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김연아, "올림픽 金획득 이후 가장 힘들었다"..이유는?

조영준 기자 2015. 5. 28.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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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장충체육관, 조영준 기자] '피겨 여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스포츠 외교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김연아(25)가 선수 생활의 기억과 현재 근황에 대해 털어놓았다.

김연아는 2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삼성 플레이 더 챌린지'에 참석했다. 이 행사는 삼성그룹이 주최하는 캠페인이다. 우리 사회 다양한 계층과 직접 만나 도전의 의미와 중요성을 나누는 자리다.

'삼성 플레이 더 챌린지'에는 김연아 외에 이스라엘 요즈마그룹의 이갈 에를리히 회장 이영희 삼성전자 부사장이 참여했다. 김연아는 에를리히 회장과 이영희 부사장의 강연에 이어 세 번째로 등장했다.

김연아는 강연이 아닌 '토크쇼'에 참여해 선수 생활 시절 자신이 겪은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또한 이를 극복하며 세계 정상에 오른 사연도 공개했다.

윤종신의 사회로 진행된 토크쇼에서 김연아는 "피겨를 처음 접한 것은 7살 때였다. 그때는 아무 것도 모를 때라 피겨가 무엇인지 몰랐다. 그냥 스케이트를 타로 가는 줄 알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 때 나를 가르쳐주신 코치 선생님이 어머니에게 재능이 보이니 선수를 시켜보자고 권유해주셨다. 그렇게 해서 피겨를 시작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김연아는 10대 초반 트리플 5종 점프(토루프 살코 루프 플립 러츠)를 완성했다. 이 부분에 대해 그는 "당시 한국에서는 고난도 점프를 뛰는 선수가 없었다. 나 스스로도 놀랐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연기를 펼친 점에 대해서는 "매 시즌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해 고심하게 된다"고 전했다. 이어 "시니어 무대에 데뷔할 때는 표현력에 자신감이 없었다. 시니어 무대에 처음 탱고로 데뷔를 했는데 어린 나이에 강한 프로그램을 하게 됐다. 데이비드 윌슨이라는 안무가를 만나면서 다양한 캐릭터를 추천받았다"고 설명했다.

김연아는 피겨 선수로 활동하면서 위기였던 순간이 언제였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 질문에 대해 그는 "사춘기 때 부상도 많았고 성장기여서 몸이 많이 변해 힘든 점이 많았다. 스케이트도 발에 잘 맞지 않아 일주일에 몇 번 교체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사춘기 시절과 함께 가장 힘든 시기로 김연아는 골반 부상으로 고생할 때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마치고 곧바로 세계선수권에 출전했을 때를 꼽았다.

김연아는 "골반 근육이 찢어져 한 대회를 포기한 적이 있었다. 그 다음에는 더 큰 대회가 있었는데 한 달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했다. 2주 연습을 하고 나갔는데 그 때도 많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마치고 목표를 이루다보니 동기부여를 할 수 없었다. 대회에 안나가겠다며 울기까지 했다. 그래도 대회는 출전했다"고 밝혔다.

현재 김연아는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와 유니셰프 홍보대사로 일하고 있다. 현재의 근황에 대해서는 "은퇴를 한 뒤 여행다운 여행을 다녀오지 못했다. 계속 일이 있다보니 여전히 바쁘다. 대학원 생활도 하고 있고 선수들도 가르치고 있다. 후배들이 좋은 프로그램을 보여줄 수 있도록 더 도와주고 싶다"고 전했다.

[사진] 김연아 ⓒ 스포티비뉴스 한희재 기자

[영상] 김연아 ⓒ 스포티비뉴스 배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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