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계약서 요구했는데, 해고통보 돌아왔다"

박현광 입력 2015. 5. 2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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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 기숙사 사감 채용 두고 '논란'.. 학교 측 "상시근로 채용은 무리"

[오마이뉴스 박현광 기자]

 성공회대 대학생 허선회씨가 붙인 대자보.
ⓒ 박현광
지난 5일 대자보 한 장이 성공회대 기숙사 건물 2층에 붙었다. 대자보에는 학교 측이 기숙사 사감에게 임금을 주지 않고 노동착취를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첫 출근부터 '근로계약서' 요구, 돌아온 것은...

성공회대 총무처는 지난 1월 19일 학교 누리집에 '학생 생활관 대학원생 관리자 선발'이라는 공고를 올리면서 1인실 생활관을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성공회대 사회학과 대학원생인 허선회씨는 2월 5일 '관리직'에 지원했고, 2월 17일 면접을 거쳐 선발됐다.

허씨는 1년간 일하기로 구두 계약했지만, 근로계약서는 쓰지 않았다. 허씨는 2월 28일 사감실에 첫 출근하면서부터 지속적으로 기숙사 행정실장에게 근로계약서를 요구했다. 행정실장은 허선회씨 이전에 학생들에게 '사감'으로 불리던 총무처 직원이다. 그러나 행정실장은 허씨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면서 근로계약서 작성을 미뤘다. 이후 4월 13일 허씨에게 임금이 명시되지 않은 근로계약서를 내밀었다.

허씨는 이에 반발해 4월 16일 기숙사 관장인 총무처장을 찾아갔다. 성공회대 총무처장은 허씨에게 '4월 안으로 새로운 근로계약서를 제시할 테니 기다려달라'고 답했다. 그러나 허씨와 의견이 조율되지 않자 총무처장은 4월 24일 허씨에게 '5월 1일부로 근로 의무 없음'을 알려왔다. 해고 통지였다.

허씨는 4월 30일 총무처장에게 이메일을 보내 '근로 계약 파기 사유'를 알려달라고 요청했고 5월 4일 학교로부터 이메일 답변을 받았다. 이메일에는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라는 허선회씨의 요구는 무리한 요구입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근로계약서 요구했을 뿐인데..."

 성공회대 기숙사 전경
ⓒ 박현광
허선회씨는 딱 잘라 말한다.

"나는 '직원'이라는 단어조차 입 밖으로 꺼낸 적 없어요. 나는 그저 내가 기존에 일하던 시간을 합법화해달라는 것일 뿐이에요. 그 형태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파트타임이든…. 그건 내가 신경 쓰고 싶지 않아요." 

허선회씨는 2월 28일부터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를 해왔다. 근무 시간 이외 시간에도 사감실의 전화를 허씨의 개인 휴대전화에 연결해 쉬는 동안에도 민원을 받아야 했다. 심지어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저는 24시간 일했어요. 학생들이 새벽에 기숙사 카드키를 분실했다고 방문을 두드리기도 했으니까요."

허씨는 학교 측 행정처리에 문제를 제기했다.

"학교는 제 노동을 기숙사비 면제해주는 것으로 대신하려고 했어요. 이제 와서 제 근로를 합법화하려면 4대 보험도 들어가고 '정규직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걸 안 거예요. 그래서 절 정규직을 요구하는 사람으로 몰아가고 있어요. 이럴 거면 애초에 절 쓰지 말았어야죠."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은 "임금을 현물로 지급하는 건 불법이다, 임금 일부를 현물로 지급하는 게 허용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노동자가 동의할 때에 한에서다"라고 설명했다.

"실수는 인정... 하지만, 상시근로 채용은 무리"

기자는 5월 11일 성공회대 총무처장과 총무팀장에게 질문할 기회를 얻었다. 총무처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처음부터 노동착취를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어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부분은 학교의 실수로 인정합니다. 지금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겠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학교는 (학교 형편상) 오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파트타임으로 근로 계약을 하겠다는 것이고, 허선회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상시 근로로 고용해달라는 거죠. 학교는 애초에 직원을 선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대학원생 조교 정도를 선발하려고 했어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하는, 직원에 준하는 상시근로자를 채용할 형편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총무팀은 왜 처음부터 상시 근무를 지시했을까. 총무팀장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한 건 허선회씨 본인의 선택이었을 뿐입니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근무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시간 나실 때 와서 편하게 일하라는 의도였습니다. (사감실에) 와서 논문도 쓰고 하면서…."

이같은 총무팀의 입장에 허선회씨는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물론 총무처장과 총무팀장이 근로 시간을 지시하지는 않았죠. 하지만 제 위에 상사인 행정실장이 구체적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하라'고 요구했어요. 사감실 전화를 제 휴대전화로 돌려놓으라고 지시한 것도 행정실장이었어요. 자기도 그렇게 근무했다면서."

하지만 기숙사 행정실장의 이야기는 허씨의 이야기와 결이 달랐다. 그는 29일 기자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답했다.

"저는 근무 시간을 지시한 적이 없습니다. 허씨는 대학원생입니다. 중간에 수업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에게 근무 시간을 지정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물론 야간에 기숙사 전화를 개인 휴대전화에 돌려놓으라고 말한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며칠 돌려서 받더니 밤에 전화 받는 게 짜증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제 전화로 돌렸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디록 전화를 착신해놓고 있습니다."

허씨와 행정실장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니, 4월 16일까지는 허씨의 전화로, 그 이후부터는 행정실장의 전화로 기숙사 전화를 돌려놨다.

좁혀지지 않는 입장 차이... 세 가지 의문점

학교는 정말 처음부터 '노동착취'를 의도하지 않았을까? 이 경우 세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첫째, 학교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것을 몰랐나. 둘째, 학교는 허선회씨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했다는 것을 몰랐나. 셋째, 학교는 허선회씨가 근로계약서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나.

총무팀장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실수를 인정한다"라면서도 허씨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했던 것과 근로계약서를 요구했던 것에 대해서는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행정실장이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총무처가 이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행정실장의 보고가 없었다 하더라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성공회대 총무처장은 기숙사 오리엔테이션 당시 허씨를 학생들에게 '사감'으로 소개했을 뿐더러, 사감실과 총무처 간 거리는 매우 가깝다. 기숙사생들도 허씨를 새로 온 사감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미뤄봤을 때, 총무처가 허씨의 상시근로를 몰랐다고 보기는 어렵다.

성공회대, 문제 해결 의지 있나 없나

허선회씨가 대자보를 붙인 지 3주가량 지났다. 하지만 양 측의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허씨는 "이미 감정이 상할 대로 상했다"라면서 입장을 굽힐 뜻이 없음을 밝혔고, 사감실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성공회대 총무처는 "허선회씨는 학생 신분이기 때문에" "학교 사정이 어렵기 때문에" "정규직 아닌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려면 노동조합의 승인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등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허씨가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임을 전했다. 지난 11일 총무처장은 1인시위를 하고 있는 허선회씨를 내쫓았다.

이번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성공회대 기숙사 학생들이다. 허선회씨와 총무처가 타결점을 찾지 못하는 동안, 기숙사 학생들은 방치됐다. 지난 1일부터 10일까지 열흘 동안 기숙사를 관리하는 이는 없었다. 지난 11일부터는 총무처 직원들이 순환근무를 했고, 18일부터 총무처 직원 중 한 명이 배치됐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성공회대 학내 언론협동조합 창간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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