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대법원, 국정원 '비밀면접' 항의 받고도 은폐 의혹

박원경 기자 2015. 5. 28. 19: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가정보원의 경력 판사 비밀면접 및 사상 검증 의혹에 대해 대법원은 국정원의 신원조사는 법적 근거가 있는 것이지만, 국정원의 비밀면접은 몰랐다는 게 기본적인 입장입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한 매체와의 통화에서 국정원 직원이 경력 판사 지원자를 대면 접촉한 것은 언론 보도를 보고 처음 알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 대법원, "국정원 면접 몰랐다", "이의제기 한 사람 없었다"

대법원은 또 국정원의 비밀 면접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면 국정원에 이의를 제기한 적이 있느냐는 SBS의 질문에 "현재까지 신원조사 과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던 임용대상자는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국정원의 비밀 면접을 알지도 못 했고, 임용대상자들 중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다만, 대법원은 "만약 대상자들이 신원조사 과정에서 불편사항을 느꼈다고 한다면, 법관임용 절차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국정원에 그러한 사항을 전달하고 협조를 요청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이의 제기했더니 법에 정해진 과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정원 비밀면접에 대해 몰랐고, 이의제기한 사람도 없었다는 대법원의 답변은 SBS 취재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재작년 경력 판사에 지원했다 합격한 한 현직 판사는 "합격자 중에서 국정원 면접을 불쾌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면서, "합격한 후 왜 국정원 면접을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 법원 고위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법에 그런 절차를 거치게끔 되어 있다"고 답했다고 밝혔습니다.

재작년 선발된 또 다른 경력판사도 판사로 임용된 이후 "국정원 신원조사는 법률상 하도록 절차가 규정되어 있어서 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며, 대법원 관계자가 "국정원에서 그 절차를 어떻게 진행하는지에 대해서 법원이 국정원과 협의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의 말은 국정원의 경력 판사 지원자들에 대한 비밀 면접을 몰랐고, 이의를 제기한 사람도 없었다는 대법원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 지난해 '사상검증 의혹'…대법원이 국정원 비밀면접 묵인한 결과

공식적으로는 "몰랐다", "이의제기는 없었다"라고 말하는 대법원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런 문제제기가 있었으니 조치를 취했을 겁니다. 사법부의 구성원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행정기관인 국정원이 면접이라는 형태로 개입해 사법권 독립을 침해했으니, 사법권 독립을 강도 높게 주장해 온 대법원이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니 합격하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판결해야 할 판사 지원자들이 국정원 면접에 불쾌함과 압박감을 느꼈다면, 대법원은 이후 이들이 맡게 될 수도 있는 국정원 관련사건 판결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국정원에 항의하고, 신원조사 방식의 개선을 요구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그러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에도 국정원 직원은 경력 판사 지원자들을 개별 접촉해 대면 면접을 벌였고, 더욱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의견을 묻는 등 '사상 검증'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질문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재작년 대법원이 국정원의 신원조사 방식에 문제제기를 했더라면 지난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결국 대법원이 국정원의 경력 판사 지원자들에 대한 사상 검증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야기했다는 일부의 비판에 대해 할 말이 없게 된 겁니다.

● 사법권 독립은 누가 지켜야 하나?

우리 헌법 제101조는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있다며 사법권 독립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사법부가 사회 유지의 최후 보루이기 때문입니다. 행정부나 입법부에 휘둘리지 말고, 법관이 법률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할 때 사회의 기본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최후의 보루라는 말의 다른 말은 사법부에 많은 권한이 있다는 겁니다. 한 사람 아니, 여러 사람의 인생을 규정하고 판결할 권한을 가지고 있으니 권력자들은 사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픈 유혹에 빠질 수도 있을 겁니다. 결국 헌법에 규정되어 있다고 해도 사법권은 사법부가 나서서 지키지 않으면 그 독립성이 담보되기 어려운 법입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사법권 독립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판사 선발 과정에서 국정원의 개입을 묵인하면서 스스로 사법권 독립을 침해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SBS 취재 결과 국정원 비밀면접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지금까지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고 답해 사실 은폐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신원조사 방식과 관련해서는 고유 권한이라는 국정원의 답변에 화답하듯 '신원조사 방법에 대하여 법원은 관여하거나 간섭할 영역에 있지 않다'고 대법원은 말하고 있습니다.

국정원의 비밀 면접에 대해 경력 판사들의 항의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해 1월 2일. 양승태 대법원장은 시무식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신원조사 방식은 법원이 간섭할 영역이 아니다'고 말하는 대법원의 수장이 불과 1년 전에 한 말입니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사법부 독립의 원칙은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한 가치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중략)……사법권에 대한 공격을 유발할 수 있는 요인을 우리가 먼저 찾아 개선함으로써 사법권 침해의 단초를 제거하여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기존의 관행에 안주하지 말고 모든 것을 국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우리의 업무를 끊임없이 개선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지난해 1월 2일, 양승태 대법원장의 시무식사 중)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