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타타라타] 안병훈 우승에 대한 몇 가지 단상

2015. 5. 27. 06:3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골프와 다른 종목의 연관성 얘기가 나오면 보통 야구나 아이스하키가 많이 거론된다. 작대기를 들고 볼(혹은 퍽)을 내려치는 운동원리가 비슷하다 보니 야구나 아이스하키를 한 사람들의 골프 실력이 좋다는 얘기다. 실제로 ‘일본 남자골프의 전설’ 점보 오자키는 야구선수 출신이고, 그레그 매덕스 등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서는 야구인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탁구인들의 골프 실력도 만만치 않다. 최고수로 꼽히는 김택수(대우증권 감독)는 프로 뺨치는 실력으로 유명하고, 이유성 대한탁구협회 부회장, 강문수 국가대표팀 총감독도 아마추어 고수다. 야구나 아이스하키가 스윙 원리를 내세워 장타를 뽐낸다면 탁구는 정확성과 쇼트게임이 압권이다. 기구(라켓)를 잡고 공을 다루는 섬세함에서 탁구를 따라올 종목은 없기 때문이다.

#탁구와 골프의 인연에 대해 탁구 스타 유남규(에쓰오일 감독)의 말은 ‘명언’에 가깝다. “일단 생긴 게 비슷해 정서적으로 가깝다. 우리(탁구인)는 가공할 스피드에 엄청난 회전이 걸려 날아오는 공을 넘어지면서도 원하는 방향으로 회전을 걸어 보낸다. 가만히 있는 공을 구멍에 집어넣는 것(골프)은 쉬운 편”이라고 농을 했다. 왼손잡이인 유 감독은 스윙은 오른손잡이로 하면서도 쇼트게임만큼은 왼손으로 했다. 그렇게 하면서도 완벽한 싱글 골퍼였다.

유남규 에쓰오일 감독.

#지난 22일 탁구 취재를 위해 태릉 선수촌을 찾았다가 그만 ‘기-승-전-골프’가 되고 말았다. 안재형(50) 국가대표팀 코치를 만나 한국 탁구에 대해 얘기하다가 아들 안병훈(23) 얘기가 나오면서 자연스레 골프 대디 인터뷰가 된 것이다. 탁구를 뒤로 한 채 8년 간 미국에서 아들의 백을 메는 등 골프 대디로 살아온 안 코치는 지난 해 12월 아들을 독립시켰고, 올해 3월 국가대표 감독(물론 탁구)으로 다시 한국에 왔다. 미국에서의 고생은 책으로 펴내면 수십 권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나마 요즘은 좋다. 안병훈이 올시즌 유럽프로골프투어에서 “너무 잘하고 있다”며 대견스러워했다. 우승은 없지만 지금까지의 상금으로 내년 시드를 확보한 것에 만족한다고. 그리고 코오롱 한국오픈 등 기회가 되면 올해 한국 대회에 출전할 수도 있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그저 빨리 우승컵만 한 번 들어올리면 더 바랄 것이 없다며 말이다.

#밤 10시가 넘어 ‘인터뷰’가 끝났으니 바로 그 시간이다. 잉글랜드 서리 주 버지니아 워터의 웬트워스클럽 웨스트코스에서 열린 유럽프로골프투어 BMW PGA챔피언십(메이저대회!) 1라운드에서 안병훈은 맹타를 휘두르고 있었다. 마치 아버지의 염원을 실현하겠다는 듯이. 24일 3라운드까지 안병훈이 공동선두를 달리자 살짝 아버지의 애타는 마음이 느껴진 기자는 “우승을 기도할게요”라고 짧은 응원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25일 새벽 안병훈은 아시아인 최초로 이 대회를 제패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안재형 코치는 “감사합니다”라는 문자로 답했다. 2009년 안병훈이 최연소로 US아마추어 챔피언에 올랐을 때 미국에서 안재형 골프 대디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이후 성적이 좋지 않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기가 막힌 인터뷰 시점으로 궁색한 미안함을 씻어내린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25일(한국시간) 유럽프로골프투어에서 첫 승을 올린 안병훈.

#안병훈이 우승하니 임진한 프로가 떠올랐다. 이유는 이렇다. 1월초 신년 인터뷰를 했는데 질문 중 하나가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제자)’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 50대 골프 교습가인 임 프로는 의외의 인물을 꼽았다. “탁구커플 안재형 씨와 자오즈민 씨 사이에서 태어난 안병훈을 꼽고 싶다. 많은 선수가 있지만 가장 감각이 좋았기 때문이다. 안병훈 선수는 하나를 가르쳐 주면 며칠 연습해서 둘, 셋까지 습득해 왔다.(중략) 지금은 고전하고 있지만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인터뷰는 12월 말이었으니 안병훈이 두각을 나타내기 전이었다. 그런데도 양용은 배상문 등 기라성 같은 제자를 길러낸 임진한 프로가 안병훈을 최고의 제자로 꼽았으니 좀 뜬금없었다. 그런데 이제 좀 이해가 된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안병훈 우승의 파장이 크다. ‘쾌거’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는다. 부모의 스토리까지 겹쳐지면서 더욱 흥미롭다. 잘하면 2016 리우 올림픽 때 아버지와 함께 각기 다른 종목으로 출전할 수도 있다. 어머니 자오즈민도 중국에서 회사 상장을 준비할 정도로 모바일 사업으로 크게 성공했다. 이러니 모든 게 뉴스다. 그런데 중요한 게 하나 있다. 아직 만 24세가 되지 않은 안병훈의 스토리는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이미 2009년 깜짝스타로 떠올랐다가 자존심이 땅바닥까지 떨어지는 힘든 시기를 극복했기에 더욱 그렇다. 한국과 중국, 미국 3개국에서 따로 떨어져 살고 있는 ‘안 씨네 가족 3명’에게 박수를 보낸다. [헤럴드스포츠=유병철 편집장 @ilnamhan]

2009년 한국오픈에 출전한 안병훈(왼쪽)과 아버지 안재형 감독.

sports@heraldcorp.com

- Copyrights ⓒ 헤럴드POP & heraldpop.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