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배 없는 아라뱃길'..돈 쏟아붓고 어쩌나?

박현 입력 2015. 5. 27. 06:02 수정 2015. 5. 27.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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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뱃길이 개통된 지 만 3년이 됐습니다. 공사비만 2조 2천억 원을 들인 경인 아라뱃길은 물류 혁신과 홍수 방지 등의 목표로 2012년 5월 25일 개통됐습니다. 당초 일자리 2만 5천 개를 만들고 생산 유발효과 3조 원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안고 개통했는데, 지금 현실은 어떤지, 또 발전 방향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를 알아봤습니다.

■ '수요예측'부터…첫 단추를 잘 끼워야

도로나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 사업의 시작은 수요예측 조사입니다. 수요예측은 이 시설을 지으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과 차량, 선박 등이 이용할지를 전망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수요예측은 상당수가 과다 추정되고 있습니다. 불확실해서 잘못 예측하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과대 포장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과대 포장된 수요 전망은 경제성을 부풀려 안 해야 할, 아니 하지 말아야 할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근거를 제공합니다. 수요예측을 수행하는 전문가들은 성장과 개발을 추구하는 정치인 요구에 부응합니다. 수조, 수천억 원의 세금 낭비에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비용은 온전히 국민들의 몫으로 남습니다. 경인 아라뱃길 역시 그렇습니다.

■ 3만 명의 이재민…시작은 홍수 조절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1987년 여름, 인천 부평과 계양 지역에서는 3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큰 물난리가 났습니다. 한강보다 지대가 낮은 굴포천 유역을 중심으로 물이 차올랐습니다. 6월 항쟁 직후였던 1987년. 16년 만에 대통령 직선제 선거를 앞둔 당시 노태우 대통령 후보는 '굴포천 치수종합대책'을 공약합니다. 아라뱃길 사업의 시작입니다. 이후 굴포천 치수종합대책은 몇 가지 방안에 따라 검토되다가 대규모 투자가 건설 경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 서해안 쪽으로 너비 40~80m, 길이 14.2㎞의 방수로를 뚫는 방안을 확정합니다. 1995년 현대건설을 중심으로 한 ㈜경인운하가 주관사업자로 선정되면서 시민.환경단체를 중심으로 과도한 토목사업에 대한 반대 여론이 조성됩니다. 건설자본과 당시 건설교통부는 수차례 수요예측과 경제성 분석 보고서를 내놓으며 사업 추진의 정당성을 입증하려 했습니다. 모두 8차례 보고서가 만들어졌고. 1989년 한국수자원공사가 내놓은 경인운하 보고서는 비용편익(B/C)분석 점수가 2.08에 달했습니다. 1996년에는 2.2라는 높은 점수의 보고서가 작성됐습니다. 경기가 계속 좋아질 거라는 예측에서 물류와 교통량 분산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환경과 효용성 논란이 계속됐고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까지 찾아왔습니다. 결국 삽을 뜨지 못했습니다.

■ 다시 2002년…고치고 또 고치고

그리고 다시 2002년, 건교부는 다시 한 번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수요예측.비용분석 보고서를 의뢰합니다. 그러나 완성된 보고서 초안에서 비용편익 분석치가 0.8166에 그쳤습니다. 들인 돈도 못 건진다는 겁니다. 건교부는 13개 항목을 수정해 재분석을 요청했지만, 그 결과도 0.9206. 모두 사업성 판단의 기준인 1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건교부는 한국개발연구원의 용역 보고서 인수를 거부하고 용역비 지급까지 미루며 다시 보고서 조정을 요구합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주 운수로의 너비와 공사 방법 등을 달리해 8개 시나리오로 나눠 비용편익을 분석합니다. 그 결과는 0.9223~1.2807. 일부 시나리오가 경제성 판단 기준인 1을 넘긴 겁니다. 이런 집요한 재분석 요청에 당시 '짜맞추기 분석'이라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2003년 감사원도 한국개발연구원이 내놓은 분석이 부풀려졌다며 사업 중단과 담당 공무원 징계를 요구했습니다. 당시 감사원이 재산정한 비용편익분석 결과는 0.7607~0.9317로 8개 시나리오 모두 1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 '수요예측'은 사업 추진 위한 '도구'일 뿐

