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FIFA를 공격했나?

김태석 2015. 5. 2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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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

미국 정부가 지난 27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FIFA 고위 관계자를 급습해 체포한 일은 지난 1주일 동안 전 세계 축구계를 통틀어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구계에서 저마다 거물로 통하는 인물들이 고급 호텔에 머물며 다음의 '한탕'을 계획하고 있을 때, 갑자기 들이닥친 요원들에게 부패 혐의를 뒤집어쓰고 힘없이 끌려가는 상황은 전례가 없던 일이다. 더군다나 오는 30일 새벽(한국시간) 취리히에서 예정된 FIFA 회장 선거를 앞둔 시점이었다. FIFA는 지금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미국은 도대체 왜 FIFA를 공격했을까?

부패 가담자와 혐의는 무엇인가?

<뉴욕 타임즈>를 비롯한 미국 주요 언론들은 27일 "스위스 경찰이 예고 없이 스위스 취리히 바우어 오락 호텔을 급습해 FIFA 고위 관계자들을 체포했다. 체포 혐의는 부패이며, 형사 기소를 위해 미국으로 송환된다"라고 밝혔다. 오는 30일 취리히에서 예정된 FIFA 회장 선거를 앞두고 터진 대형 사건이라는 점에서 전 세계 축구 팬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미 법무부는 이들에게 공갈, 온라인 금융사기, 돈세탁 공모, 탈세, 국외계좌 운영 등 총 47개에 달하는 부패 혐의가 있다고 밝혔으며, 기소 대상자는 FIFA 고위직 9명, 미국과 남미 스포츠마케팅 회사 간부 4명, 뇌물수수 중재자 1명 등 총 14명이다.

체포된 인사들의 면면도 공개됐다. 제프리 웹 OFC(오세아니아축구연맹) 대표 FIFA 부회장, 코스타스 타카스 CONCACAF(북중미축구연맹) 회장, 잭 워너 전 FIFA 부회장, 라파엘 에스퀴벨 CONMEBOL(남미축구연맹) FIFA 집행위원, 니콜라스 레오스 CONMEBOL 회장 등이 장본인이다. FIFA는 이번 체포 사건이 블라터 회장과는 무관하다는 뜻을 밝혔으나, 이들은 공개적으로 이번 FIFA 회장 선거에서 블라터 회장에게 충성을 맹세한 오른팔들이라는 점에서 향후 미국의 수사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주목된다.

이들과 결탁한 스포츠마케팅 대기업 관련자들도 공개됐다. 아르헨티나 스포츠마케팅 회사인 토르네오스 이 콤페텐시아스의 알레한드로 부르사코, 미국 트래픽스포츠 USA 애런 데이비슨 대표 등이 표적이 됐는데 이들은 각급 축구대회에서 마케팅, 중계권을 따내기 위해 1억 5,000만 달러(1,657억 원)이 넘는 거액의 뇌물과 리베이트를 앞서 언급한 FIFA 고위 관계자들에게 건넸거나 전달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전방위적 압박은 이번 체포 사건에도 그치지 않고 있다. 미 연방수사국(FBI)는 취리히에서 진행한 체포 사건과 같은 날 마이애미에 있는 CONCACAF 본부를 압수 수색했다. 미국은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던 FIFA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미국은 도대체 왜 FIFA를 급습했나?

정말 뜬금없이, 그것도 FIFA 회장 선거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FIFA 주요 간부들을 9명이나 체포해버린 미국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벌였을까? 명목은 굉장히 간단하다. 미국 법에는 자국 세금 및 은행 규제 법률에 따라 해외에서 벌어진 뇌물 사건의 주범들을 체포해 자국 내에서 재판받도록 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미국 은행 계좌를 통해 뇌물이 오갈 경우, 당사자들이 해외에 있어도 죄를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꽤 복잡한 사연이 숨어있다는 게 정설이다. 미국 출신 전 FIFA 관련자들의 내부 고발에 의한 사건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블라터 회장은 2018 러시아 월드컵, 2022 카타르 월드컵 선정과 관련해 자신과 FIFA의 부정부패 의혹이 짙어지자 FIFA 윤리위원회에 마이클 가르시아 전 미국 뉴욕 검사를 영입해 이와 관련한 조사를 지시한 바 있다. 기실 "나는 그만큼 깨끗하다"라는 걸 보여주려는 액션에 불과했는데, 가르시아 검사가 정말 철저하게 파헤치면서 문제가 커졌다.

