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삼성 계열사 숨가쁜 변신, 외신은 '부드러운 승계'라는데..

박민하 기자 2015. 5. 27.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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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버랜드는 2013년 9월 옛 제일모직의 패션사업 부문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건물관리사업을 에스원에 떼어 줬다. 급식과 식자재 사업은 분리해서 삼성웰스토리로 독립시켰다. 2014년 3월에는 삼성SDI와 합병을 발표했다. 그 해 7월 사명을 제일모직으로 바꿨다. 지금의 제일모직이다. 지난해 12월 제일모직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그리고 5월26일 삼성물산과의 합병을 결의했다. 합병기일이 9월1일이니 불과 2년 새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은 숨 가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셈이다.

제일모직에서 작성한 삼성물산과의 합병 IR(기업설명회) 자료의 핵심 문구는 이렇다. '衣-食-住-休+바이오'를 영위하는 '글로벌 초일류 라이프스타일 창조기업(Global Premier Life-Style Creator)'. 생소한 표현이다. 제일모직으로서는 건설사업의 핵심 경쟁력을 조기에 확보하고 해외 진출을 확대하기 위해서, 삼성물산으로서는 건설부문의 수익성이 정체되고 상사부문의 매출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신성장 동력을 발굴할 필요가 있었다는 게 IR 자료가 밝힌 합병 이유다.

IR 자료에 따르면 합병회사(社名은 삼성물산이 된다)는 건설, 상사, 패션, 食飮, 바이오, 레저 사업을 영위하게 된다. 지난해 매출액 33.6조 원, 세전이익 0.6조 원이었는데 불과 5년 뒤인 2020년에는 매출액 60조 원, 세전이익 4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비전도 담았다. 5년 새 기업 외형을 두 배로 키우겠다는 뜻이다.

IR 자료에는 한 마디 언급이 없지만 합병의 실제 목적이 3세로의 경영 승계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통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삼성물산(합병법인)-삼성생명-삼성전자로 단순화된다. 현재 지분 23.23%로 제일모직의 최대 주주인 이재용 부회장은 합병법인 지분 16.5%를 보유하게 돼 여전히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게 된다.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합하면 40.22%의 지분율로 그룹의 지배권은 공고하다.

삼성전자에 대한 지분이 0.57%에 불과했던 이 부회장으로서는 옛 삼성물산이 보유한 4.06%의 삼성전자 지분을 통해, 여기에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7.21%와 앞으로 물려받게 될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 3.38%까지 더해 삼성전자에 대한 직간접적인 지배권을 확대할 수 있게 됐다.

경제개혁연대는 합병비율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이번 합병비율은 1대 0.35다. 대략 삼성물산 주식 3주가 제일모직 주식 1주로 교환된다는 뜻. IR 자료에 따르면 합병 전 제일모직의 자산은 9.5조 원 수준이고 삼성물산의 자산은 29.5조 원 수준이다. 매출액은 제일모직이 5.1조 원, 삼성물산이 28.4조 원 수준. 자본시장법에 따라 합병비율은 최근 1개월, 최근 1주일, 최근일 가중산술평균 종가를 다시 산술평균한 가격으로 결정됐다.

그런데 제일모직은 지난해 12월 상장 이후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가격이 한껏 오른 시점이고, 삼성물산의 주가는 사실상 2010년 하반기 이후 최저 수준인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자산과 매출이 월등히 큰 삼성물산의 주주들에게 불리한 합병비율이 아니냐는 우려인 것이다. 경제개혁연대는 "과대평가된 제일모직과 과소평가된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은 삼성물산 주주들의 큰 불만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뒤집어 보면 옛 삼성물산 지분이 1주도 없었던 이 부회장 입장에서 보면 절묘한 합병 시점을 선택한 것이다.

3세로의 경영권 승계라는 거의 유일한 목적을 위해 회사, 특히 다수의 주주가 존재하는 상장회사를 거침없이 이리 쪼개고, 저리 합치는 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뤄지고 있다. 합병해서 기대되는 효과만 장밋빛으로 언급되고 있을 뿐(5년 안에 매출이 두 배가 된다는 식이다), 장밋빛으로 전망하는 이유에 대해 그 어떤 구체적인 설명도 없다.

지난 1996년 이 부회장이 48억 원을 들여 인수한 에버랜드 CB(전환사채)는 그룹의 '밀어주기'로 천문학적인 가치를 지닌 상장회사 지분이 됐다. 이후 계열사들을 이리 쪼개고 저리 합치다 보니 이 부회장은 시가총액 200조 원에 육박하는 삼성전자를 포함해 사실상의 삼성그룹 경영권을 장악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이건희 회장으로부터의 상속은 아직 진행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이 낸 세금은 90년대에 아버지로부터 61억 원의 종잣돈을 받으면서 낸 증여세 16억 원이 전부로 알려져 있다. 에버랜드 CB 인수 등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종결됐다지만 16억 원의 증여세로 사실상 삼성그룹이라는 왕조를 승계한 건 '비법'이라고 해야 할까? 법의 맹점을 파고 든 일련의 과정이 영국 경제 주간지의 표현처럼 과연 '부드러운 승계'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수많은 편법을 동원한 거칠었던 초기의 승계 과정은 지워질 수 없다.박민하 기자 mhpar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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