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밖에 몰랐던' 절박함, 한화 김기현과 송창식 이야기

김현희 기자 2015. 5. 25. 18:2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야구를 그만 둘 뻔한 상황 속에서 다시 그라운드로 '유턴'

한때 야구를 접을 뻔했으나,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와 제 몫을 다 하는 송창식(사진 좌)과 김기현(사진 우). 사진│한화 이글스

[마니아리포트 김현희 기자]최근 성적과 관계없이 '가장 많은 야구팬들에게 관심을 받는 구단'을 꼽으라면 단연 한화 이글스일 것이다. 개막 이후 좀처럼 3연패를 당하지 않는다는 점, 경기 끝까지 상대팀이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점에서 한화는 분명 지난해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한화의 야구를 가리쳐 '마리한화'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야구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이들도 한화 이글스는 안다.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 하위권을 전전하는 것이 아니라, 5할 승률 언저리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했다. 설령 패할 경우에는 김성근 감독 특유의 '야간 특훈'이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다. '흘린 땀의 양은 언젠가 반드시 그라운드에서 실력으로 나타난다.'라는 김성근 감독의 지론이 한화에서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한 '마리한화'의 중심에는 마운드가 있다. 물론 타력의 짜임새가 지난해보다 좋아졌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지만, 적어도 올 시즌 한화는 '던질 투수가 없어서 패한 경기'는 별로 없었을 정도였다. 전체적인 팀 평균자책점은 여전히 높지만, 일부 선수들의 분발이 이루어진다면 충분히 반등할 수 있는 것이 한화 마운드의 특징이다. 실제로 10경기(선발의 경우 8~9경기) 이상 등판한 선수들 중 평균자책점 5점대를 초과하고 있는 선수는 송은범과 김민우, 탈보트와 배영수 뿐이다. 송은범, 탈보트, 배영수가 선발로서 조금만 더 분발해 주거나 외국인 투수 교체 등의 방법을 쓴다면 적어도 지금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셈이다.

'야구를 그만둘 뻔 했던' 불펜 필승조, '절박함이 승리를 만들다'

이렇듯 한화 마운드의 각성에는 선발보다 불펜 투수들에게 의지하는 바가 컸다. 특히, 김기현과 정대훈, 박정진과 권혁으로 이어지는 필승조는 이제 한화 마운드의 자랑거리가 됐다. 여기에 윤규진까지 합류할 경우, 한화는 승리 상황에서 최소 5명의 믿을 만한 투수를 투입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마당쇠 송창식과 이동걸 등도 나름대로 추격 상황에서 써먹을 수 있다. 그런데 다소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불펜 투수들 중에는 한때 야구를 그만둘 뻔한 절박한 상황 속에서 이를 딛고 일어난 이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전천후 송창식(30)과 필승조 김기현(26)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김기현은 사실 신일고 시절부터 4번 타자 겸 에이스로 주목을 받았던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투수나 타자로서의 기량 모두 프로구단이 원하는 선수와는 거리가 멀어 정작 지명을 받지 못했고, 이후 원광대학교로 진학을 하며 '프로 재수'를 꿈꾸었다. 하지만, 대학 졸업 이후에도 프로 지명을 받지는 못했다. 다행히 지명일 이후 NC 다이노스의 부름을 받고 '육성선수'로 프로에 입단했지만, 퓨쳐스리그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결국 NC에서도 방출된 그는 한때 사회인 야구 선수들을 가르치며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그렇게 김기현의 프로 복귀는 요원한 듯 보였다.

그러나 2013년 가을, 테스트 이후 또 다시 한화 이글스에 육성 선수로 입단한 그는 절치 부심 끝에 2014년 시즌 도중 1군 무대를 밟았다. 그가 불펜에서 주로 담당했던 보직은 1이닝 정도를 간단하게 소화해 주는 스윙맨이나 원 포인트 릴리프에 불과했지만, 한때 야구를 그만 둘 뻔했던 사정을 감안해 본다면 그의 1군 데뷔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올 시즌에는 아예 필승조를 담당하면서 20경기에 등판, 3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하면서 제 몫을 다하고 있다. 전직 사회인 야구 코치가 이제는 프로야구 1군 붙박이 선수로 자리잡은 것이다.

'마당쇠' 송창식의 반전 스토리는 이보다 더 유명하다. 2004년 신인지명 회의에서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한 그는 당시까지만 해도 시속 140 km 후반대의 빠른 볼을 던질 줄 아는 유망주였다. 특히, 데뷔 첫 해에 완투승 한 번을 포함하여 8승 7패의 기록을 세우며 신인왕 후보에도 오른 바 있다. 다만, 이듬해 팔꿈치 부상으로 토미 존 수술을 받으면서 그의 야구 인생은 180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팔꿈치 부상 이후에는 버거씨병(폐쇄성 혈전혈관염)판정을 받으면서 야구 인생을 마감할 뻔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 결국 그는 버거씨병 치료 및 재활을 위해 2008년 4월, 한화에서 스스로 임의탈퇴를 선언하고 팀을 나왔다. 임의탈퇴 후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모교인 세광고등학교에서 코치로 일하면서 그의 은퇴는 기정사실화 되는 듯했다.

그러나 모교 코치로 일하면서 틈틈이 몸을 만들었던 그는 2010년을 기점으로 다시 입단 테스트의 형태로 한화에 재입단했고, 바로 그 해에 1군 복귀전을 치르면서 병마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지난 2012년에는 74와 1/3이닝을 소화하면서 4승 3패 1세이브 12홀드, 평균자책점 2.91을 기록하며 데뷔 이후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은 그가 마무리 투수로 많은 활약을 펼쳤던 이듬해까지 계속 유지됐다. 비록 지난해에는 잠시 부진에 빠지기도 했지만, 한화 마운드가 가장 어려웠을 때 그가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고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는 사실까지 잊어서는 곤란하다.

이렇듯 한화 마운드에는 '승리에 절박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모여 있기에 더욱 빛나는 셈이다. 사연이 많은 이들이 올 시즌 이후 어느 정도의 성적을 거둘지 지켜보는 것도 '2015 시즌 한화 이글스' 야구를 보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Copyright © 마니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