가르시아 검사는 19개월 동안 조사를 벌이며 무려 43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보고서를 제출했고, 이 안에는 그간 FIFA가 저질러 온 온갖 부정부패가 담겨 있다는 추측이 난무했다. 그런데 FIFA는 이 보고서를 단 42페이지로 축소해 외부에 공개했다. 가르시아 검사는 "사실과 결론이 철저히 왜곡됐다"라고 분노를 드러내며 FIFA와 인연을 끊었다. 이 가르시아 검사가 미국으로 돌아와 미 법무부 주요 인사와 접촉해 FIFA의 비리를 고발했다는 설이다.

여기에 미국 출신 척 블레이저 전 CONCACAF 사무총장의 행동도 시선을 끈다. 본래 블라터 회장의 오른팔로 유명했던 블레이저 전 사무총장은 과거 FIFA와 CONCACAF로부터 사기를 통한 부정 재산 축적이라는 이유로 축구계에서 영구 추방당한 인물이다. 미국에서도 세금 문제로 범죄자 리스트에 오른 인물이었고 이번 일로 체포되기에 이르렀는데, 장기간 징역형이 예상되자 이른바 '사법 거래'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FIFA 내부 기밀자료와 녹취록을 미 수사당국에 제공해 이번 취리히 FIFA 고위 관계자 체포 사건에 일등 공신 노릇을 했다고 알려졌다. 한마디로 FIFA 측면에서는 제대로 배신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가르시아 검사의 올바른 내부 고발, 그리고 제대로 '뒤통수'인 블레이저 전 사무총장의 배신에 따라 움직였을까? 그렇진 않아 보인다. 미국이 FIFA를 건드린 가장 큰 이유는 자국 기업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즉 돈 때문이다.

FIFA 공식 스폰서만 해도 4개 대기업(비자카드, 버드와이저, 코카콜라, 맥도날드)이 진출해있는데다, FIFA가 주관하는 남녀 각급 세계 대회 중계권료를 가장 많이 내는 국가 역시 미국이다. 적어도 수천억 달러가 FIFA에 흘러들어가는 상황에서 FIFA 고위 관계자들의 각종 부패 사건이 끊임없이 빚어지고 있다는 건 자국 기업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확실한 미국으로서는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언제고 한번 혼을 내야겠다고 단단히 벼렸을 것이다. FIFA 회장 선거를 눈앞에 둔 절묘한 타이밍에 확실한 물증이 손에 들어왔다. 미국 처지에서는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블라터 회장은 어떻게 될까?

블라터 회장은 일단 모르쇠다. FIFA 공식 견해도 이번 사건이 블라터 회장과는 무관하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이보다 악재일 순 없다.

지금은 마치 2002 한·일 월드컵 직전에 벌어졌던 서울 총회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다. 당시 서울 총회에서 바로 FIFA 회장 선거가 열렸다. 그때 블라터 회장은 FIFA 공식 마케팅사였던 ISL사의 파산과 이와 관련된 부정부패 혐의로 반대파들에게 협공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총회에서는 선거 전 최종 발언에서 발언권을 자신의 최측근들에게만 대부분 부여하는 행위를 펼쳤다. 블라터 회장의 호명에 따라 연단에 선 '오른팔'들은 노골적으로 반대파에 대한 비판을 퍼부으며 "FIFA는 건강하다"라는 메시지를 각국 축구협회 관계자들에게 전달했다. 또한, 거리낌 없이 공개할 수 있다며 각종 회계 문서가 조작됐다는 일부의 주장을 무시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내막을 잘 모르는 각국 축구협회로부터 표를 받아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지저분한 일을 도맡아 한 수족들이 선거 직전 모조리 잘려나갔다. 최소한 13년 전과 같은 일이 이번 FIFA 총회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온갖 추문에도 '오뚝이'처럼 일어섰던 블라터 회장은 이번에도 난국을 타개할 수 있을까?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사진=ⓒgettyImages멀티비츠(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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