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방송 콘텐츠가 희생양? 공짜 마케팅은 '공멸' 지름길

유성재 기자 2015. 5. 30.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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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 골목의 담벼락이나 전신주 같은 곳을 보면 이런 전단들이 붙어 있는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이런 광고들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집 전화'나 '초고속 인터넷' 등으로 검색을 해도 손쉽게 볼 수 있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넘쳐나는 광고 가운데 하나입니다.

돌이켜보면 초고속 인터넷이 생활 필수품이 된 것도 벌써 10여 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선(線)을 통해 집으로 들어온 인터넷이 집 안에서는 '와이파이 공유기'를 통해 무선으로 떠다니게 됐다는 게 그나마 변화라면 변화라고 하겠습니다. 집에 인터넷 주소(IP) 하나씩은 당연히 얹고 사는 시대가 되면서, 전화기도 TV도 그 흐름에 따라 모두 변했습니다.

초고속 인터넷을 판매하는 통신 사업자와 케이블 망 사업자들은 이런 추세에 맞춰 인터넷과 IP전화, 디지털 TV를 하나의 상품으로 묶었습니다. 이른바 '결합상품'의 탄생입니다. 인터넷은 A사, TV는 B사 하는 식으로 따로 따로 가입하는 것보다 한 회사에서 TV와 인터넷, 그리고 집전화까지 하면 할인을 많이 받습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경품도 쏠쏠하게 챙깁니다. 이동전화와 달리 약정 기간이 대개 3년이라 가입 기간도 긴 편입니다. 그러니 사업자 입장에서는 번호 이동으로 진흙탕인 이동전화 시장에 비해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합상품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온갖 꼼수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보신 전단들이 대표적입니다.

가입자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은품의 액수를 확인할 수 없는데도 '현금 사은품 전국 최고가'라고 광고하는 것은 차라리 애교에 속합니다. 물론 이 광고도 현금을 준다는 건지 사은품, 즉 물건을 전국 최고로 준다는 건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무슨 기준에서 전국 1위인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이것만 해도 실소가 터져나오는데 아래 '표'는 좀 심각합니다. 가입하는 상품에 따라 현금을 주는데, 최대지원에서 만 원부터 3만 원까지 더 준다고 합니다. 일단 광고만으로는 최대지원이 얼마인지 알 수 없는데 거기에 현금을 더 얹어 준다고요? 엄연한 가이드라인 위반입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어제(28일) 전체회의에서 이런 방송통신 결합상품의 허위 과장광고에 대한 제재안을 의결했습니다.

(▶ "결합 상품 가입하면 방송 공짜"…허위·과장광고 적발)

방통위는 특히 이런 허위 또는 과장광고들 가운데 방송 서비스를 '공짜'로 광고하는 일부 사업자들의 행태에 주목했습니다. 사례로 보면 이런 것들입니다.

제휴카드를 사용하면 인터넷과 TV가 무료라고 광고하고 있습니다. TV는 디지털 방송 177개 채널이 모두 무료라는데 여기에 인터넷까지 무료면 대체 요금은 어디로 간다는 뜻일까요? '지금도 요금 내고 사용하십니까?' 라며 유혹하는데, 아무리 봐도 공짜로 인터넷 깔아주고 TV 나오게 해 주는 자선사업을 하는 곳 같지가 않습니다.

결합상품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인터넷과 IP전화, 그리고 디지털 TV로 구성돼 있습니다. 통신사의 경우는 TV가 IPTV고, 케이블 사업자의 경우 디지털 케이블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각각의 서비스에 원가와 이윤을 감안한 적정 가격이 매겨져 있고, 세 개(최근에는 이동전화까지 결합하는 추세입니다만)를 모두 이용하려는 가입자에게 가이드라인 이내에서의 할인을 해 주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할인을 많이 해 주면 가입자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죠.

그러나 문제는 어느 한 상품의 가격이 아예 '무료'라고 하면서 일종의 '끼워 팔기'를 버젓이 광고하고 있다는 겁니다. 사업자가 제공하는 할인을 모두 감안할 때 가입자는 제공받는 서비스 가운데 어느 한 가지가 '공짜'로 느껴지는 효과를 보고 있더라도, 실제의 서비스 가격은 공짜일 수가 없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데도 공공연히 '헐값'을 강조합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제재안을 의결한 어제 전체회의의 뒷부분에 고삼석 상임위원은 이런 발언을 했습니다.

"방송상품의 무료, 공짜마케팅의 경우 이동통신사 입장에서는 주력인 모바일, 또는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의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하는 것입니다. 또 MSO(대형 케이블TV 사업자)의 경우는 이동통신사에 대항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방송상품과 결합상품을 만듭니다. 결국 핵심은 방송 서비스라는 얘기고, 공짜 마케팅은 콘텐츠를 희생하는 토대 위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이런 행태가 방치될 경우 방송과 통신이 공멸합니다. 저는 이런 마케팅을 한 마디로 '자해적 수준'의 마케팅이라고 단정합니다. 반드시 문제점을 파악해서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유선 무선을 떠나 모든 사업자들이 콘텐츠 사업에 나선 상황에서, 정작 일선에서의 마케팅 수단으로 콘텐츠를 희생양으로 삼아 '자해 소동'을 벌인다면 그 결과는 '공멸'에 다름 아닙니다. 거기에는 '관행'은 물론 , '희생'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동통신사, 케이블 TV 사업자 모두 이번 제재안의 깊은 뜻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유성재 기자 ven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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