액체 흘리고 누운 젊은 여성범죄현장 사진만 보면 머리 맞아살해된 걸로 생각할 수 있지만보는 것과 읽어내는 것은 다르다

'이 사진에서 중요한 게 무엇입니까?'

우리는 모두 물리적 공간 안에 살고 있기에 죽은 이들 역시도 특정한 공간, 즉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다. 시신은 이동이 가능하므로 부검실로 옮겨져 직접 조사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사건 현장'을 통째로 옮겨오는 건 어렵다. 하지만 주검이 보여주는 신호들을 제대로 읽어내려면 그가 발견된 현장 속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했는지를 보아야 할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시신의 머리에 치명적인 상처가 발견된 경우, 그것이 발견된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살펴봐야 한다. 시신이 부드러운 모래밭에서 발견되었다면 머리의 상처는 인위적인 행위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미끄럽고 뾰족한 바위들이 가득한 해변에서 발견되었다면 머리의 상처는 단순히 넘어지면서 부딪친 실수의 결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실험실은 바로 그런 현장을 보는 눈들이 가득 들어찬 곳이었다. 공중에서 전체적인 지형지물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는 헬리캠과 땅속이나 건물 벽 안쪽에 감추어진 주검 등을 찾아내는 지하 레이저 스캐너, 사건 현장을 상하뿐 아니라 전후좌우 360°로 스캔해서 3차원으로 보여주는 적외선 파노라마 스캐너 등이 현장을 보여주는 눈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특히 적외선 파노라마 스캐너의 경우, 단지 현장의 사진을 찍을 뿐 아니라 현장에 존재하던 각 구조물의 높이와 길이, 가구의 모서리와 문이 열린 각도 등도 모두 수치로 변환되어 입력되므로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수학적 수치도 볼 수 있게 해준다. 즉, 현장의 사진에 구체적이고 기하학적인 수치를 더해주어 또 다른 차원의 공간을 바라보는 눈이 되어 주는 것이다.

이런 기계의 눈을 적절하게 이용하게 되면,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시간을 고정하여 현재화시키고, 현장에 있던 피해자와 가해자의 개인적 시선을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시각적 영상으로 확장시키는 것도 가능해진다. 화면이 밝아지면 어렴풋이 보이던 것들이 또렷해지는 것처럼 눈이 밝아지면 분명 볼 수 있는 것이 늘어나기에 분명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또렷하게 보인다고, 그것이 무엇인지 저절로 알게 되는 건 아닌 것처럼 결국 사건 현장에 숨겨진 진실은 인간이 읽어내야 할 몫인 셈이다.

"이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보이는 것과 읽어내는 것의 차이점을 찾기 위해 법의학자인 박의우 건국대 의대 교수의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였다. 그는 불쑥 사진 한 장을 내밀며 이렇게 물어왔다. 영문도 모른 채 눈앞의 사진을 보았다. 얼핏 젊은 여성이 넓은 거실 바닥에 누워 있는 모습이 보였다. 조금 더 자세히 보자, 또 다른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여자는 마치 갓난아이처럼 팔다리를 구부리고 잔뜩 웅크린 채 등을 대고 누워 있었고, 머리 근처엔 검붉은 얼룩이 넓게 퍼져 있었다. 한눈에도 이건 범죄 현장 사진이고, 저 여성은 안타까운 희생자임이 분명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진을 보여주면 이 여성이 머리를 맞아서 살해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확신할 수 없습니다. 머리를 누군가가 때렸는지, 사고로 다친 것인지는 사진만으로는 알 수 없고, 저 얼룩이 피인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피일 수도 있지만, 그저 우연히 그 자리에 떨어진 색이 짙은 다른 액체일 수도 있지요. 또한 머리를 다쳐서 피를 흘린 것일 수도 있지만, 머리에 상처가 없어도 사망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코와 입으로 피처럼 보이는 혈성 분비물이 흘러나오기도 하니 이 역시도 직접 확인해 보기 전엔 단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습니다. 이 사진의 여성은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게 아니며, 사망 이후 상당 시간 매우 좁은 곳에 방치되어 있다가 이곳으로 옮겨진 것만은 확실합니다."

사람이 사망한 직후에는 전신이 이완되어 축 늘어지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사후경직이 일어나 그 모습 그대로 굳게 된다. 따라서 이 피해자처럼 팔다리를 웅크린 자세로 누워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죽음 이후 사후경직이 일어나는 기간 동안 팔다리를 구부릴 수밖에 없는 좁은 곳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발견된 장소는 넓은 거실 바닥이니 그는 여기서 사망한 것이 아니라, 사망 이후 옮겨진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추악한 진실 앞에서 눈을 돌리지 않기

"사람들은 눈에 띄는 것, 혹은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고 자신이 본 것을 진실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많은 것들 중에 어떤 것이 정말로 중요한 것이며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경험과 지식이 모두 필요하지요." 보는 것은 연습이 필요 없겠지만, 읽어내는 것은 분명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법의학과 법과학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과는 보이는 것을 통해 진실을 읽어내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이 비단 현장에서 수집된 증거가 보여주는 것을 읽어내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그럴듯하게 덮어버린 포장을 거둬내고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는 높은 확률로 감춰진 진실이 추악한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일상처럼 무심한 장면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거짓된 의도 뒤에 감춰진 잔인한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이들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까.

흥미롭게도 인터뷰 도중에 만난 두 법의학자의 시선은 약간 달랐다. 그중 한 분은 추악한 진실을 마주하며 반복해서 겪은 극심한 정신적 피로감에서 사람에 대한 불신이 늘었다고 말했다. 소중한 이를 잃고 서럽게 목 놓아 울던 이의 눈물이 사실은 가증스러운 악어의 눈물이었고, 한사코 슬픔을 삭이면서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던 의연함이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한사코 막기 위한 가식적인 연기였던 사례를 여러번 마주하면서 생겨난 일종의 마음의 직업병이었다. 또 다른 법의학자는 끊임없이 찾아오는 허무함에 마음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시선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젊었고, 건강했으며, 앞날이 창창했던 이들이 일순간에 차가운 시신으로 변모하여 끊임없이 부검대를 거쳐 가는 일들을 매일같이 접하다 보면 인생무상이 무엇인지가 몸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면서 말이다.

보는 것과 읽어내는 것은 다르다. 그저 바라보는 것보다 보이는 것을 통해 진실을 읽어내는 것이 더 어렵다. 하지만 정말로 어려운 건 보이는 것보다 추악한 진실을 계속해서 접하면서도 그 진실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이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은희 과학 작가

▶ 하리하라

본명 이은희. 생물학을 전공해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나, 우연히 인터넷 블로그에 썼던 글들이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등 책으로 묶여 나오면서 과학언론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현재는 과학작가이자 강연자로 살고 있다. '하리하라'라는 인터넷 아이디를 필명으로, 세상에 퍼져 있는 과학에 대한 선입견과 오해를 걷어내는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한겨레> 토요판에서 격주로 '인간의 눈'과 본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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