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고교 4할 타자'를 재수생으로 만든 '입시 커넥션'

주영민 기자 2015. 5. 2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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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취재파일을 통해 '입시비리 의혹'을 제기한 이후 학부모들로부터 많은 제보를 받았습니다. 이미 의혹을 제기했던 C대학교 사례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유명한 의혹'으로 알려져 있었고, 새로운 의혹을 제기한 학부모도 있었습니다.

▶ [취재파일/단독] 커지는 '입시비리' 의혹…후폭풍 예고

▶ [취재파일] "내 아들이 입시비리 피해자입니다"…애타는 父情

그런 가운데 믿기 힘든 충격적인 제보를 받았습니다. K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올해 Q대학에 야구특기생으로 입학한, 하지만 지금은 야구선수가 아닌 P군의 기막힌 사연입니다.

"제 아들은 K고등학교 야구부에서 주전 외야수로 뛰면서 3학년이었던 지난해 거의 전 경기에 출전해 4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했습니다. 전국 대회 우승 경험도 있고, 수훈상과 타격상을 탔을 정도로 유망한 야구선수였습니다. 그런데 감독한테 찍히면서 모든 게 꼬였습니다. 프로 지명도 받지 못했고, 성적이 좋아 야구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했지만, 야구부에서는 퇴출된 상탭니다. 아들은 지금 재수를 하고 있습니다."

P군 아버지는 "고등학교와 대학 감독들의 뿌리 깊은 연결 고리가 한 유망주의 인생을 망쳤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과연 P군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 지난해 타율 0.429…장밋빛 같던 미래

P군의 성적은 놀라울 정도로 훌륭했습니다. 성적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는 것에 대해 신분 노출을 우려했지만, P군 아버지는 "어차피 알 사람은 다 안다"며 성적 공개를 허락했습니다.

P군은 지난해 17경기에 출전해 88타석 56타수 24안타로 타율 0.429를 기록했고, 홈런은 없지만 3루타를 6개나 때렸습니다. 22타점에 26득점을 기록한 팀 공격의 핵심이었습니다.

1학년 때부터 대회에 출전했을 정도로 가능성을 인정받았던 외야수였습니다. 주변에서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프로 지명이 가능할 것이라며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P군의 앞날은 누가 봐도 장밋빛이었습니다.

● 운명을 바꾼 '신고 선수 제의 거절'

P군의 아버지는 지난해 8월 고교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K고 감독으로부터 "프로팀 OO구단에 신고 선수로 입단하라"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P군은 이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당당히 프로지명을 받고 싶었고, 지금 지명받지 못하더라도 대학 졸업 후 지명 받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K고 감독은 주변 사람들을 통해 여러 차례 P군의 아버지를 설득하고 압박했습니다. "집에 돈도 좀 있으니 계약금 욕심 낼 필요 없지 않느냐? 이러면 감독님이 곤란해지신다."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P군 아버지는 "OO구단 감독과 K고 감독은 절친한 선후배사이였다. 아마도 P를 OO구단 신고선수로 보내겠다는 약속을 미리 한 것 같았다."고 밝혔습니다. P군은 끝까지 '신고 선수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이후 P군은 험난한 운명의 길을 걷게 됩니다.

● "서울에 있는 대학은 못 써 준다" vs. "실력으로 가겠습니다"

'신고선수 제의'를 거절한 뒤 K고 감독은 P군을 철저히 외면했다고 합니다. P군은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어도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성적이면 충분히 서울에 있는 야구 명문대에 입학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P군의 아버지는 K고 감독과 입학 상담을 하다가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K고 감독이 "서울에 있는 대학은 추천 못 써준다. 지방 캠퍼스를 가라"고 한 겁니다. P군의 아버지는 "감독님이 추천 못해주겠다면, 저희 아이 실력대로 가겠다"고 맞섰습니다.

