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도촬꾼' 로스쿨생의 도촬사진 제공한 경찰

김아영 기자 2015. 5. 2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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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년여간 여성의 신체 일부를 몰래 촬영한 혐의로 로스쿨생이 검거됐다는 보도가 어제 나왔습니다. 30대인 이 로스쿨생은 지난 2월 14일 서울 이태원역 인근에서 종이 가방에 아이팟을 넣어 여성의 허벅지를 촬영한 것으로 조사됐고, 그의 컴퓨터에서는 수백장의 사진과 동영상이 발견됐다고 경찰은 밝혔습니다.

경찰에서 검거와 관련한 '보도자료'가 나올 경우, 방송사를 비롯한 언론사 기자들은 관련한 영상이나 사진이 있는지, 있다면 제공이 가능한지 문의합니다. '보도자료'를 낸 뒤 이런 기자들의 문의가 잇따르다보니, 애초에 '보도자료'를 낼 때부터 관련 영상을 함께 배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보도자료 : 행정기관이나 기업 등에서 언론 보도를 요청하며 작성하는 문서나 자료)

경찰이 어제 오후 해당 보도자료를 낸 뒤, 웹하드를 통해 제공된 사진, 영상물을 확인하게 됐습니다. 파일을 다운받았는데, 스스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찰이 제공한 영상은 검거된 로스쿨생이 보관하고 있던 이른바 '도촬물'이었습니다. 우선, 사례로 들었던 2월 14일, 이태원역에서 여성을 따라가며 촬영한 동영상이 있었습니다. 사진이 첨부된 11개 파일은 이보다 훨씬 노골적이었습니다.

하나의 파일당 아주 작은 화면이지만 70-80개의 사진, 많게는 100개 이상의 사진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컴퓨터의 사진 폴더를 클릭했을 때 각각의 이미지가 작게 노출되는데, 이 화면을 캡쳐한 걸로 보입니다.) 가해자의 컴퓨터를 가지고 특정 폴더를 클릭했을 때 보게 되는 화면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르실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보도자료나 파일이 제공된 웹하드 등을 통해 피해자들을 위해 철저한 모자이크를 요청한다는 등의 당부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기자단 전체로 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화면이 언론에 제공된 사실을 피해자들은 알고 있을까요? 용산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에 동영상 속 여성의 동의를 구한 뒤 제공된 화면인지 문의했습니다.

동의 여부에 대해 문의했는데, 답변은 "뒷모습 뿐이어서..."였습니다. 누군지 알아 보기 어렵다는 취지의 답변으로 들렸습니다. 재차, 여성에게 동의를 구한 적은 있는지 문의했습니다. 이번엔 "확인해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이번엔, 수백 장 이상 제공된 사진 속 여성들에 관해 물었습니다. 황당하게 도둑 촬영을 당한 여성들은, 자신들의 신체 일부 사진이 이렇게 언론에 제공된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경찰은 이번에도, 사진만 봐서는 누군지 구분이 안 된다고 답했습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100% 사실은 아닙니다. 정면이 촬영된 여성 사진도 한 장이지만, 있어서입니다.)

누구인지 구분이 안 된다는 이유로, 치마 속 화면을 경찰이 언론에 제공해도 되는 것일까요. 알고보니, 사진속 여성들은 누구인지 특정도 되지 않아서,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진행할 수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경찰에서는 과한 지적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관행이라는 것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경찰은 화면을 요청하는 언론 편의를 생각한 측면이 있고, 통상적으로 '비방용' 자료일 때는 언론사 자체적으로 모자이크를 짙게 하거나, 아예 쓰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해당 영상과 사진 자료를 언론에 공개한 곳이 여성청소년과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여성 청소년과는 성폭력, 가정 폭력 피해를 겪은 여성들을 직접 마주하고, 조사해야 하는 과입니다.

피해 여성들에 대한 '감수성'이 어느 곳보다도 더 살아있어야 하는 곳 아닐까요. 사진과 영상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피해 여성들에 대한 고려가 얼마만큼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해당 사진과 영상을 보게 된 기자는 2차,3차 가해자가 된 듯한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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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기자 nin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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