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규칙'으로 본 벤치클리어링의 재구성

김현희 기자 2015. 5. 2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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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 동작 시점을 인플레이로 볼 경우, 타임 요청할 수 없어

와인드업 자세에 들어간 해커. 바로 이 다음 순간에 오재원이 타임을 요청했고, 심판이 이를 받아들였다. 벤치클리어링의 원인은 바로 이 장면에서부터 시작됐다. 사진│SBS 중계화면 캡쳐

[마니아리포트 김현희 기자]벤치클리어링(bench-clearing)에는 특별한 사전적 의미는 없지만, 보통 스포츠 경기 도중 선수들 사이에 실랑이(다툼)가 벌어졌을 때, 양 팀 선수들이 모두 벤치를 비우고 싸움에 동참하는 행동을 의미하곤 한다. 모두 그라운드에 싸우러 나갔으니, 더그아웃에는 아무도 없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쓰인 말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하면 선수단 모두 나가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간혹 발생하는 이 '퍼포먼스'는 하나의 문화로도 받아들여지는 추세이기도 하다. 그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음을 양자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보통 짧게 끝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어도 지난 27일 마산야구장에서 발생한 NC와 두산의 벤치클리어링은 '보통의 상황'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특히, NC에는 두산에서 같이 뛰었던 옛 동료들이 많아 누구보다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이였다. 김경문 감독을 필두로 이종욱, 손시헌, 이재학 등이 그러한 이들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옛 동료들간의 관계를 뒤로하고 험악한 상황까지 연출되었다는 점은 그다지 유쾌한 장면이 아니었다. 더구나 해당 상황을 정리해야 할 베테랑들이 오히려 벤치클리어링에 앞장섰다는 점은 더 큰 오해를 불러 일으킬 만했다.

'야구규칙'으로 본 벤치클리어링의 재구성

그러나 사실 이번 벤치클리어링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양 팀 모두 극도로 흥분할 필요도 없었고, 그 과정에서 쓸데없는 제스쳐나 행동도 나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7회 초 두산 공격에서부터 시작됐다. 그 과정을 재정리해 보고자 한다.

두산은 7회 초 공격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1-7로 크게 리드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한 점이라도 만회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두 타자로 등장한 오재원의 첫 번째 임무는 출루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커로 하여금 많은 공을 던지게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볼 카운트는 투 스트라이크 원 볼로 오재원에게 다소 불리했다. 도화선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됐다.

해커는 다음 투구를 던지기 위해 와인드업 자세에 들어가 있었다. 바로 이 때 오재원이 타임을 요청했고, 그 상황을 심판이 받아들이는 순간 '볼 데드(경기 일시 중지)' 상황이 만들어졌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실제로 야구규칙 5.10(볼 인 플레이와 볼 데드)에는 심판이 타임을 선언하는 순간 볼 데드가 됨을 분명히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도 야구규칙에 분명히 명기되어 있다.

야구규칙 5.02에 명시된 '부기' 항목을 살펴보면, '공이 경기 중 부분적으로 떨어져 나갔을 경우 그 플레이가 끝날 때까지 볼 인 플레이 상태는 계속된다.'라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부분적으로 떨어져 나간 것'에 대한 재량은 심판에 있다. 그러나 이 항목을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이미 와인드업 자세를 잡고 있는 상황에서 공의 위치는 투수의 상체 부분에서 머리 위로 '떨어져 나간' 상황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심판은 타임을 인정하지 않고 경기를 그대로 속개할 수도 있었던 셈이다. 해커가 그 자세에서 '볼 데드'가 선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을 던졌던 이유도 바로 이 규칙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는 셈이다.

야구규칙 5.10에는 이보다 조금 더 구체적인 내용이 제시됐다. '심판은 플레이가 진행되고 있는 도중에 타임을 선언하여서는 안 된다.'라는 내용이 그것이다. 따라서 와인드업 자세를 취하면서 공을 던지려고 하는 순간을 '플레이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으로 해석하면 타임을 받아주지 않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는 감독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역시 동 규칙을 살펴보면, '투수가 투구동작에 들어갔거나 주자가 뛰고 있을 때처럼 플레이가 시작되려고 하거나 플레이를 하고 있을 때는 타임을 요청하면 안 된다.'라는 항목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을 두루 따져 본다면, 심판이 오재원의 타임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무방했던 셈이었다.

물론 '타임'과 관련하여 야구규칙 5.10의 주석에는 '타임이 발효되는 것은 타임이 요청되었을 때가 아니라, 심판원이 타임을 선언한 순간부터이다.'라고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오재원의 타임 요청을 받아들인 순간 이후 어떠한 플레이도 '볼 데드'가 성립될 수밖에 없다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할 필요가 없다. 다만, 오재원이 1루 땅볼로 물러난 이후 상황에 대해서 양 팀이 필요 이상으로 흥분을 했다는 점, 그 과정에서 상대 투수를 향해 위협구 비슷한 공을 던졌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반성을 해야 할 듯싶다.

[eugenephi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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