주위에서 "그러다가 야구 못 할 수도 있다"는 협박성 발언까지 들었지만, P군의 아버지는 연연하지 않고, 서울지역 대학 5곳에 수시 원서를 접수했고, 그 가운데 3곳에 합격했습니다.(이 가운데 제가 부정입학 의혹을 제기했던 C대학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 "등록하지마라", "우리 대학 왜 지원했냐?" 회유와 협박

대학 합격이 발표된 이후 P군의 집에는 학부모들과 야구 코치들의 회유와 협박성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 학부모는 "당신 아들 때문에 우리 아들이 떨어졌다. 얘는 이 대학에 가기로 돼 있었다. C대학에 등록하지 말고 다른 대학을 가라"는 어이없는 주장을 했고, 한 코치는 "왜 우리 대학에 오려고 하느냐? 야구 계속하고 싶냐?"는 황당한 협박도 있었습니다.

P군의 아버지는 그 가운데 한 대학 코치와 통화한 전화 녹취 내용을 들려 줬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 대학에 오지 마라'는 것이었는데, 그 이유가 기가 찼습니다.

"솔직히 P가 우리 학교는 지원하지 않을 줄 알았어요. 이렇게 야구판을 시끄럽게 해놓고 우리 대학에 오면, 저희가 곤란하죠. 정상적으로 절차를 밟고 오셨어야죠. 사실 우리 학교에는 부산에서 투수가 한 명이 오기로 돼 있었거든요. 그런데 P 때문에 걔는 떨어진 거예요. 과연 이 상태에서 우리 학교에 오겠다는 게 야구를 하겠다는 건지 공부를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네요."

이미 합격이 내정된 선수가 있었는데, P가 사전 교감(?) 없이 여기저기 복수 지원해 합격하는 바람에 피해자(?)들이 생겼다는 겁니다. 더욱이 '정상적인 절차'(?)를 밟으라는 어이없는 발언까지 합니다.

● 믿었던 Q대학마저…지긋지긋한 '커넥션'

충격에 빠진 P군은 결국 Q대학을 선택했습니다. Q대학은 예전에 '입시비리'로 홍역을 겪은 적이 있어서 입시절차가 철저히 서류전형으로 간소화되고 투명화됐습니다. 외부 입김을 없애기 위해 고등학교 대회 성적만으로 뽑았기 때문에 P군은 무난히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P군은 Q대학에서도 야구를 할 수 없었습니다. Q대학의 감독은 K고 감독의 절친한 선배였다고 했습니다.

P군은 Q대학에 합격한 뒤 지난해 12월말쯤 "동계훈련에 참가하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심신이 지쳐 있던 P군은 도저히 동계 훈련에 참가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P군 부모는 "아이가 힘들어 하니 입학 후 훈련에 합류하겠다"며 양해를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입학을 하고 보니 P군은 야구선수로 등록돼 있지 않았습니다. 야구특기생으로 대학에 들어갔는데, 야구선수가 되지 못한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Q대학 야구부에서 P군을 제외한 이유는 '동계훈련 불참'이었습니다.

P군의 아버지는 잘못된 현실이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며 분을 삭였습니다. 그리고 적나라하게 당시 감적을 털어놨습니다.

"Q대학 감독이 K고 감독의 선배라는 걸 알고, 야구하기는 쉽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동계 훈련에 애를 보내면 죽도록 때려서 야구 못하게 만들 것만 같았죠. 그래서 동계훈련에서는 일단 빠진 거고, 나중에 감독에게 잘 부탁해서 우리 아이 야구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 아예 선수 등록을 안 해버리니까... '이 대학도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만 들었죠."

