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보조금이 털리고 있다] [1] 조리사 자르고 月50만원 보조금 떼먹은 어린이집.. 급식엔 곰팡이
울산 동구 P어린이집의 3~4세 아이 4명이 차례대로 복통을 호소했다. 엄마들은 일교차가 심한 날씨 탓에 감기 기운이 찾아온 것으로 생각했다. 어린이집 급식 반찬에 문제가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지난 2월 해당 어린이집을 그만둔 보육교사 한 명이 원장 몰래 찍은 어린이집 반찬 사진은 충격적이었다. 시금치와 복숭아, 돼지고기 같은 반찬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하얀 곰팡이가 가득했다. 보육교사는 "아이들과 같은 음식을 먹는 교사들도 못 먹겠다고 난리가 났다"고 했다. 어린이집 원장 A(46)씨는 "냉장고에 보관해 놓은 반찬들이었을 뿐 실제 아이들에게 내놓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유령 조리사' 월급 50만원 떼먹으려다…
경찰 수사 결과 원장 A씨는 어린이집 급식을 책임지는 식품 조리사를 고용한 것처럼 구청에 허위 신고하고 6차례에 걸쳐 조리사 월급 300여만원을 빼돌렸다. 무상 보육 정책이 실시된 이후 어린이집은 연령별로 원아 1인당 국고 보조금 30만~40만원을 받는다. 보조금에는 보육교사와 조리사 인건비도 포함돼 있다. 아이 30명을 돌본 이씨 역시 복지부로부터 연간 1억4000여만원이 넘는 보조금을 받았다.
A씨가 당국의 감시를 피한 방법은 간단했다. 조리사 한 명을 실제로 고용한 뒤 한 달 만에 해고했다. 하지만 구청에 조리사를 해고한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다. 서류상으로는 '유령 조리사'가 계속 고용된 것으로 돼 있고 보조금은 계속 지급됐다. 엄마들은 "300만원 떼먹으려다 반찬에는 곰팡이가 피었다" "조리사만 고용했어도 음식 관리가 이 지경까진 안 됐을 것"이라고 분개했다. 원장 A씨는 보육교사 앞으로 나온 후생비를 빼돌려 선물세트를 산 뒤 이를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등 개인적으로 보조금을 빼돌린 사실도 드러났다.
◇3년간 3600여곳에서 보조금 빼먹어
국무총리실 산하 육아정책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어린이집이 매매될 때 권리금을 주고받는 경우가 전체 37%에 이르렀고 원아 한 명당 권리금이 평균 219만원 책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아의 머릿수대로 국고 보조금이 지급되다 보니 수천만원 권리금을 얹어 어린이집을 인수한 원장들은 초기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보조금에 손을 대는 경우도 많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황인자 의원실이 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어린이집 보조금 적발 현황'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12~ 2014) 각종 보조금을 빼돌리다 당국에 적발된 어린이집은 총 3589곳에 달했다. 현재 전국 어린이집은 약 4만3000여곳이다.
아동을 허위 등록하는 수법이 1333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교사를 허위 등록해 운영비와 인건비 명목의 보조금을 빼먹는 수법이 624건이었다. 하지만 당국의 점검률은 67%(2013년)에 그쳤다.
P어린이집을 감시 감독하는 울산 동구청의 경우 구내 어린이집 158곳을 관리하는 직원이 4명이다. P어린이집 역시 최근 2년간 제대로 된 점검을 받은 적이 없던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 동구청 관계자는 "2명씩 조를 나눠 회계 서류들을 살펴보고 있지만 원장들이 마음먹고 보조금을 빼돌리려 하면 잡아낼 수가 없다"고 했다.
울산에서 20년간 어린이집을 운영해 온 A씨는 현재 어린이집을 자진 폐쇄한 상태다. 사건이 터진 후 울산 동구 원아 6400명 중 500여명이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보육교사 860명 중 200명이 이직했다. 폐업 신고하는 어린이집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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