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머릿속 '포르노 현상'..이게 바로 한국사회의 민낯"

2015. 5. 2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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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극단 신세계 새 연극 '그러므로 포르노'

설날을 사흘 앞둔 2015년 2월16일. 극단 신세계의 김수정 연출과 배우 하재성 등 8명이 모였다. 토론주제는 '포르노'. 꽤 진지했다. "우린 사회 문제의 구체적 실체를 몰라. 이걸 알아야만 우린 생각할 수 있어." "우리가 정치 얘기를 하면 정치에 참여한다고 생각하는 건 환각이야. 포르노를 보며 좋아하는 것처럼." "포르노는 '했다'라는 만족감만을 주는 기계적인 것이지. 사고를 단절시키는 것." 이날 토론은 포르노와 한국사회를 짓누르는 억압기제의 유사성에 초점을 맞췄다. 설을 쇤 뒤인 2월22일까지 <심리를 조작하는 사람들>와 프랑스 일간신문 <르몽드> 기사 '한국사회의 증상읽기'를 공부해오자고 약속했다. 공부모임은 5월까지 10여 차례 더 계속됐다. 28일 막을 올린 연극 <그러므로 포르노>는 이렇게 탄생했다. 2015 혜화동1번지 봄 페스티벌의 마지막 작품으로 우리 시대의 어이없는 '포르노 현상'을 폭로하는 블랙코미디다. 이는 연출과 스태프, 배우 10여 명이 머리를 맞대고 공동창작한 결과물이다. 27일 서울 대학로의 한 식당에서 김수정(33) 연출과 배우 이종민(33), 하재성(32), 윤성호(31), 이창현(29), 류선영(28), 박미르(27), 나경호(26)를 만났다.

한국사회 깊이 보는 공부모임 통해연출·스태프·배우 10여명 공동창작미디어, 어이없는 사건도 무분별 확산한국사회 난국 '포르노 중독'과 같아

■ 왜 하필 포르노지?

포르노인데 '포르노적인' 장면이 빠질 수는 없다. 연극에선 영상과 대화 등을 통해 성기 노출, 자위, 체위 묘사가 나온다. 이 장면은 '벌거벗은 지금 여기'의 현실을 보여주는 장치다. 물론 이들이 방점을 찍는 지점은 총체적 난국에 빠진 한국사회다.

이들이 처음부터 생각이 같을 수는 없었다. "처음 포르노란 말을 들었을 땐, 이게 뭔 소리인가 했죠. 그런데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책을 함께 공부하면서 개념들이 조금씩 명확해졌어요."(윤성호)

포르노란 뭔가. 이들은 '포르노 현상'이란 말을 공유했다. 그것은 "어떤 최우선의 목적을 가지고, 서사에 상관없이 어떤 것을 지나치게 길게, 많이, 기계적으로 묘사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들은 그 점을 관객에게 명확하게 전하고 싶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포르노현상'이 시작된다고 봐요. 관객들이 '우리가 지금 접하는 세상이 포르노일지도 몰라'라는 생각의 물꼬를 조금이라도 튼다면 그것만으로 좋겠어요."(나경호)

대중의 머리에 포르노 현상을 주입시키는 도구로 미디어를 지목했다. "지금 우리는 다양한 매체로부터 무분별하게, 빠르게, 계속해서, 수 없이 많은, 어이없는 사건과 현상에 노출당하고 있어요. 마치 포르노처럼 점점 익숙해지고 무뎌지면서 더 강한 자극들에만 반응합니다. 우리는 포르노에 중독된 것과 다를 바 없는데, 문제는 그 포르노를 누가 만들어내는가이죠."(김수정 연출) "3에스(섹스, 스포츠, 스크린)를 누가 틀어주며 왜 보여주느냐는 의문이 스터디를 하면서 명확해졌어요. 바로 매체라는 거죠."(박미르)

물론 연극은 자연스레 매체 뒤의 국가 권력과 국가의 무능함을 지적하는 데로 이어진다.

■ 왜 하필 공동창작이지?

공동창작은 여러 사람이 참여한다. 극단 신세계 단원 모두의 목소리가 골고루 반영돼야 했다. 대화를 하다 보면 '좋은 학교' 나오거나 말 잘하는 사람의 얘기로 기울어지게 십상이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 다른 생각이 만나 때론 미세하게, 때론 큰 그림으로 퍼즐처럼 맞춰졌다.

"전 굳이 나누자면 좌보다 우에 기울어진 사람인데요.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고 내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어요."(이창현) "내가 어리석다는 걸 깨달았어요. 굉장히 부조리한 현실을 당연시했던 것들이 막 보이기 시작하는 거에요. 공동창작을 통해 세상에 대한 시선을 더 깊게 할 수 있었지요."(하재성)

단원들이 내놓은 아이디어들은 실제 채택됐다. "'여자는 이래야 해, 맏이는 이래야 해'라고 우리가 쉽게 받아들이는 것을 지적했는데, 그런 게 세세하게 연극의 양념으로 첨가됐어요."(류선영) "너무 재미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정상위, 후배위 등 섹스 체위를 가지고 토론을 하면 어떨지 제안했더니 받아들여졌어요."(이종민) 다음달 7일까지 서울 대학로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010)8074 7494.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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