하지만 건교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004년 8월 네덜란드의 운하 전문 컨설팅 업체 데하베(DHV)에 20억 원을 주고 용역을 맡겼고, 2007년 3월 결국 1.76이라는 비용편익분석을 받아냅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한국개발연구원은 데하베의 보고서를 재검증해 1.065의 비용편익분석을 내놓습니다. 당시 보고서에서 예측된 경인운하의 2011년 물동량 수요는 컨테이너 29만 4000TEU, 바닷모래 633만t, 철강재 50만t, 여객 60만 명 등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서해에 위치한 인천터미널의 물동량이 컨테이너의 80%, 바닷모래의 53%, 운하를 통과하지도 않는 물동량이 고스란히 아라뱃길의 수요예측에 포함된 겁니다. 그리고 2012년 5월 25일 아라뱃길은 개통됩니다. 내륙 18km 구간에 폭 80미터, 수심 6.3미터의 거대한 수로를 뚫다 보니, 사업비는 2조 2천억 원을 넘었습니다.

■ 개통 3년…배가 뜨지 않는 운하

개통 3년이 된 아라뱃길의 현실은 암담합니다. 2조 2500억 원을 들인 '배가 뜨지 않는 운하''2조 원 짜리 자전거 도로'라는 오명을 듣고 있습니다. 지난해 경인아라뱃길 유람선 이용자는 5만 명으로 목표치의 8%에 그쳤습니다. 12개 선박과 11개 선박을 각각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245만㎡ 규모의 경인항 인천터미널과 172만㎡ 규모의 김포터미널은 거의 매일 텅 비어 있습니다. 인천터미널에서는 인천~중국 톈진을 오가는 정기선 1척만이 지난해 55회 운항했습니다. 화물선 1척이 주 1회 정도 왕래한 셈입니다. 정기선 1척 이외에 부정기 항로 24개 노선에서 120척이 운항한 실적이 전부입니다. 화물처리 실적도 미미합니다. 수자원공사는 지난해 컨테이너와 일반화물 처리량은 개발연구원(KDI) 예측치의 10%도 수준입니다. 인천항에서 컨테이너나 일반 화물을 내려 서울 등 수도권까지 한 시간. 굳이 아라뱃길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는 게 물류 관계자의 말입니다. 특히 KDI는 경인항에서 쓰레기, 모래, 중고차 등도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실적은 전무했습니다. 유람선을 타고 경인아라뱃길을 둘러본 관광객도 지난해 5만 명에 불과합니다. 2012년 21만 3000명, 2013년 17만 4000명에서 크게 줄었습니다. KDI는 경인아라뱃길 개통 첫해 관광객을 59만 9000명으로 예측했고, 이후 60만 명 이상으로 내다봤습니다. 수공은 세월호 참사 여파로 유람선의 선호도가 떨어져 관광객 유치가 어려웠다고 항변했습니다.

■ '애물단지' 아라뱃길…어떻게 활용할까?

이렇게 물류 기능을 상실하다 보니 지난해 운하를 통과한 배는 175척에 불과합니다. 이틀에 한 척 정도만 아라뱃길을 이용한 겁니다. 경제성이 없어 물류 기능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수자원 공사도 이미 내부적으로 물류보다 관광 활성화에 집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서울시와의 협의가 남아있지만 오는 9월엔 서울 여의도와 서해 섬을 연결하는 여객선을 운항하고 인천공항을 통한 환승 관광객 유치를 위해 MOU도 체결했습니다. 요트 등 수상레저를 활성화하고 2017년엔 마리나 호텔도 짓기로 했습니다. 최근 김포터미널에 들어선 대형 아울렛도 호재로 작용할 수 있겠죠. 인천시 등 아라뱃길과 인접한 18개 기관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아라뱃길을 관광 명소로 만드는데 협의하기 위해 관광문화협의회도 만들었습니다.

지난 3년간 유지,관리비용만 700억 원이 들었습니다. 2조 원짜리 자전거 도로, 배 없는 운하라는 오명을 듣고 있는 아라뱃길이 관광·레저 활성화로 방향을 바꿔 과연 제값을 할 수 있을지 계속 지켜봐야 합니다. 잘못된 수요예측과 그 결과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지만 더 이상 세금 낭비는 없어야 할 테니까요. 참고로 한국수자원 공사의 부채는 현재 12조 원 정도입니다. 원래 가지고 있던 부채가 1조 8천억 원 정도였는데 4대강 사업으로 인한 부채 8조 원과 아라뱃길로 인한 부채 2조 원이 더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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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기자 (wh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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