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동아일보 대량 해고' 진실 외면한 판결

2015. 5. 30.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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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정희 정권 압력 때문이라 볼 수 없다"…

"정권요구 굴복 증거 불충분" 밝혀

과거사위 결정 뒤집고 박정희 정권에 '면죄부'

동아투위 "만인의 상식 번복" 반발

해직기자 국가상대 손배소 영향 줄듯

대법원이 박정희 정권 시절 <동아일보> 기자 대량 해직 사태에 대해 '정권의 압력을 받아 기자들을 해고했다'는 과거사위원회 결정을 증거 부족을 이유로 취소시켰다. '증거주의'를 내세워 역사적·상식적 판단과 평가를 부인한 셈으로, 현 정부 들어 과거사 피해자들이 낸 소송에서 박정희 정권의 불법행위에 잇따라 면죄부를 준 것과 궤를 같이하는 판결이다.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29일 동아일보가 행정자치부를 상대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결정을 일부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과거사위가 조사 과정에서 의견 제출 기회를 제공했다는 자료가 없는 점을 보면 동아일보에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고, 정권의 요구에 굴복해 기자들을 해직했다는 인과관계도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중앙정보부는 1974년 12월 기업들에 압력을 넣어 동아일보와의 광고계약을 취소시켰고, 이 여파로 백지광고가 실렸다. 동아일보는 이듬해 3월 경영 악화를 이유로 기자 18명을 해고했다. 기자들은 "회사가 정권에 굴복했다"며 농성을 했고, 116명이 추가로 해임되거나 무기정직에 처해졌다.

과거사위는 2008년 10월 "박정희 정권이 공권력을 행사해 언론탄압을 했으므로 국가는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피해 회복에 나서야 한다"며 진실규명 결정을 했다. 동아일보에도 "유신정권의 요구에 굴복해, 언론자유수호 활동을 한 기자들을 해고한 데 대해 사과하라"고 권고했다. 동아일보는 이에 불복해 2009년 3월 진실규명 결정 취소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은 애초 법원의 심판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됐다가, 대법원이 "소송 대상이 된다"고 판단해 새로 재판이 시작됐다. 그사이 2013년 5월에 '과거사위의 조사보고서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1·2심 재판부는 "과거사위가 구체적 증거에 기초한 게 아니라, 당시의 시대적 상황 내지 역사적 흐름 등에 대한 추측 내지 추론에 기초해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며 동아일보의 손을 들어줬다. 과거사위는 당시 △이동욱 주필이 '1차 해임이 광고 탄압 때문에 이뤄졌다'는 취지로 발언한 점 △이환희 <문화방송>(MBC) 사장이 국제언론인협회 총회에서 동아일보 사태와 관련해 당국과 동아일보사가 접촉하고 있다고 연설한 점 △광고 탄압 사건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중앙정보부 직원이 1차 해임 이후 동아일보 쪽과 접촉한 사실 등을 근거로 결정했다. 하지만 1·2심 재판부는 1차 해임 전에 동아일보가 중정 직원과 접촉한 증거가 없고, 이환희 사장의 발언의 구체성이 떨어지며, 이 주필의 발언 역시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판결에 대해 김종철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은 "과거사위의 전문 조사관이 2년간 조사·수집한 증거는 단순한 정황증거로 볼 게 아니다. 당시 수십만명이 격려 모금을 하고 여러 외신이 보도한 내용이 모두 증거다. 동아일보가 정권에 굴복해 언론인들을 해직한 것은 40년간 이어진 만인의 상식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사법부가 박정희 시대에 대한 평가를 뒤집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은 6년 만에 마무리됐지만, 동아일보 해직기자 14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은 진행 중이다. 이번 판결은 여기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법원은 <조선일보> 전 사장 방응모와 <동아일보> 설립자 김성수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해 두 신문 쪽이 낸 소송을 5년 이상 끌고 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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