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의 루키다이어리](5)골프는 혼자 하는 게 아니더라

김세영 기자 입력 2015. 5. 28. 10:41 수정 2015. 5. 28. 10:4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5살 터울인 (김)종엽 형이 뒤에있어 난 떨리지 않았다. 사진 | 한석규 기자(JNA골프)

시즌 개막전이었던 동부화재 프로미 오픈. 백을 들어주기로 한 친구 하림이가 대회를 앞두고 물었다. "이번 대회 때 주로 어떤 부분을 봐줄까?" "그냥 백이나 잘 들어. 중간에 힘들다고 퍼지지나 말고, 볼이나 잘 찾고…."

그랬다. 골프는 그냥 혼자 잘 치면 되는 줄 알았다. 혼자서도 충분히 거리와 방향을 체크하고, 퍼트 라인도 볼 수 있으니 캐디의 조언이나 그와의 호흡은 필요 없는 줄 알았다. 캐디는 그저 백만 잘 들어주면 되는 줄로 착각했던 거다.

실제로 2부나 3부 투어에서 뛸 때는 그랬다. 정규 투어와 달리 2부 투어에서는 걷지 않고 카트를 탄다. 4명이서 한 명의 공용 캐디를 쓴다. 캐디에게는 그저 몇 번 아이언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는 게 고작이다. 나 혼자서 하는 골프다.

김민호와 캐디로 나선 김종엽씨. 사진 | 한석규 기자(JNA골프)

"오케이, 좋아" 그 한 마디의 힘

지난주 SK텔레콤 오픈을 치르면서 나의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샷을 하기 전 뒤에 있던 캐디가 말하는 "오케이, 좋아" 그 한 마디가 선수에게는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게 됐다.

이번에 나의 백을 멘 사람은 (김)종엽이 형이다. 나보다 5살 많다. 1999년 골프채를 잡고 처음 뉴질랜드로 동계훈련을 떠날 때부터 알고 지냈으니 서로 알고 지낸 지 벌써 16년이다. 나와 함께 투어 프로의 꿈을 키우던 형은 중간에 골프를 그만 두고 한식요리사 자격증을 따는가 하면 실내 연습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지난해 2부 투어를 뛸 때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민호야! 나, 다시 골프 하고 싶다." 지금은 내가 스윙도 봐주면서 함께 연습하는 사이다. 그런 인연으로 이번 대회에서 형이 백을 메게 됐다. 형은 내가 샷을 하려고 셋업 자세를 취하면 뒤에서 봐주고 있다가 "그래 좋아"라고 말한 후 옆으로 빠지고, 샷을 하고 나면 "잘 했어"라고 등을 토닥이며 페어웨이를 함께 걸었다.

그린에서는 퍼트 라인과 자세를 꼼꼼히 체크해 줬다. 단순히 백을 메고, 클럽만 전달해 주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맡은 선수와 함께 호흡하려고 했던 거다. 선수는 캐디의 그런 모습에 안정감을 느끼게 되고, 더욱 경기에 몰입할 수 있다는 걸 1부 투어에 와서야 알게 됐다.

김민호가 SK텔레콤오픈 최종라운드 11번홀에서 세컨드 샷을 하고 있다. 사진 | 한석규 기자(JNA골프)

캐디와의 호흡에 따라 성적도 좌우

사실 그 전에는 TV 중계를 볼 때 타이거 우즈를 비롯한 정상급 선수들은 어떻게 수많은 갤러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경기에 몰입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정말 그 느낌은 어떨까 했다.

이번 대회 3라운드 9번홀에서 그게 뭔지 조금 깨달았다. 주말인 데다 전반 마지막 홀이어서 그린 주변에 엄청난 갤러리가 몰려 있었다.

오르막 훅 라인에 약 12m 거리의 버디 퍼트를 남겨둔 상황. 스트로크를 한 후 감각적으로 롤이 굉장히 좋다는 걸 느꼈고, 볼은 홀에 쏙 빨려 들어갔다. 아직 1부 투어에 뛴 경험이 많지 않아 많은 갤러리들 앞에 서면 사실 가슴이 떨릴 줄 알았다.

하지만 전혀 긴장되지 않고, 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마치 마법에 걸린 듯 볼과 홀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 주제에 거창하게 말하면 '무상무념' 뭐 이런 거다. 어쨌거나 그런 분위기를 이끌어 준 게 바로 나의 캐디 종엽이 형이었다.

"형, 갤러리가 그렇게 많은데 볼하고 홀 밖에 보이지 않던 걸."

"그랬냐. 난 너 밖에 안 보이더라. 하하."

김종엽씨가 티샷을 앞둔 김민호 선수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사진 | 한석규 기자(JNA골프)

그 순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했다. 맞다. '내가 잘 해서가 아니었구나. 형이 옆에서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준 거다. 여태껏 나 혼자서 모든 걸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3라운드 5번홀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파5 오르막에 왼쪽으로 살짝 휘어진 이곳은 일명 '버디 홀'이다. 나 역시 티샷이 너무 잘 맞아 두 번째 샷 때 핀까지 180m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6번 아이언으로 회심의 샷을 날렸다. 그런데 볼은 왼쪽으로 감기면서 벙커에 빠지고 말았다.

위치도 좋지 않아 벙커 밖에 스탠스를 취한 채 샷을 해야 했다. 이미 마음이 상한 상태였다. '철퍼덕'. 볼은 벙커 턱을 맞고 다시 안으로 굴러 내려왔다. 화가 치밀었다. 평소 같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샷을 했을 거고,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하지만 그 순간 종엽이 형이 흥분한 나를 진정시켰다. 한 템포를 쉰 후 침착하게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스코어는 비록 파였지만 마치 버디나 이글을 잡은 듯했다. 1부 투어 데뷔 후 가장 좋은 성적인 공동 35위로 대회를 마친 것도 종엽이 형 덕분이다.

지난 3개 대회를 치르는 동안 캐디가 모두 달랐다. 하지만 이번 SK텔레콤 오픈을 계기로 캐디와의 호흡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나와 1년을 함께 할 파트너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자면 이 한 마디는 꼭 해야 할 것 같다. "종엽이 형, 고마워."

최경주가 SK텔레콤오픈 2라운드 11번홀에서 페어웨이 벙커샷을 홀에 붙여 환호하는 갤러리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최경주의 퍼트와 스윙에서 연륜 느껴

지난 SK텔레콤 오픈에서 한 가지 더 거둔 성과는 평소 존경하는 최경주 선배를 가까이서 지켜봤다는 거다. 갤러리로 구경을 하면서 본 적은 있지만 선수로서 만난 건 처음이다. 운 좋게도 연습 라운드 때 바로 앞 조에서 최경주 선배가 플레이를 했다.

가장 보고 싶었던 건 퍼트였다. 직접 보니 볼이 구르는 롤이 달랐다. 뭐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린을 따라 부드럽게 구르는 게 인상적이었다. 스윙에서는 연륜과 수많은 경험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힘을 과도하게 주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게 클럽을 휘두른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나이까지 현역으로 뛰고 싶다'는 작으면서도 큰 소망을 가지게 됐다.

정리=김세영 기자( k0121@hanmail.net)

Copyright © 마니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