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권 1억대" 구두박스 불법 매매.. 서민 상권 '먹칠'

박주희 2015. 5. 28.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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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소유로 운영자에 점유 허가

운영권 판매·임대 금지돼 있는데

수익 많고 추가 공급 막아 놓자

강남권 일대서 음성적 거래 판쳐

연간 1회 단속 땐 원래 운영자 데려와

"구두박스(구두수선대) 운영권 판매가 불법인줄은 알지만 다들 사고 팔아요. 목돈을 쥘 수 있는 기회잖아요."

김모(57)씨는 30년 동안 서울 강남 일대에서 일명 '딱새(구두닦이)'라 불리는 구두박스 종업원으로 일했다. 그는 돈이 모이자 6년 전 역삼동의 한 구두박스 운영권을 3,000만원에 사들였다. 돈이 다소 부족했지만 지인에게 자금을 빌려 '사장'의 꿈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김씨는 1년 뒤 구두박스를 돌연 처분했다. 장사도 잘 됐고 빚 독촉에 시달리지도 않았으나 그 사이 운영권 시세가 4,000만원으로 뛰었던 것. 그는 1년 만에 간단히 1,000만원의 부가수익을 올렸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두박스는 원래 시 소유이고 운영자에게는 점유 허가만 내준 것이다. 하지만 웃돈을 받고 운영권을 넘기는 구두박스 매매시장이 형성돼 불법 매매 및 임대가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층건물과 기업이 밀집해 있는 강남 일대 구두박스 운영권은 억대가 넘는 가격에 음성적으로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지하철 2호선 강남역과 역삼역 인근 구두박스는 각각 1억8,000만원, 1억4,000만원에 매매가 성사됐다. 테헤란로에서 구두박스를 운영하는 60대 남성은 운영권 3개를 사들여 두 곳은 본인이 직접 운영하고 나머지 한 곳은 다른 운영자에게 임대를 주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강남구 내 총 108개 구두박스 중 40% 정도가 이런 방식으로 실제 운영자가 바뀌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불법이다. 서울시가 2001년 제정한 '보도상 영업시설물 관리 등에 관한 조례'는 구두박스 운영권의 판매와 임대를 금지하고 있다. 자본력을 앞세운 제3자가 끼어들 가능성을 원천봉쇄해 영세한 구두닦이 종사자들의 지속적인 경제활동을 보장하고 구두박스 상권을 보호하자는 취지다. 같은 이유로 조례는 자산 3억원 미만의 서민들에 한해 구두박스 운영권을 주게 했다. 또 사업자가 운영권을 포기하면 다시 시에 반납해야 한다.

구두박스 운영에 관한 법 규정이 명확한데도 강남 지역에서 불법 매매가 활개를 치는 것은 수익이 의외로 높기 때문이다. 20년간 업계에 종사한 오모(58)씨는 27일 "(운영자 밑에서) 종업원으로 일할 당시 한 달 임금이 200만원 정도였는데 직접 구두박스를 운영하자 월 600만~700만원의 수익이 생겼다"며 "강남에서는 장사가 안 돼도 최소 월 300만원을 벌 수 있어 수익을 충분히 낸 뒤 다시 목돈을 받고 되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서울시가 가로환경 개선 명목으로 더 이상 구두박스 수를 늘리지 않아 운영권 매매시장은 점점 더 과열되고 있다. 김씨는 "시 조례로 공급은 한정돼 있는데 수요는 꾸준히 늘다 보니 당연히 거래가가 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구두박스를 둘러싼 기형적인 매매가 성행하고 있는데도 단속주체인 지방자치단체는 손을 놓고 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운영자들이 거래내역을 서류로 남기지 않아 단속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허가를 받은 운영자가 영업을 하고 있는지 구두박스를 수시로 점검하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라고 말했다.

운영자들은 이 같은 허점을 노려 연간 한 번 실시되는 단속 주간에는 등록된 원래 운영자에게 자리를 지키도록 해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고 있다. 실제 조례 제정 이후 구두박스 불법 매매가 적발된 적은 한 차례도 없다. 운영 허가를 내주는 서울시 측은 "운영권 매매와 관련한 민원이 들어오면 관할 구청에 알리는 것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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