P군은 결국 재수를 결심했습니다. 지금은 야구를 잠시 접고 학원을 다니며 입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엘리트 야구부가 없는 서울대 체육교육과에 도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서울대 야구부가 동아리 성격이긴 하지만 각종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만큼 그 곳에서 군계일학의 면모를 보여준다면 또 다른 길이 보일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프로 야구선수의 꿈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 "대학 갔으면 잘 했을텐데…안타깝네요"

몇몇 프로구단 스카우트로부터 P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왜 이런 훌륭한 성적의 선수를 지명하지 않았냐?"는 물음에 스카우트들은 "P군이 타격에는 분명히 소질이 있지만, 아직 파워와 수비, 주루에서 좀 부족했다. 외야는 경쟁이 가장 치열한 곳이다. 고졸 출신이 곧바로 끼어들 틈이 많지 않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대부분 2군에서 경험을 쌓게 하면서 육성을 한다. 그래서 P군에 대해서는 당장 뽑기보다 대학을 거친 뒤 다시 한 번 보자는 의견이 많았다. 대학 갔으면 잘 했을 텐데 재수를 한다니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대학을 거치고 경험을 쌓으면 5~6년 뒤에는 프로에서 뛸 수 있는 유망주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야구 유망주는 기회를 박탈당한 채 입시 학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 허울뿐인 '입시요강'…대학은 감독이 정한다?

P군 아버지는 뿌리 깊은 '입시 커넥션'이 계속되는 현실에서 대학의 '입시요강'은 허울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일부 고등학교 감독들은 대학 입시요강에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 합니다.그냥 대학 감독들과 끈만 잘 연결해 놓으면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스카우트가 금지돼 있는데도 원서를 쓰기도 전에 합격여부를 다 알아요. 어느 학교에 누가 간다고 부모들 사이에서 다 알려지죠. 그래서 감독에게 찍히면 끝입니다. 감독이 가라는데 안 가면 대학 못 가는 게 현실이에요. 학부모들도 입시요강 같은 건 몰라요. 그저 감독에게 매달리기 바쁘죠. 아직도 대학을 한 군데만 지원할 수 있는 줄 아는 분이 많습니다. 야구선수도 똑같은 수험생인데 말이죠. 그래서 고등학교 감독의 낙점을 받은 한 곳만 지원합니다. 우리 아이가 5군데나 원서를 냈을 때 '그게 가능하냐?'면서 놀라더군요."

얼마 전 서울지역 고교 감독자 협의회라는 곳에서 '입시비리 의혹을 덮자'는 듯한 성명서를 내 실소를 자아낸 것도 왜곡된 입시현실의 또 다른 단면이라 할 겁니다. 대학의 입시 요강은 물론 대한야구협회의 증명서 발급기준까지 무시할 정도였으니까요.

▶ [취재파일] '입시 비리 의혹 덮자고?'…수상한 성명서

P군의 사연을 접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 심각성에 놀라면서도 한 학부모의 주장을 기사화하기까지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혹여 선량하고 노력하는 많은 감독들에게 또 다른 피해가 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각도의 취재 결과 P군이 분명 잘못된 입시관행의 피해자라는 확신을 갖게 됐고, P군이 받은 정신적 충격과 마음의 상처를 생각해서라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비록 일부 감독에 국한된 입시 관행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공론화해서 어떤 식으로든 바로잡아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P군 이외에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말아야 하니까요.

● 지지부진한 수사…귀 닫은 경찰

제가 처음 제기했던 '입시비리 의혹' 관련 수사는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후배 경찰기자를 통해 알아 본 결과 "수서경찰서에서는 대가성 여부를 조사하고 있는데, 별 진전은 없다고 한다. 경찰은 이 사건을 크게 보는 것 같지 않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 P군의 아버지를 포함해 몇몇 학부모들이 수사를 돕겠다며 수서경찰서에 전화를 했는데, 경찰은 "관련자가 아닌 사람의 진술은 필요 없다. 제보는 받지 않는다."며 귀를 닫았다고 합니다. 안타까울 뿐입니다.

경찰은 이 사건을 그저 대한야구협회 내부 갈등으로 국한해서는 안 됩니다. 좀 더 멀리 보고 폭넓게 접근해야 합니다. 뿌리 깊은 입시 커넥션, 그 복잡한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 [취재파일] "내 아들이 입시비리 피해자입니다"…애타는 父情

▶ [취재파일/단독] 커지는 '입시비리' 의혹…후폭풍 예고

주영민 기자 nag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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