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거시경제학 대논쟁과 한국 경제 / 이강국

2015. 5. 2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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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글로벌 금융위기는 거시경제정책에 관한 합의를 흔들어 놓았다."

퇴임을 앞둔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석경제학자 올리비에 블랑샤르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이번 금융위기는 거시경제학에도 엄청난 충격이었으며, 이후 거시경제정책들을 둘러싼 흥미로운 논쟁들이 발전하였다.

그중 하나는 양적완화와 같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에 관한 논쟁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여전히 양적완화가 금융시장의 거품만 촉발했으며 국가부채와 금융부실을 줄이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경제를 위기에서 구해낸 양적완화의 기여를 지적하고, 특히 디플레이션과 장기불황 시기에는 중앙은행이 적극적인 완화정책으로 기대인플레이션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편, 이른바 '장기정체'를 둘러싸고도 논쟁이 진행중이다. 하버드대의 로런스 서머스 교수는 대공황기 경제학자 한센의 주장을 되살려 미국 경제가 이미 장기정체 상태에 빠졌고,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로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전 연준 의장 벤 버냉키는 실질균형금리가 마이너스인 상황은 오래 지속될 수 없고 불황도 일시적일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인구증가율의 하락, 기술혁신의 둔화 그리고 불평등의 심화 등 구조적 침체의 요인들이 존재하며, 경기회복은 여전히 느린 현실이다.

가장 뜨거운 논쟁은 역시 긴축을 둘러싸고 나타난 격돌이었다. 위기 이전에는 높은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경제에 나쁘다는 보수적인 주장이 대세였고, 재정위기를 맞은 국가들에 긴축이 강요되었다. 그러나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등의 케인스주의자들은 재정긴축의 파괴적 영향과 확장적 재정정책의 중요성을 역설해왔다. 특히 불황이 장기적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이력' 효과를 고려한 이들의 연구는 현재의 불황하에서는 재정지출 확대가 경제를 회복시키고 세수를 증대시켜 정부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을 것이라 주장한다. 국제통화기금도 2012년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긴축을 더 많이 도입한 국가들의 실제 경제성장률이 이전의 전망치에 비해 더 크게 하락했다고 보고했다. 이는 이전의 계산과는 달리 재정승수가 1보다 훨씬 높아서 재정지출 감소의 부정적 효과가 컸기 때문이었다. 최근 이 기관은 1990년대 일본의 재정지출 확대의 긍정적 측면을 새로이 조명하기도 했다.

불평등에 관한 논쟁도 빼놓을 수 없다. 평등과 효율의 상충관계를 걱정하던 경제학의 논의는 금융위기 이후 완전히 변했다. 며칠 전 경제협력개발기구의 보고서는 최근 불평등의 확대로 인해 1990년 이후 20년 동안 회원국의 누적성장률이 약 4.7%포인트 하락했다고 보고했다. 이제 심각한 불평등이 성장을 해쳤고 정부의 소득재분배가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경제학의 상식이 된 것이다. 불황에 대한 고민을 반영하는 이러한 논쟁들은 공통적으로 경제관리를 위한 정부의 좀더 적극적인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선진국들과는 사정이 다르지만, 바다 건너의 논쟁은 한국 경제에도 시사점이 크다.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 그리고 불평등에 대한 우려는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대응은 뒤죽박죽이다. 정부는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편다면서 빚내기를 부추겼고, 가계부채를 걱정한 중앙은행은 금리인하에 머뭇거렸다. 이제 정부는 증세는 제쳐두고 복지의 확대를 억누르기 위해 재정건전성 논리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를 태세다. 하지만 최근 논쟁이 보여주듯 경기침체기에 재정건전성을 너무 강조하는 것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도 현재의 빈곤과 불평등을 그대로 두고는 우리 경제와 청년의 미래가 더욱 어두울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더욱 치열한 거시경제학 논쟁이 필요한 곳은 바로 한국이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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