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선 자신하는 블라터 회장, 이유는 골 프로젝트

김태석 2015. 5. 2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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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

미국 정부의 FIFA(국제축구연맹) 고위 관계자 체포 사건에도 불구하고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은 마이 웨이다. 5선 여부가 갈리는 선거를 앞두고도 자신만만하다. 보통 이 정도로 잡음이 터지면 낙마하는 게 정상인데도 외신은 블라터 회장의 당선 여부가 유력하다고 한다. 이상한 선거판라고 느낄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유가 있다.

오는 30일 새벽(한국 시각)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리는 FIFA 총회를 통해 시행될 FIFA 회장 선거는 전 세계 총 209개 가맹 축구협회가 각 1표씩 투표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1차 투표에서 140표 이상을 받으면 바로 당선이며, 140표를 넘기는 후보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2차 투표를 벌여 과반수를 넘기는 후보가 차기 축구 대통령에 오른다. 그런데 언뜻 민주적으로 보이는 이 FIFA 회장 선거 제도가 도리어 블라터 회장의 5선 가능성을 드높이고 있다.

'축구 종가' 잉글랜드라서 2표를 가지는 것도 아니며, 세계 축구 본향인 UEFA(유럽축구연맹)나 유럽과 함께 양대 산맥인 CONMEBOL(남미축구연맹) 가맹국이라고 해서 0.5표 더 주는 것도 아니다. FIFA 랭킹 1위 독일이든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카리브해 섬나라 앵귈라나 주어진 표는 딱 한 장이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처럼 불특정 다수가 대상이 아니라 많은 수라 할 수 없는 FIFA 가맹 협회를 대상으로 선거를 진행하는 만큼, 특정 대륙과 세력을 규합하는 데만 성공하면 선거전은 뜻대로 이뤄갈 수 있다.

블라터 회장은 이 틈을 파고들어 지금껏 4선에 성공했다. 전통적으로 자신에게 누차 반기를 든 유럽은 버려도 될 텃밭이었다. 209개 협회 중 UEFA 소속 협회는 54개에 불과하다. 산술적으로 계산할 때 블라터 회장은 UEFA 소속 협회를 모두 등져도 연임에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블라터 회장이 유럽 대신 주목한 곳이 바로 남미·아시아·아프리카·북중미·오세아니아였다. 이 중 아프리카는 이삭 하야투 FIFA 수석 부회장이라는 반(反)블라터 세력의 거두 중 하나가 자리하고 있음에도 블라터 회장과 결탁하고 있고, 아시아 역시 같은 대륙의 알리 빈 알 후세인 FIFA 부회장이 블라터 회장의 대항마로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바레인 마나마에서 열린 AFC(아시아축구연맹) 총회를 통해 공식적 지지를 하고 나섰다. 이 커넥션은 생각보다 단단하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블라터 회장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일까? 당연히 '공짜'는 없다. 블라터 회장은 FIFA 수장의 권한으로 '합법적' 루트를 통해 이들에게 막대한 지원을 해 왔다. 이른바 '골 프로젝트(Goal Project)'를 통해 이들의 마음을 단박에 휘어잡았다.

이 골 프로젝트란 제3세계에 자리한 개발 도상국 혹은 축구 후진국의 인프라 확충을 위해 FIFA가 자금 지원을 해 온 것을 말한다. FIFA는 공짜로 천연 잔디 경기장을 건설하고 축구 용품과 각종 코칭 클리닉 등 각종 지원을 해 왔다. 게다가 매년 모든 회원국에 8억 원 안팎의 지원금까지 주고 있다. 이 역시 명목상으로는 대단히 훌륭할 사업임에는 틀림없다. 축구판 복지 정책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골 프로젝트가 축구 강국과 약소국이라는 빈부 격차의 괴리를 절묘하게 파고든 노림수라는 것이다. 잉글랜드·스페인·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소위 세계 축구를 이끌어 가는 리딩 국가들에게 과연 이 골 프로젝트가 의미 있을까? 이들 나라는 이미 충분한 축구 인프라, 두터운 팬층, 축구 산업 규모를 갖추고 있어 FIFA로부터 받는 지원금은 없어도 된다.

하지만 축구 약소국 처지에서는 다르다. 골 프로젝트의 주된 수혜국은 북한·팔레스타인·아프가니스탄·이라크 등 문제 국가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최빈국, 지리적·물리적 여건상 대국이 되기 힘든 카리브해 섬나라 들이다. 이들에게는 골 프로젝트가 자국 축구 발전을 위한 동아줄과 같다. FIFA로부터 받는 지원금이 절실하다.

이 때문에 골 프로젝트가 처음 도입될 당시 유럽 언론은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봤다. 어차피 각 협회마다 표는 1표니, 유럽은 버리고 이들에게 합법적으로 뇌물과 다름없는 표를 줘 표심을 사려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일부에서는 골 프로젝트를 명목 삼아 '검은 돈'이 축구 약소국 축구협회 고위직에게 주어졌을 것이라는 의심까지 했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증명된 건 거의 없다. FIFA는 복지 정책이라며 철저히 일축했고, 축구 약소국은 FIFA의 골 프로젝트를 폄훼하는 유럽의 시선에 매우 불쾌함을 드러냈다. 축구 약소국은 지금껏 블라터 회장을 둘러싼 온갖 추문이 벌어졌을 때 유럽세가 맹공을 퍼부어도 블라터 회장을 철저히 비호하거나 침묵을 지켰다.

미국 정부가 FIFA 고위 관계자를 체포하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를 둘러싼 판세가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인 것도 이 때문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블라터 회장의 5선이 유력하다고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유럽의 아우성이 선거 판세에 크게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AFC는 재차 충성 맹세를 했고, CAF(아프리카축구연맹) 역시 블라터가 확실하게 표밭을 다져 놓았다는 게 정설이다. CONCACAF(북중미축구연맹)가 자리한 북중미 역시 미국·캐나다 등 선진국을 제외하면 대부분 블라터 회장을 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OFC(오세아니아축구연맹)에 속한 각 섬나라 역시 블라터 회장을 지지할 것이 유력하다. 블라터 회장이 이 지저분한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빨리 치르자고 목소리를 내는 데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사진=ⓒgettyImages멀티비츠(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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