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원짜리 국밥의 비밀] 추억에 굶주린 사람들..박리다매 경제학의 聖地 낙원동

2015. 5. 2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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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박준규 기자]“여기서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5000원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야. 해장국 한그릇이 2000원이고, 공짜 커피 나오지. 머리를 자르고 싶어도 3500원이면 되니까. 나 같이 한 푼이 아쉬운 노인네들이 이쪽으로 흘러들어오는 이유가 있어.”

지난 26일 정오가 가까워지는 시간. 손님이 가장 몰린다는 종로구 낙원동 ‘소문난 해장국’집에서 만난 김호식(가명ㆍ74) 씨의 말이다. 둥그런 나무 테이블에 기자와 나란히 앉아서 식사를 하던 그는 낮은 신음소리를 내면서 국물을 들이켰다.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교회서 밥을 먹는 일요일을 빼면 늘 탑골공원에 출근(?)해 한나절 소일한다는 그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여기서 점심을 해결한다고 했다.

수십년간 서민과 함께 한 낙원동 일대의 식당가. 박리다매를 추구하지만, 언제나 얇은 서민들의 지갑을 의식하는 정다운 곳이다. 그래서 2000원 짜리 국밥이 존재할 수 있는 곳이다. 일부 고객들은 싼값도 싼값이지만, 추억을 찾아 낙원동 일대 골목을 누비곤 한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같은 날 오후 네 시 반쯤. 가게 앞에 주차된 택시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택시 앞에 달린 노란 번호판은 나무판자가 세워져 있었다. 6m 앞에는 불법 주정차를 단속하는 CCTV가 서 있었다.

이 택시를 몰고 온 박인철(64) 씨는 “딱지 떼는 거 피하려고 세워둔 것”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그는 7년 전부터 이 가게를 드나들고 있다. 그는 강남 삼성역에서 젊은 중국인 관광객 둘을 태워서 종로 체부동에 내려다주고 오는 길이었다. 그는 “종로에 손님 내려줄 일 있으면 한 번씩 들르죠. 싸고 간단하게 한 끼 해결할 수 있으면서도 가게 종업원이 차도 봐주니까 좋네요”라고 했다.

낙원동은 전형적으로 싸게 많이 파는 ‘박리다매’ 상권이다. 낙원 악기상가 주변엔 낙원동 2000원짜리 해장국을 비롯해, 4000원짜리 순대국밥집이 성업 중이다. 3500원만으로 이발할 수 있는 곳도 있다. 대개 적게는 7~8년에서 많게는 수십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들이다.

낙원동 터줏대감 격인 ‘소문난 해장국’ 집과 바글바글한 손님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롱런’ 원동력은 수십년 쌓인 단골들=‘다매’를 가능케 하는 배경은 뭐니뭐니해도 두터운 수요층이다. 수십 년간 낙원동의 식당을 거쳐 간 사람들이 다시 찾고, 또 새로운 사람들을 데려오면서 하나의 거대한 ‘수요 풀(pool)’이 형성된 것이다. 개별 손님들은 가끔씩 들르더라도, 이런 사람들이 모이고 모이면 매일 수백명이 이곳 식당을 찾는 셈이다.

낙원상가 바로 옆에서 25년 넘게 순대국밥집을 꾸려온 서숙녀(78) 사장은 “육개장 1000원, 순대국밥 500원에 팔던 시절이었는데 인심 많이 써가면서 장사했다”며 “그때 여기서 공짜밥 얻어먹고 갔던 학생들이 점차 커가면서 취업했다고 자랑하고, 결혼한다고 기뻐하는 모습을 다 봐왔다”고 했다.

탑골공원을 찾는 노인들도 빼놓을 수 없는 주고객층이다. 가게 주변은 해장국 한그릇을 비우고 나온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더구나 이곳 식당들은 대개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휴일 없이 문을 연다. 한 그릇이라도 더 팔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셈이다.

20대 젊은이들도 이따금 찾는다. 주변 영어학원이나, 고시학원에 다니는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이 여기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것이다.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수민(27) 씨는 “학원에서 가까운 인사동이나 종각역에서 점심을 먹으면 보통 6000~7000원을 써야하는데 (낙원동은)가격적인 면에서 일단 매력적”이라며 “친구들마다 호불호는 갈리는데 뭐든 잘 먹는 친구들끼리 자주 온다”고 했다.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2000원 국밥 체험기’ 등의 제목으로 글이 퍼지면서 ‘체험’을 위해 찾아오는 젊은이들도 종종 있다.

▶부대비용과 임대료는 저저익선(低低益善)=‘많이 파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게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는 일이다. 메뉴를 너무 벌리지 않고 한두가지만 최소한으로 유지하면, 재료 조달비용을 낮출 수 있다. 쓸데없이 낭비되는 식재료가 줄기 때문이다.

소문난 해장국집의 권영희(69) 사장이 수십년째 해장국 한가지만 만들어 파는 이유다. 그는 “‘술 안주를 만들어 팔아봐라’, ‘선지를 넣어서 끓여봐라’ 하면서 한마디씩 하는 손님들이 많지만 결국은 해장국만 고수하고 있는 것도 그래야 비용을 최대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가스 대신 연탄불을 사용하는 곳도 있다. 3500원에 머리를 자를 수 있는 탑골공원 근처의 이발소들은 물을 따뜻하게 데우는데 아직도 연탄불을 쓴다. 일부 식당에서도 조리하는 과정에서 연탄과 가스를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점포 임대료가 종로의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점도 5000원도 안되는 밥값의 비결이다.

돈의동 S부동산 대표는 “낙원동 일대 1층에 들어선 33㎡ 내외의 가게 자리는 월세가 100만~120만원 수준이다. 몇 년 새 거의 오르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낙원동에서 횡단보도만 건너면 펼쳐지는 인사동의 점포 임대료가 적게는 300만원에서 많으면 800만원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절반도 채 안되는 수준이다.

소문난 해장국 집의 2000원짜리 국밥 메뉴.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종로 다 뜨는데…낙원동만 섬처럼 남아=낙원동에서 20년간 부동산을 해왔다는 구본고 현대부동산 대표는 “부동산에 가끔 점포 매물이 나와도 거래가 거의 안된다. 4~6평짜리도 1년에 한번 거래시키기 어렵다”고 했다. 거래가 활발하면 덩달아 임대료 수준도 오르기 마련인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정체돼 있다는 설명이다.

강태욱 하나은행 부동산팀장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그는 “종로 일부 지역은 고층빌딩이 들어서면서 상전벽해 했으나 탑골공원 담벼락 바깥에 밀집한 식당의 풍경은 수십년전과 그대로”라며 “투자 수요가 많고 거래가 많았다면 땅값이 오르고 임대료도 올랐을 것인데, 낙원동은 그런 분위기에서 비껴갔으니 식당들도 과거와 비슷한 가격에 장사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whywh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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